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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Jun 05. 2022

시험을 치르고서야 오답임을 안 순간

실패노트(2) - 수치심

수많은 좌절을 겪은 탓에, 연히 덧셈을 배우는 또래보다 먼저 곱셉을 터득했었다. 그 덕에 2에 2를 아홉 번 더하여 계산하고 있는 친구를 보며 '2×10하면 답 나오는데. 고생하지 않게 빨리 알려주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그런 친구들에게 달려가 알려주며 도움을 주었다는 기쁨에 빠져있다.


시험시간이 되었다.

'숫자가 많아서 복잡해 보이겠지만 차근차근 더하는데 집중하면 답이 나온단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문제를 풀었다.

'3+2+2+2+2+2+2+2+2+2+2'가 나왔고 나는 '3+2x10'로 변환해 50으로 답을 제출했다.

분명 시험 전에 친구들에게는 '모을 수 없는 숫자가 섞이면 이렇게 해서는 안될지도 모르니까 이건 멋대로 알려주진 않을게'라고 해놓고는 정작 나는 곱셈이 익숙해진 탓에 디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채점 후 나만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해설 시간이 되었고 선생님은 내가 상처받을까 봐 고민하셨는지 스스로 파악해 볼 기회를 주셨다.

이유를 알게 되자 드디어 알아챘다는 사실에 기뻤다.

어도 그때까지는.


그도 그럴 것이 예전의 나라면 이런 순간에 틀렸다는 사실에 좌절감이 들었을 텐데, 그런 기분 없이 그저 답을 알아내어 답답함이 해소된 것과 알아차렸다는 것 두 가지만 남았으니 기쁠 수밖에.

그러나 집에 가는 내내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것은 수치심이었다.




이 이야기는 내 어릴 적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2시간 전에 겪은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제 3자의 이야기로 꾸며 보면서 답을 찾아보려 느낀 그대로 적었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비전을 찾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많은 이들의 시행착오를 덜어드리고 싶었다. 전문 심리상담가가 아님을 명확히 하였고, 그렇기에 일반적인 상담이 아니라 경험, 공감, 위로로 우울증 극복 환경을 만들어드리는, 혹은 방향을 잡아드리는 일을 업으로 하려 했다. 그렇게 나를 찾아주신 분들께 노하우를 알려드리면 행복해하시는 게 너무도 즐거웠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워야 하는 것도 좌절을 겪을 수도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은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나오는 법을 터득했고 그 여정에서는 늘 교훈을 찾아 차츰차츰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는 아직도 배울 게 많은 부족한 사람이라 누굴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쁨을 나눠드리는 게 즐거운 거라 생각했지만, 어떤 시련에도 힘들어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힘들어하되 그저 과거 대비 비교적 쉽고 빠르게 나오는 것뿐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내 모습 자체에 그저 심취해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이다.


백번 양보해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곱셈을 배운 학생이 겪은 것과 같은 오늘의 경험이 없었다면, 적어도 미래의 어느 순간의 나는 자아도취에 빠지고 거기서 멈추지 못하면 우월감으로 자만하게 되는 날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아닐 거야'라는 마음과 '회피하지 마. 이미 무의식 속에서 넌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라는 마음이 충돌한다.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신 알케믹님께 매우 감사하면서도 치부를 들킨 마음에 너무나 부끄럽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실패노트(2)로 남겨 쉬이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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