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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영 Grace H Jung Aug 14. 2023

화가의 양구일기 23_무엇이 내 시선을 붙잡는가

양구 노도부대, 백두산부대 '박수근미술관 견학' 드로잉

2016년 5월 12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51일 차. 
표지: <노도부대 미술관 견학> 


<백두산부대 미술관 견학> 종이에 먹, 25.6 x 18.5cm, 2016


미술관과 군인들, 군인들의 단체 관람. 양구에서 본 독특한 모양이다. ‘처부의 단결활동’. 3번이나 다시 들어 파악한 이 용어도 신기하다. 운동을 하고 바로 와서 군복이 아닌 체육복 차림이었다. 챙 넓은 모자를 목에 걸고. 군인 아이들은 단체로 어딘가를 갈 때 두 줄로 가는 것이 일상인 듯하다. 자유로운 시간, 편한 복장임에도 어느 정도 두 줄 행진의 모양새를 갖춘다. 또한 젊은이들 답게 발걸음이 어찌나 빠르고 씩씩한지 전시장으로 뒤따라 걸어가며 빠르게 손을 놀렸으나 양말부터 신발까지 그려 넣지 못하였다.

 

_2016/05/12 드로잉 노트백두산부대 미술관 견학열을 지어 들어가는




<백두산부대 미술관 견학> 종이에 먹, 25.6 x 18.5cm, 2016


미술관 해설사 선생님의 작품 설명으로 이들이 잠시 멈춰있게 되었다. 군인들의 짧은 머리는 그리기가 쉽지 않다. 머리카락이 길면 그 선의 흐름으로 자유롭게 멋을 넣을 수 있는데, 빠르게 그려가는 중에 어디에서 특징을 잡아야 하는지 난감하다. 두상의 대강에 짧은 점을 찍어 군인머리를 표현해 보았다. 한 군인 아이가 뒷모습에 같은 체육복, 같은 머리 모양으로 그린 3명 중 한 명을 가리키며 ‘이거 저 같습니다’ 했을 때 어찌나 재밌던지 지금도 계속 웃음 짓게 된다. 


<노도부대 미술관 견학> 종이에 먹, 25 x 23cm, 2016


지난달 미술관 견학을 온 노도부대 군인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그려본 후, 미술관과 군인의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그리고 싶어서 다시 한번 군복 입은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체육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리게 되어 젊은 사내아이들의 튼튼하고 굵은 선을 연습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겪은 군인이셨던 장로님과의 인터뷰 이후 군인들의 모습을 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다.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렇게 어린 친구들이 육체적으로 한창일 때에 실제로 죽음을 각오한 전투에 임하겠지. 군복에 가려지지 않은 시원하고 힘찬 청년의 선을 담을 기회가 있어 좋았다. 


_2016/05/12 드로잉 노트백두산부대 처부 단결활동  미술관 견학




<백두산부대 미술관 견학>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많은 친구들이 빠르게 그림들을 지나쳐 갔지만 몇몇은 작품 앞에 멈춰 감상을 하였다.


_2016/05/12 드로잉 노트백두산부대 미술관 견학빠르게 줄지어 행군하듯그래도  진지하게 멈추어 감상하는




<석고방향제 만들기 체험>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이들은 시간이 여유가 있고 나는 그릴 시간이 필요하여 재희 씨가 미술관에서 석고방향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얼굴과 손을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직 완전히 손에 익지 않았다. 개개인의 특징과 복잡한 몸의 구조를, 더구나 군상으로 빠르게 그리는 것은 여전히 과제이다. 그래도 모두 해맑게 드로잉들을 좋아해 주고 서로를 발견하며 즐기니 참 좋았다. 


마음과 열심의 시간이
채워질 때 



내가 양구에 있기에 만나게 된 이 독특한 그룹, 군인. 이들의 무엇이 내 시선을 붙잡는가. 난 이들에게서 무엇을 발견하였기에 그리려 하는 걸까. 이렇게 드로잉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알게 되겠지. 자연스레 쌓여가는 그림으로 알게 되는 것이 진실이다. 조급히 내 생각을 규정하여 가두지도 부풀리지도 말고, 그저 마음과 열심의 시간이 채워질 때 알게 될 구체적인 생각을 기대하며 나갈 뿐이다.


석고방향제가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 몇몇과는 그림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우리나라는 문화적 깊이를 만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토록 궁금함도, 관심도 많은데 아직 제대로 된 답을, 길을 폭넓게 주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_2016/05/12 드로잉 노트백두산부대 석고방향제 만들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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