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폰을 잡기로 했다

가면극 연기자와 게임 속 NPC의 삶

by 그레이숲풀

"제발 이제 저도 주연이 되게 해 주세요."


참 부단히도 애썼다. 연이 되고 싶어서, 아니 조연이어도 좋으니 제발 힘들고 아픈 역할을 하는 것만은 그만하고 싶서 애썼다. 하늘에도 빌어보고 감독님도 찾아가 눈물로 호소도 해 보았다.


최고의 조연이 되면 주연이 될 수도, 아니 적어도 행복한 역의 조연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았다. 그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배역은 '죽어가는 역할'이었다.


더는 해낼 힘이 없었다. 스크린을 빠져나와 내 흔적을 모두 지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헌데 자꾸만 무언가가 그 목표를 방해고 그렇게 '흔적 지우기'를 미루다 보니 어느새 무대가 아닌 게임 속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NPC가 되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반복된 퀘스트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흔적 지우기'라는 목표는 어느새 잊은 채 그저 연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흔적을 업적으로 바꾸게 된 마중물은 바로 그 퀘스트, '살아만 있기'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느 날, NPC에게 누가 말을 걸어왔다.

"흔적 지우는 것보다 다른 무대로 가보는 어때?"

NPC는 생각했다.

'아무리 애써도 고통받는 역할만 하는 내가 다른 데 간다고 뭐가 다를까? 아니, 받아주지도 않을 거야. 여기니까 그런 역할이라도 하는 거 아닐까?'

누군지 모를 그 대상은 매일 같은 말을 걸어왔다. 내 대답도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NPC가 보인다. 그냥 놀러 와 본 거라며 내 마을을 돌아보던 그것은 새로운 퀘스트 하나를 남기고 유유히 떠났다.


퀘스트 : 우리 마을로 이사 오기
보 상 : '호흡곤란, 극심한 두통, 잦은 분노, 심각한 기억력 저하, 불안, 섭식장애, 소양증, 쉼 없는 삶, 극단적인 생각' 완화
주 의 : 또 다른 고통은 존재함


'이 마을 말고 내가 가도 되는 곳이 있다고? 심지어 보상이 이렇게 좋아?'

그러나 요동칠 감정도 없었던 나는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무대도 게임 속도 아니었다. 하지만 퀘스트 내용만큼은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또다시 흔적 지우기에 집중하던 나는 반복되는 고통에 퀘스트가 아른거렸다. 보상이 아른거렸다.

'그래. 가보자. 그곳에 또 다른 고통이 있을지언정 당장 이 고통만은 벗어나야겠어.'


무대의 보상은 확실했다. 물론 또 다른 고통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살 것 같았다. 흔적을 더 남기고 싶어졌다.


어느새 주연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늘 주어진 배역만 하는 것은 다를 바 없었다. 당연히 큰 아픔을 가진 역할도 주어졌다. 지긋지긋한 그 역할.

또다시 지쳐갔다. 스크린이 달라진 덕에 보다 편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시 NPC가 되고 금세 흔적 지우기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살아야 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




내 삶의 주체는 나라는 뻔한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당연히 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깨닫는 것, 그리고 행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172cm의 키에 손도 발도 눈도 심지어 앞니마저 큰 저는 마음만 작다(=소심하다)며 친구들과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게 된 후 마음이 크게 성장했고 비전을 찾고 실현해가는 제게 '대단하다'라고 하시는 분들께 오히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