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생태계(上)

by jyjang

그 날도 창 밖의 L타워는 뿌연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낮임에도 초저녁처럼 창 밖은 어두웠다. 하지만 카메라와 조명이 가득한 CEO 방은 다른 세상인 것처럼 환했다. 개천에서 용나기 힘들어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B사가 한국에 진출했던 그 시절,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한계단 한계단 승진하면서 한국지사의 대표이사가 된, 샐러리맨의 꿈을 이룬 사람. 외국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미국 본사에 어떤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6개월 전 당당히 자신의 실력과 리더십으로 1,000명이 근무하는 한 대표는 실제로 사내에 추종자가 많은 몇 안되는 임원 중 하나였다.


"요즘 B 미국 본사에선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기 위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갈수록 전기차가 늘어나니 엔진부품에 의존도가 높은 저희로써는 고민이 많죠. 본사에서도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 디스플레이 부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한국지사의 연구소도 그 방향에 맞춰 가기 위해 관련 인력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습니다."

"조금 민감한 질문인데요, 공교롭게도 한 대표님이 CEO가 된 이후, 지난 6개월간 K사의 신모델에서 도로 주행 중 엔진화재가 지속 발생하고 있는데, B사가 K사 해당 모델에 엔진 피스톤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그 사건에 대해 저희도 본사 연구소 직원들까지 한국에 와서 함께 조사를 했는데, 저희쪽 부품 이슈는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박선영 매니저, 김 기자랑 사전에 질문지 교환안했어요? 갑자기 왜 화재사건 얘기가 나와요?"

사전에 어떤 인터뷰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은 분명 서로 이야기했지만, 언론의 속성상 기자가 민감한 질문을 안할리가 없다. 한번의 클릭이라도 더 받기 위해 기사의 제목도 자극적으로 뽑겠지. 이런 민감한 사건이 있는 시기에는 인터뷰든, 보도자료 배포든 기자들에게 먹잇감을 주면 안된다고 여러번 보고했는데, 일단은 빠르게 외부로 보일 실적으로 만들어 한국지사든 본사든 자신의 업적을 보고하고 싶은 최 상무에게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 날의 인터뷰는 그렇게 성사되었다.

"상무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기자들이 우리랑 미리 말을 했다고 해도 자기가 궁금하거나.."

"김 팀장, D경제랑 친하다면서, 지금 이 인터뷰가 이게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겠어요? 어? 본사에는 어떻게 보고할건데?"


"언론홍보 한번 해본적도 없는 인간이 뭘 안다고."

안그래도 동갑인 최 상무가 외부에서 오자마자 임원자리에 앉아 언짢아하던 팀장이 궁시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한 대표는 오히려 덤덤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했는데 왜 최 상무가 저리 날뛰는지 일개 과장인 나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 윗사람들이 보는 조직과 일에 대한 뷰(view)와 아래에서 보는 뷰가 다르다고 하더니, 이런 것도 그런 일 중에 하나인 모양이었다.

"요즘 본사에서 최 상무 엄청 쪼는거 같더라고요. 완성차업계에서 모셔왔는데 마케팅이 달라진게 없다고. 그래서 최 상무 입장에서는 언론기사도 전보다 더 많이, 광고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싶어하고. 뭐 그런거죠"

B2B 기업의 마케팅이라는게 B2C 기업만큼 눈에 띄게 활발하게 할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본사에 새로 부임했다는 마케팅 본부장도 이번에 한국지사에 조인한 최상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 회사 같은 부품업체의 본질은 좋은 부품을 고객사에 잘 판매하는 것이 아니던가. 또 그 좋은 부품들이 다른 잠재고객사들에게 잘 알려지도록 보다 무게감 있는 소통해야하는게 아니던가. 밖으로 보이는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끔 본질을 잊을 때가 있다.

"지금은 그런 마케팅보다는 진짜 K사 자꾸 엔진 화재 나는거, 어떻게 정리할지 얘기해야 할 때 아닌가.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입장표명을 확실히 하던지."

"연구소랑 공장은 비상이더라고요. 참, 매니저님, 그거 때문에 연구소랑 미팅하라고 최 상무가 그러던데."


K사 자동차 신규모델이 출시한지 6개월 만에 벌써 10번째 화재사고를 일으켰다. 5번째 사고가 났던 시점에 국내 공장과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서 우리 부품의 문제인지 조사를 하였다. 인명피해까지 있었기에 본사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며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쪽 이슈는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고, 본사에서는 기자나 외부인들이 관련 문의를 해오면 '조사 중'이라는 말만 하고 함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고객사와의 관계상 무조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하기엔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오늘 한 대표가 D경제와 인터뷰를 하면서 본사의 가이드를 어긴 부분은 향후 문제가 될 여지가 있긴 하였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고 어디서 크게 소리지른 것마냥 솔직히 내 속은 후련했다.


연구소를 가는 길 한가운데 우뚝 솟은 L타워는 봄에는 특히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건물에 알 수 없는 금이 갔다, 동네의 싱크홀이 생기는 주범이다 등등 시공단계부터 개장시점까지 온갖 흉흉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100층이 넘는 빌딩은 어느새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나에게는 그 날의 공기질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건물이 무너질거라고 얘기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갔는지, 미세먼지도 많은 날이었건만 빌딩 주변에는 평일 낮시간에도 쇼핑객들로 북적였다.

"어차피 아시게 될듯 해서 홍보팀에는 말씀드리는데, 그게 우리 회사 부품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연구소는 올때마다 왜인지 여유가 느껴졌다. 무언가에 쫓기듯 키보드와 마우스를 쉴새없이 놀리는 서울 오피스와는 다르게, 용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방에 들어간 연구원들은, 용도를 모르겠는 부품들을 들고 자동차 앞에 쭈그려 앉아있기도 하고, 본넷을 열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은 다급해보이지도, 힘들어보이지도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쨌든 저들이 하는 일을 정확히 모르기에 내가 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건지 모르겠는데, 그 부품이 한국에서 생산한게 아니고 중국지사에서 생산한 부품이예요."

원가절감이 최대의 이슈인 K사가 엔진 피스톤 부품 단가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한국공장 생산 부품보다 저렴한 중국 생산 부품을 공급해달라고 하였고, 한국지사가 이를 거부하자 이례적으로 우리 본사와 직접 협의를 하였다고 한다. 당시 본사 경영진들은 주주들에게 매출 압박을 받고 있었고, 전세계적인 자동차 회사가 되어버린 K사를 놓칠 수 없다는 압박에 고객사가 위치한 국가에서 생산한 부품을 제공한다는, 전세계적으로 적용하던 기존의 원칙을 깨고 이를 승인하였다. 이 협상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되었음에도 K사는 신차 발표시점을 늦출 수 없다고 압박을 하였고, 일이 급박하게 진행되다 보니 중국에서 생산한 부품은 한국지사의 품질검사도 받지 않은 채 납품되었다. 한국지사는 세금 등등의 복잡한 이슈에 얽히기 싫었던 본사의 등에 떠밀려 K사와이 거래 매출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전에 조사한 결과에선 우리쪽 부품문제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 단정짓기는 애매하죠. 자동차의 엔진이라는게 피스톤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압착하고 폭발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부품이 많으니깐. 지난 조사에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거 같다는게 정확한 결론이었어요. K사 연구원들도 이 부분은 인정했고요. 다만 B사 부품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결론은 아니었죠"

"결론적으로 한국지사의 문제가 아니고 본사와 부품 단가 압박을 했던 K사 문제가 되는거네요."

그동안 연구소와 경영진들에게 들어온 거짓말에 화가 난다기 보단, 오히려 이리 되면 본사에서 나서서 처리하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떤 TV예능 프로그램의 유명한 대사처럼 결국 어려운 일은 나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결국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물리적인 거리 때문인지, 심리적인 거리 때문인지 본사는 이 일에 최대한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한 대표와 D경제의 인터뷰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K사 사고에 대한 언론 및 대중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가이드는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고속도로 주행사고가 났다. 일가족 4명이 타고 있었는데 주행 중 불이 난 순간 운전자가 당황하여 가드레일을 박은 후 그대로 고속도로 밖으로 차량이 곤두박질 쳤다. 안타깝게도 운전자와 조수석에 타고 있던 배우자는 사망하였고, 뒷자석에 있던 아이들은 중상을 입었다. 이번에 K사는 발빠르게 사장단까지 총출동하여 대국민 사과문 및 리콜계획을 언론에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엔진부품 이슈가 있는게 밝혀졌다며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C일보, K신문, D신문, I경제신문, T자동차매거진 등 평소 내 전화를 받지도 않던 기자들에게 쉴새없이 전화가 왔다.

"결국은 사람들이 다 알게 될건데,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잘못을 시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팀장의 질문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무엇이 솔직한 이야기인가?"라고 본사의 홍보매니저가 되물었다.

"본사에서 중국 부품을 K사에 납품했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품질조사가 안되었다고 들었다. 이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 한번 철저하게 조사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한국지사는 결국 매출만 처리한 창구였으므로, 본사가 직접 사과에 나서야 한다"라는 나의 답변에 이번에는 최상무가 버럭하였다.

"본사건 한국지사건 같은 회사지 뭘 그리 선을 그으려고 해요?"


'어차피 전화를 받지 않으실 것 같아 문자로 남깁니다. K사 화재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K사와 B사를 고소했고, 검찰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진상조사할 거라는 발표가 곧 있을 예정입니다. 이에 대한 B사의 공식 입장을 알려주시면 기사에 반영하겠습니다.'

얼마전 한 대표를 인터뷰했던 D경제 기자였다.

"우리 B 한국지사는 모든 조사에 철저히 임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B 한국지사가 K사에 납품한 부품과 이번 사고에서의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본사의 시간에 맞춘다고 날을 넘겨가며 진행한 지난 밤 화상회의에서 나온 결론은 이 짧은 2가지 문장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B 한국지사가 납품한 제품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니 이게 거짓말은 아닌거라는게 본사와 최 상무의 논리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관련 기사 모니터링, 번역하여 본사에 공유 미국 본사 출근시간에 맞춘 심야 컨퍼런스콜이 이어졌다. 본사는 조만간 검찰 조사를 받게 될 한국지사의 임원들의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주었지만, 결론은 저 2문장만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건 이 사건으로 밤을 새며 일하는건 우리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법무팀도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고, 정확히 1주일 뒤 한 대표와 한국지사의 연구소장이 검찰청에 출두하였다. 그렇게 많은 카메라를 대해 본 적이 없는 한 대표는 지난 집무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머리가 더 하얗게 세어있었다. 2주 전에는 스크립트도 없이 인터뷰했던 사람이 A4 용지에 적혀있는 본사의 가이드 2 문장을 겨우 읽어내렸다. 그 뒤로 피해자 유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잔뜩 웅크린 한 대표는 진짜 큰 범죄를 벌인 대역죄인처럼 보였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행동해야 해요."

본인이 내뱉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최 상무의 목소리는 떨렸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본사와 또한번의 통화를 마친 직후에 언론과 외부인원을 상대하는 나와 팀장, 대외협력팀장과 김 매니저를 부른 자리였다. 자신의 집무실 바로 옆 회의실을 일명 "워룸(War-Room)"으로 지정해서 관련 인원들은 모두 그 방에서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업체를 수소문해서 계약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고비를 잘 넘기면 우리 회사가 도약하는 또한번의 기회가 될 것예요."

혹은 최 상무가 드디어 본사에서도 인정받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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