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의 무사(中)

by jyjang

“오늘의 쇼핑은 어떠신가요? 루키에게 들려주세요”

드디어 일반 고객들에게도 루키가 보이기 시작했다. 루키가 앞으로 한달동안 고객들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팀장이 임원이 되느냐, 상무가 전무가 되느냐가 달려있었다. 또한 R 역사상 최초로 30대의 젊은 여성 팀장이 탄생하느냐도 달려있는 일이었다.

“루키야, 너 잘 할 수 있지?”

“잘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아니, 솔직히 팀원들 입장에선 팀장이나 상무가 뭐가 되든 당장 앞으로 3개월동안 야근없이 집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눈 앞의 문제가 더 컸다.

“어제 산 고등어가 다 물렀고 포장도 허술하게 되어서 택배상자에 냄새가 진동했어요.”

“노르웨이산 손질 고등어가 한마리에 3,500원입니다”

팀원 10명이 붙어 밤새워가며 테스트하였지만 쇼핑과 관련된 모든 케이스를 예측해서 테스트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모양이었다. 루키의 고객 CS 처리는 첫날부터 삐걱이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어제 K 카드로 결제한 걸 B카드의 포인트로 재결제하고 싶어요."

"K카드는 3개월 무이자 혜택을 받으실 수 있어요"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처음 시작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무엇이든 해보고, 수정하고, 고쳐나가면서 완벽을 기해야 할터. 하물며 수억 개의 케이스를 바탕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AI 서비스들은 케이스를 쌓아갈수록 완벽해지니 실전에 나선 루키에게도 진화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루키야 너 바보니?”

“잘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너가 이래서 내가 또 야근을 해야하잖아”

“혹시 야구용품을 찾으시나요?”

그렇다면 지난 1주일 우린 어떤 케이스를 겪었고 어떤 진화를 했는지. 인간이 AI한테 대체되지 않으려면 스스로도 진화해야 한다는데 우리가 그 속도를 따라갈수나 있을지. 사실 당장은 AI보단 시류에 맞추지 못한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다른 사람들로 충분히 대체될 수도 있다는 그 사실이 진수에겐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이젠 회사에서 주 40시간 정책한다고 야근택시비 지원해주던 것도 안해준다는 걸 배웠잖아”

주변 건물의 불빛도 사라진 야심한 밤, 홀로 불이 켜져있는 R 사옥 앞에서 광민이 택시를 잡아타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서비스 기획자와 운영자는 다르다는 것도 배우고 있지”

진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서비스를 기획한 정 책임은 런칭 이후 왜인지 루키 서비스에선 손을 떼고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마치 본인의 역할은 서비스 런칭까지이며, 그 뒤의 일들은 남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식인듯 하였다.

"에이, 그래도 루키 엄마인데"

"어머, 루키가 뭐 제 자식인가요. 우리 모두의 자식이죠. 그리고 루키는 AI이니깐, 스스로 학습하면서 완벽해질거예요"

그게 몇 개월이 걸릴지, 완벽해지게 하기 위해 뒷단에 처리해야 하는 무수한 일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팀 내 다른 직원들이 물어봐도 정 책임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특유의 싹싹한 얼굴로 웃으며 자신이 지금 어떤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했다.

“이거 품의도 안쓰고 진행한거 아세요? 갑자기 루키 디자인 업체에서 저한테 돈 언제주냐고 어제 물어보더라니깐요.”

“박 대리한테?”

“네, 정 책임님이 제가 팀의 행정업무 담당자니깐 저한테 연락하라고 했다는거예요. 진짜 어이가 없어서”

평소에 예산과 행정업무 관련해서 업무적인 이야기만 나누는 박 대리였지만, 이번 사건으로 엄청 화가 났는지 사적인 감정까지 진수에게 털어놓았다.

“루키야, 왜 네 엄마는 이제 너를 신경도 안쓰니?”

“잘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늘 웃는 얼굴인 루키는 본인에게도 슬픈 이야기는 정말 못 알아듣는듯 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주인의식이 없어요?”

한 마케팅 관련 커뮤니티에 "R mall의 루키 챗봇 1달 사용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잘못 만든 서비스로 소비자들이 오히려 불만을 갖게 되고, 기존의 고객들까지 이탈하게 되는 안 좋은 방향의 서비스라는 내용이었다. 한 유튜버는 루키와의 대화를 실시간 라이브 방송하면서 조롱하기도 했다. 김 상무는 이 사실을 자기 아들이 유튜브를 보다 알았다며, 온 팀이 한 마음으로 잘해도 모자란 판국에 왜 다들 남의 일처럼 하냐고 아침부터 서비스 팀원들을 집합시켜놓고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나마 출근길부터 요란하게 내리는 빗소리로 같은 층의 다른 직원들에게 김 상무의 고함이 들리지 않을거라는게 다행이었다.

“김 팀장이랑 정 책임만 남고 나가봐요.”

팀원들은 아침부터 불호령을 듣느라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인데, 이상하게 정 책임만은 차분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웃는 상으로 받아치던 그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다.

“엄마가 버린 자식이 제대로 클 리가 있나.”

“저 이번에 품의 쓰면서 안 건데, 이게 시간 맞춰서 급하게 런칭하느라고 우리 회사 개발팀이나 CRM 팀하고는 얘기가 제대로 안됐더라고요. ”

“에이, 회사 메인화면에 나가는 서비스인데, 그쪽 임원들도 다 OK했으니깐 메인에서 돌아가게 된걸꺼 아냐."

“그게 김 상무가 그룹장을 설득해서 그룹장이 CEO한테 올렸고, CEO는 당장 아이디어가 좋으니깐 다른 임원들 다 찍어 누른거라고 하더라고요.”

“아, 다음달 지주사 보고에서 CEO가 이걸로 광팔려고 하는거구나. 올해 매출이 별로니깐?”

“그렇게 해서 1년 더 생명연장하시고, 그룹장님과 상무님도 덕분에 1년 더 하시고, 뭐 그런 그림?”

“거기다 김 상무는 지가 데려온 사람이 만든 서비스인데 어떻게든 메인에 보이게 하려고 안달이죠. 솔직히 김 상무님 여기서 아직 자리 제대로 못 잡았잖아요. 미국 어디에서 MBA하고 카드사에서 스카우트해왔다고 하지만 뭐 그동안 디지털 매출도 C사에 밀리고, 서비스도 제대로 진행된 것도 없고.”

김 상무는 주인의식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CEO도, 상무도 회사의 주인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들도 매해 "내년에도 이곳에 남아있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고, 얼굴 한번 제대로 보기도 힘든 주인에게 매달려야 하는 처지였다.

“루키야, 너는 어떻게 살아넘을거니?”

“오늘의 장보기를 도와드릴까요? 오늘은 샤인머스켓이 인기랍니다”

이리저리 욕을 먹고 애를 먹이는 루키였지만, 그 사이에 소소한 업데이트를 계속 진행해서 먼저 제품을 추천해주는 기능을 탑재하게 되었다. 다만 문맥을 읽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아침부터 김 상무님이 이야기했듯, 우리가 이 서비스에 대해서 제대로 업무분장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건 내 잘못인거라 먼저 사과하고”

평소에 실적과 일정으로 팀원들을 들들 볶는 김 팀장이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자신의 잘못이라는 자아비판을 먼저 시작해서 팀원들이 모여있는 회의실 분위기는 더 무거웠다.

“일단 서비스 기획은 끝난거고, 앞으로 운영을 잘 해야하는데 꼬인 것들이 있으니 운영자들을 명확하게 지정할게요. 이제부턴 진짜 내 일이다 생각하고 진행해줘요."

사실 그 누구도 이건 '내 일이 아니오'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다만 이 서비스가 성공하였다고 사내외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을때, 그 인정을 본인이 고스란히 받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이 일은 각자 맡고 있는 본업 외에 부가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분명했다. 또한 이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원래하던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장원기 책임, 김진수 책임, 박기영 대리 3명은 개발팀, CRM팀, CS팀이랑 루키 시스템 뒷단에 꼬여있는게 명확하게 뭔지, 왜 루키한테 들어온 CS가 제대로 처리가 안되는건지 확인 좀 해줘요.”

팀장은 이어서 현재 루키에게 질문을 하면 제대로 되지 않은 답변이 나오는 케이스가 많으니 그 케이스들을 다운로드 받아서 면밀히 분석하는 것을 광민과 추민영 사원에게 배분했다.

“근데, 서비스를 기획하신 정수연 책임님은 무엇을 하시나요?”

아직은 눈치가 없고 할 말은 하는 민영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지만 다들 속으로는 민영을 응원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잖아요, 분명히 기획하시고 이걸로 PT도 많이 하셨는데,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운영 문제를 해결해주셔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 맡으셨잖아요.”

"민영, 물론 정 책임이 이 모든 과정을 팔로업하긴 할 건데.."

“저는 사실 경영진에서 떨어진 과제인 자동화추천 서비스 기획이 시급하거든요. 그리고 이제 루키는 기획보다는 운영단의 일이 남은거니 꼭 기획자인 제가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미소를 잃은 정 책임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정 책임의 차가운 얼굴과 목소리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상대를-그게 사수이든 팀장이든- 넉다운 시키곤하는 민영의 말까지 앗아갔다.

“자 일단 업무 분장은 이렇게 김 상무님하고도 얘기해서 정리했으니깐, 다들 주인의식을 갖고 해줘요. 그리고 이거와 관련된 건 데일리로 나한테 각 파트별로 보고해주고.”

아마도 이 서비스가 성공했으면 그 인정과 보상은 고스란히 정수연 책임과 김 팀장, 김 상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가 애를 먹이자 그 뒷수습은 고스란히 다른 팀원들이 해야 하는 일로 돌아왔다.


“루키야, 너 언제쯤 정상적으로 답변해줄래?”

“잘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너한테 이런걸 물어본 내가 바보지”

“김진수 책임님”

“아, 네, 선배님”

원기가 특유의 조용한 목소리로 진수를 불렀다. 원기는 원래 그랬던 것인지, 현재 위치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상대에게 조심히 다가와서 허리까지 굽혀 눈을 맞추며 조용히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개발팀장이랑 지금 바로 미팅을 잡았는데 같이 가겠어요?”

직급, 직책이 뭐든간에 원기는 회사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만큼 회사에 인맥도 많았다. 원기가 R 백화점의 한 지점에서 부지점장으로 일하던 시절, 백화점 상품들을 인터넷몰로 옮기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탓에 당시 과장이었던 현재의 개발팀장은 원기에게 매우 깍듯했다.

“루키 서비스 가장 큰 문제가 우리 CRM 고객데이터랑 연동이 거의 안된거더라고요.”

빠르게 서비스를 런칭하려고 외주업체를 써서 개발을 진행하다보니 루키는 정작 R mall의 자체 고객 구매 데이터와 연동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루키에게 질문을 하는 고객이 “저번에 산 물건 반품”처럼 말을 하면 이전 구매이력을 알지 못해 버벅대기 일쑤였다. 고객 입장에선 사람에게 물어보면 1번에 해결될 일이, 루키에게 물어보면 3-4번은 더 설명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연동을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예요?”

“일단 서비스를 잠시 내리고, 아예 CRM팀과 CS팀까지 모여서 뒷단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럼 기존에 만들어둔 시스템은 못 쓰는거 아닌가요?”

“지금까지 루키가 학습한 말더미들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그건 마지막에 할 일이긴 하죠. 근데 기존 시스템은 못쓰는게 맞는거 같아요”

“그럼 기간도 엄청 오래 걸리지 않나요?”

“최소 1-2년은 봐야겠죠.”

진수는 갑자기 목이 칼칼하게 느껴졌다. 당장 내년도 전무 승진을 바라고 있는 김 상무에게 2년 후에 이 서비스를 정상화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원기와 진수에게는 철퇴가 내려질게 분명했다.

“일단 내가 우리 팀장님한테 보고할게요. 근데, 정확하게 어떤게 문제라서 그런건지는 혹시 문서로 정리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원기의 부탁에 개발팀장은 1시간 안에 문서를 만들어주겠다고 답변했다.

“참, 지난 주말동안에 어떤 놈인지 몰라도 이 서비스를 해킹하려는 시도도 있었어요. 그날 당직 섰던 우리 팀 직원이 발견 못했으면 큰일 날뻔했다고”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하면 바로 언론에서도 알게 되는 일이라 신고를 할지 말지 윗선의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하면서, 개발팀장은 만약 해킹 시도가 성공했으면 음란한 대화를 하는 챗봇으로 루키가 바뀔 뻔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수연 책임 잠깐 와봐요.”

김 팀장의 눈에서도 이제 정 책임에 대한 꿀의 장막은 거친듯 했다.

“이 얘기 알고 있었어? 시스템간에 연동도 제대로 안되고 심지어 해킹까지 쉽게 당할 서비스를”

“팀장님, 제가 입사할 때도 말씀드렸듯이 업무 R&R에 대해서는 명확하다고 봅니다. 저는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기획하는 사람인데, 잘 아시다시피 이번에 개발까지 하는, 말도 안되는 영역까지 커버했습니다. 운영은 운영을 하는 팀에 넘기던지,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하셔야죠.”

정 책임은 원기와 진수를 차례대로 보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은 윗선에서 관심을 갖고 계신 자동화 추천 프로그램 기획에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는걸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참, 팀장님 말이 나온 김에 지금 팀원들한테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공감대를 얻으면 어떨까요?”

자동화 추천 프로그램은 루키 이후 김 상무가 차세대 아마존을 꿈꾸며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원기의 보고에 잠시 이성을 잃었던 김 팀장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정 책임, 속도도 좋고 다 좋은데 유관부서랑 이야기하는거 절대 잊지 마요. 이 서비스는 꼭 성공시켜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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