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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Apr 21. 2021

자동차 잠금 버튼에 집착하는 여자

나는 그 여자들을 잊지 않았다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다. 밤이고 낮이고 드라이브를 할 때면 기분이 좋다. 음악과 함께하는 심야의 드라이브는 목욕한 뒤 마시는 시원한 맥주만큼이나 짜릿하다. 아침나절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할 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길이 막히지만 않는다면 운전은 내게 놀이의 영역이다. 그래서 자주 운전대를 잡는다. 자동차로 마트도 가고 멀리 사는 친구 집도 가고 세 시간 거리 바다도 간다. 운전하기 전의 삶과는 비교도 안 되는 행동반경이다. 주행할 때면 조심은 하지만 조급하지는 않다. 경력이 8년쯤 되니 운전이 편안해졌다.


정작 운전보다 날 긴장시키는 건 운전을 하기 전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다. 나는 혼자 지하주차장에 가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 그 짧은 과정이 매번 두렵다. 지하주차장에 내려갈 땐 이어폰 따위 끼지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시야를 확보하고,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동차로 향한다. 빠른 동작으로 차 문을 열고 닫는다. 차에 타자마자 ‘잠금’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나서야 몸의 긴장을 푼다. 잠금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젠 익숙해진 나만의 루틴이랄까.


시동보다 잠금 버튼이 우선이다


내가 자동차 잠금 버튼에 집착하게 된 건 2015년, ‘김일곤 사건’이 벌어진 시기부터다. 김일곤은 2015년 9월 충남 아산의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차에 타려던 30대 여성을 납치하고 두 시간 만에 국도변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김일곤은 범행 한 달 전에도 일산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30대 여성 납치미수 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후에 다수의 언론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김일곤은 20대 중반 남성인 K 씨에게 원한이 있었지만 정작 죽인 건 아무 관계도, 일면식도 없는 여성이었다. 김일곤 사건 얼마 뒤, 내가 살던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에 타려던 여성이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두 사건 이후 나는 주차장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자동차에 타면 즉시 잠금 버튼을 누르는 버릇이 생겼다.


운전 외에도 나는 즐기는 게 많다. 일상에서 좋아하는 행위와 사물, 음식을 촘촘하게 만들어둬야 삶이 버틸만하다는 게 내 오랜 지론이다. 술과 사람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 이전에는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에 반주를 곁들이는 게 큰 낙이었다. 입에 감기는 음식을 찾아 서울 이곳저곳을 잘도 다녔다. 망원동의 육전과 갓김치를 파는 호프집도, 서촌의 단새우 회를 파는 술집도, 강남의 훠궈 집도 여러 번 오갔다. 술 약속이 잡히면 자연스레 그 지역의 맛집을 수소문했다.


맛집 탐방에도 애로 사항이 있었으니


맛있는 음식과 반주를 즐기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이름난 곳은 웨이팅이 필수였다. 개중에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혼이 나가도록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기나긴 대기나 왁자한 분위기보다 괴로운 건 화장실 문제였다. 기분 좋게 반주를 하다가도 건물 공용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지면 술기운이 달아났다. ‘친구에게 화장실에 같이 가달라고 할까?’, ‘너무 유난이라고 생각하려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술자리에서 화장실에 혼자 갈 때면 언제나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긴급 구조 요청 버튼을 누를 태세로 들어가곤 했다. 볼일을 보고 나오면 황급히 손을 씻고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화장실을 나섰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지난 2016년 5월, 강남역 인근 건물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김 모 씨(피의자 신원은 비공개됐다.)의 흉기에 살해당했다. 그녀가 살해당한 장소는 신논현역 인근의 실내 포장마차와 노래방이 위치한 건물이었다. 강남역과 신논현역 일대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눈에 익을만한 위치다. 나 역시 오가며 몇 번이나 지나친 건물이었다. 피의자 김 씨는 화장실에 숨어있으면서 7명의 남성을 그냥 보낸 뒤 여성이 화장실에 들어오자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 피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니까 내가 자동차에 타서 잠금 버튼을 누르는 습관이 생긴 건 2015년, 건물의 공용 화장실에 갈 때 휴대전화 긴급 구조 요청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리는 버릇이 생긴 건 2016년부터다.  이 습관들은 해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일상이 됐다. 여성 대상 범죄가 기사화될 때마다 내 습관과 버릇은 하나씩 늘었다. 이제는 공중화장실에 가면 불법 촬영 카메라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택배나 배달은 무조건 비대면을 선택한다. 택시를 탈 일이 생기면 거리에서 빈 택시를 잡아타는 대신 대기업과 연계된 SNS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을 연다. 이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하나다. 안전하고 싶어서다.


어두컴컴한 주차장에서, 인적 드문 길에서 자꾸 고개를 드는 두려움이란...


이렇게 일상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아직도 나는 안전을 확신하지 못한다. 2015년 김일곤 사건 이후 6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은 것만 같다. 지난달에는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김태현이 세 모녀를 살해했다. 김태현은 세 모녀 중 큰 딸인 A 씨를 몇 달간 스토킹 하다 차단당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현은 퀵서비스 기사로 위장해 A 씨의 집에 찾아갔다. 집에 혼자 있던 둘째 딸과 이후 귀가한 어머니를 연이어 살해한 뒤 마지막으로 귀가한 A 씨마저 살해했다. 그는 세 사람을 죽인 뒤 그들이 살던 집에서 며칠간 음식과 술을 먹었다. 김태현이 어떻게 A 씨의 주소를 알게 되었을까. 김태현은 A 씨가 모바일 메신저로 올린 사진 속 택배 상자 운송장을 확대해 보고 거주지를 확인했다.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공용 화장실에서, 자동차에서, 심지어 자기 집에서 여자들이 죽는다. 만나주지 않아서,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연락처를 차단해서 죽는다. 이런 일들이 거의 매일 일어난다. 실제로 한국여성의전화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인미수를 당한 사건이 1.6일마다 1건씩 보도됐다. 매일 죽어나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오늘 오전에도 새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이렇다. ‘여친 살해 후 자살 위장·훔친 카드로 성매매까지... 30대, 징역형’


기사 내용을 보니 연인 관계였던 여성이 헤어짐을 고하자 살해한 38세 남성 강 모 씨의 얘기였다. 기사에 따르면 강 씨는 여성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처럼 위장해 범행을 은폐했다. 심지어 여성의 시체를 보름 넘게 방치했고 피해자의 카드로 수천만 원을 인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은 이 남성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38세인 강 씨가 만기 출소하면 58세가 된다.


이런 일들이 매일 터지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크게 기사화되지 않는다. 수법이 아주 악랄하거나 잔인해야 그나마 비중 있게 다뤄진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김태현 사건 다음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최초로 발의된 이래 무려 22년 만에 의결됐다. 언론은 멀고, 정책은 느리고, 범죄는 가깝다. 이게 현실이다.


택배 박스 운송장도 스토킹 도구가 되는 세상


그래서 여자들은 ‘살아남는 방법’을 공유한다. 김태현이 피해자의 택배 상자 운송장 사진으로 주소를 알아냈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택배 운송장 안전하게 버리는 방법’이 SNS를 중심으로 공유됐다. 운송장에 알코올을 뿌린다던가 가위로 자르는 방법들이 전수된다. 또 폭행당하지 않고 헤어지는 ‘안전이별’ 역시 화두다. 이별에 슬픔이나 애달픔이 아니라 안전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며 헤어지는 방법이 실제로 여성들 사이에 ‘꿀팁’으로 떠돈다.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살 일인가 쓸쓸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위험이 옆구리로 파고들 것이라는 걸 여자들은 안다. 사회는 살해당한 여자들을 잊었을지 몰라도 여자들은 잊지 않았다.


내일은 장을 보러 마트에 가야 한다. 언제나처럼 지하주차장에 들어서면 어깨가 뻐근하게 경직될 것이다. 빠르게 걸어 자동차에 올라탄 뒤 잠금 버튼을 누른 뒤에야 편히 숨을 쉴 것이다. 내일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옷도 배송되는 날이다. 나는 택배가 도착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뒤에야 현관문을 열어 재빨리 상자를 들여놓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퇴근하는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현관문을 열지 않을지도 모른다. 택배 상자 하나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일상이 나도 피로하다. 그래도 조심할 수밖에. 내일이 내 생의 마지막 하루는 아니었으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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