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산세가 아름다운 곳. 분단으로 인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생태가 지켜진 곳. 안전한 보호가 아니라 지뢰에의 두려움으로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 자연.
단장의 능선. 까마득히 높아 그저 선으로만 가늠할 수밖에 없는 저 능선. 저곳을 지켜냈고 지키고 있다.
능선 위의 소나무가 앙상한 가지들 사이 푸르름을 지키며 서 있는 것은, 내가 갈 수 없는 저곳에 숱한 세월 그대로 살아있음은 그래서 더욱 애잔하고 대견하다.
이 아래 꺾여 허옇게 스러져 내린 저 나무는 보통의 숲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숱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련만 이 능선 아래 있어서일까. 그 꺾임이 우리의 아픔을 대변하는 듯 특별한 좌절과 고통의 표상이 된다.
저리 절반의 위가 부러져 뒤집어졌음에도 나는 나머지 가지에서 분명 살아있음의 증거가 훗날 시간이 흘러 보이리라 믿고 바라며 그린다.
나는 이곳에서, 양구에서 무엇을 그리게 될까. 막연히 이제는 추상의 감각적, 감성적 힘에 구상의 이야기를 담고 싶고, 자연의 유구함에 인간의 변화하는 이미지를 담고 싶었는데.. 역사의 사건사건들. 특히 그것이 현재의 일상으로 직결된다면 얼마나 좋은 시작점인가. 그러나 그 이야기가 쉬이 다룰 수 있는 개인의 일상이 아니요 수많은 생명이 바쳐진, 지금도 모두의 사활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두렵고 긴장하여 접근하게 된다.
주께서 날 이곳에 보내시고 보여주시고 이토록 마음과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이를 곱씹게 하시니 분명 주께서 원하시는 바를 그려내리라. 주님, 주의 음성에 민감하기를. 내 눈이, 마음이, 생각이 주께서 보이시는 것을 깊이 품기를. 내 손이, 몸이 이 모두를 그려내기를. 양구에서의 시간을 은혜로 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