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고통을 못 느끼고 사는 어떤 여성분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출산할 때도 수술 다음 날에도 고통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정말 부러웠다. 혈관 움직임을 보며 수술해야 해서 마취 없이 진행해도 조금 아팠다고 하는 우리 아버지와 달리, 마취하고 레이저로 수술하는 라식인데도 고통이 무서워 덜덜 떠는 나였기 때문이다. 아픈 건 정말 너무 싫었다. 하지만 기사를 조금 더 읽고서야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오븐에서 불이 나 살이 타들어 가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냄새가 나고서야 화상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큰 질병에 걸렸는데도 전혀 모르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야 알아챘다면 어땠을지 끔찍하다.
나는 원래 위장이 약해서 자주 체하고 장염도 자주 앓아왔다. 그 덕인지 지금은 이유 없이 전신 피로감이 들고 두통, 근육통, 안구통 등 증상이 있으면 둘 중 하나의 시초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그럼 바로 대책을 세워 증상 초기에 조치할 수 있다.
우울증도 그렇다.
최근 약 한 달간 나는 우울증을 단번에 극복한 사람처럼 살았다. '인생 클레임 매뉴얼'과 '이상한 나라의 무명씨'를 계속 퇴고하고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는데 집중했다. 괴로움을 뒤로 하고 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즐거웠다. 무언가를 즐기고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임했다.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브런치북도 완성해 꽤나 큰 성취감이 들었다. 읽어 본 지인들은 내 글의 의도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공감된다. 요즘 나태해졌었는데 덕분에 힘이 났다.', '우울해서 누워만 있는 주말이었는데 할 일이 없어도 나갔다 와봐야겠다. 고맙다.'라며 감사 인사를 해주었다. 정말 뿌듯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자 다시 무기력해졌다. 더 이상의 피드백이 없으니 뿌듯함은 그대로 멈췄다. 브런치 북 완성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나자 그 외 할 일이 많은데도 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동차 보험 재가입과 실비보험 청구 범위를 알아보는 간단한 일 조차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기력, 흥미 없음, 두통. '아! 번아웃, 우울증이다'.
나만의 인생 클레임 매뉴얼을 펼친 덕분에 바로 알아챈 것이다. 한 달간 몰두하면서 에너지가 방전되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첫 번째 개선활동을 위해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그렇게 조금 힘이 나자 감정 배설을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며칠 후에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꽃구경도 가볼 참이다.
초기 증상이 나타났으니, 그리고 매뉴얼을 만들어 두었으니 나는 이전처럼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기 전에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다.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