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가 '무엇이든'으로 바뀌는 순간
시작하고 틀리자. 틀리면 성장하자.
결제 버튼에 커서를 올려두고 누르기 직전, 그만 손이 멈추고 말았다.
'자존감이 낮아서 오는 사람들이니까 크게 불편하진 않겠지?'
'아니야. 그래도 나처럼 우울증을 겪고 오지는 않을 테니까 나만 창피할 거야.'
'그래도 다들 발표만큼은 못하니까 오지 않을까?'
'하지만 난 모르는 사람들과 매주 2시간을 보내는 자체가 너무 힘든 걸?'
수많은 생각이 떠올라 조금만 더 고민해보자 했던 그 순간은 결국 미루기로 이어졌다.
더 이상 도전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회사는 열심히도 휘청이고 있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았다.
그 얼음판마저 가스 라이팅으로 고통받던 전 직장에 비하면 천국이었던 나는 그렇게 깨지기 직전의 얼음판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떠나기 무서워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깨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어차피 이 일 말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어?'라는 생각을 채우던 머릿속은 금세 공포의 대상인 클레임과 발표 장면으로 바뀌었고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들 중에 질러버릴까?'라는 생각은 또 어느새 반토막난 연봉으로 허덕이는 모습과 중고 신입의 비애를 그리는 생각으로 전환되었다.
자의가 아닌 회사 문제로 퇴사하면 그땐 어쩔 수 없이 뭐라도 택하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살얼음판이 깨지기 한 달 전, 반강제 퇴사라는 소원 아닌 소원이 이루어졌다.
기존 경력이든 새 일이든 '뭐라도 택하겠지' 했던 나는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겨우 보내는, 다소 다른 무언가를 택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으니 한 달은 편히 쉬어보자는 핑계로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당당하지 않고 불편한 마음으로 잘도 그렇게 지냈다.
쉼의 시간은 충분했음에도 일어날 수 없었다. 길을 만들어 간 적이 없으니 허허벌판을 걸을 자신이 없어 점점 무기력에 빠져들고 있을 때쯤, 몇 달 전의 내가 '뭐라도 택하겠지'라며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이제는 진짜 뭐라도 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미루고 미루었던 '자존감 스피치'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뭐라도'가 '무엇이든'으로 바뀌는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