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된 사랑, 비난이 된 응원
우울증을 더 힘들게 하는 것들
두통, 복통, 과호흡 등 신체적 증상.
그리고 저하된 인지력, 기억력, 부정적인 사고 등 정신적 증상.
이 두 가지만큼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주변인의 걱정과 응원이었다.
정확히는 과도한 걱정과 응원을 가장한 비난 아닌 비난이었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그때는 지금의 금쪽상담소나 써클하우스 등 심리문제를 일반인들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다만,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등 꽤나 미디어에 심리문제가 노출되긴 했는데 그래도 가까운 사람이 그런 문제를 겪는다는 것은 쉬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정신과 약이 걱정되고 해결책을 어떻게든 주고싶었을 것이지만 오히려 해가 된 것들이 있다.
반면 공감과 묵묵한 지원은 너무도 큰 치유로 다가왔다.
고통과 치유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그 중심에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 또한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걱정이 된 사랑
나 역시 정신과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증상이 너무 심각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가 약봉지를 들키는 바람에 엄마의 과한 걱정만 키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과 약을 먹다니. 위험한 건데. 함부로 먹는 거 아닌데."
'약 부작용이 걱정되어서 그래. 기록에도 남을 거고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괜찮겠니? 너를 사랑하기에 너무나 걱정이 된단다.'라는 의미였겠지만,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있자니 증상이 심해 곧 죽을 것만 같은데 걱정까지 더해지는 건 참으로 힘들었다.
비난이 된 응원
응원한다며 하는 말들의 대부분은 '우울증 환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었다.
"다들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너만 유독 힘든 상황은 아니고 다들 그러는데 버티는 거니까 너무 최악의 순간이라고 스스로 깎아내리지 말고 조금 편하게 생각해봐'라는 의미였겠지만,
나에게는 '유난 떨지 마. 힘들다고 하지 마. 넌 너무 나약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운동을 좀 해봐. 움직여봐.", "생각을 바꿔봐. 죽을 용기로 살아봐."
'혼자 있으면 더 우울해지니까 자꾸 움직이고 운동해봐. 신체활동이 우울증에 정말 좋대',
'우울에만 집중하지 말고 생각의 전환을 하면 좋은 것도 보일 거다. 네가 죽으면 가족과 주변인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걸 생각해서라도 버텨봐.'라는 의미였겠지만,
그건 다리가 부러져서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재활하려면 걸어야 한다고 움직이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이 들렸다. 그 움직이는 걸 할 수 없는 게 우울증 증상인데, 그저 압박으로만 느껴졌고 또한 못하는 나를 또 자책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말일 뿐이었다.
"나를 설득하려고 들지 마."
'나는 네가 안타깝고 돕고 싶지만 니 기분과 상황을 정확히는 이해할 수가 없어. 이해시키려고 과도하게 마음고생하지 마. 너 힘든 거 싫어.'라는 의미였겠지만,
나에게는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내가 말하는 대로나 해봐. 설명도 잘 못하는 데 왜 자꾸 강요해.'라고 들렸다.
"지나가면 별 거 아닐 거야.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마."
'네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안쓰러워서 생각을 바꿔주고 싶어.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닐 거고 오히려 남들처럼 좋았던 과거만 좇으며 피폐해질 일이 없으니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해.'라는 의미였겠지만,
당장 팔이 절단되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지나가면 괜찮아진다고 기다리라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다.
해결책 없이 치유해 준 사람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며 힘들었을 나의 고통에 공감해주는 친구.
기억력, 인지력 저하로 인해 대화가 잘 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가 주는 친구.
우울증에 좋은 것들을 이야기해보긴 하지만 쉽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안심시켜주고 하게 될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는 지인.
원한다면 언제든 함께 해주겠다며 산책, 여행, 함께 식사를 해주는 주변인.
치료받는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거나 걱정하지도 않고 과한 칭찬을 하지도 않은 채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대해주는 가족.
'나도 겪어봐서 알아'가 아니라 그저 경험을 공유하기만 해 주신 인생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