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성취감의 탄생
작은 시도와 성취감, 긍정의 확언과 행동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너무 무서워. 사업계획서를 쓰라고 하시는 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걸. 진짜 도망가고 싶다.'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내내 머릿속엔 회사에서의 장면이 떠올랐다.
이사님이 임원 회의를 마치고 걸어오신다. 팀원들을 불러 모으고 무거워 보였던 입을 떼신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위해 품질담당자로서의 계획을 가져와라. 그리고 각자 개인의 계획도 가져와라.'
'하루하루 사는 것도 이제야 겨우 할 만 해졌는데, 자꾸만 터지는 클레임만으로도 이미 버거운데, 내 주제에 무슨 계획을 세우고 심지어 보고서까지 제출을 하지?'
머리에 또다시 벌레가 기어다닌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 화면 위에 손가락을 열심히 두드렸다.
'사업계획서 쓰는 법', '품질부서 사업계획서', '사업계획서 아이디어, 샘플'을 쓰고 엔터 키를 눌렀다.
눈을 아무리 굴려도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카톡 창에 글과 파일이 몇개 올라왔다.
'내년도 사업계획서 초안'.
낮에 내게 받은 부탁의 답으로 보낸, 친구가 쓴 계획서 파일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좋은 내용의 계획서.
그러나 스타트업에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었고 이를 적절히 수정, 보안할 능력 따위 사라진지 오래인 우울증 환자에게는 아쉽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고마운 마음은 가득 생겼지만 답은 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잠이 들고 악몽에 잠이 깼다. 시침은 3을 가리키고 있는데 도통 다시 잘 수가 없었다.
고통의 일주일이 지났다.
죽인지 밥인지 모를 엉성한 계획서 초안을 만들고 맞이한 보고하는 자리.
어김없이 염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모두 한심하다고 생각할거야. 너무 수치스러워. 울고 싶다.'
눈물이 터지려 할 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겨우 버텼고, 터지기 적전이 되어서야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국 사업계획서는 이사님께서 만드셨다.
수개월 후. 2시간의 산책 후 집에 들어와 클로버 화분에 물을 주던 어느 날 문득 사업계획서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마지막 장의 내 개인에 대한 올해 계획이었다.
'새싹보리 키우기', '기사를 본 후 댓글에 동조하지 말고 비판해보기',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
비록 비판하기는 지속되지 못했지만 새싹보리 키우기가 너무도 쉽고 유용하기도 해서 재미를 느낀 덕에 네잎클로버도 키우게 되었고, 자신감은 여전히 부족했지만 잘하는 네잎클로버 찾기에 집중해서 찾으러 다니는 2시간의 산책이 생활화 되어 있었다.
하찮을 정도의 작은 시도와 성취감, 그리고 되든 말든 하는 나에 대한 긍정의 확언과 행동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