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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영 Grace H Jung Aug 19. 2023

화가의 양구일기 24_감수해야 할 것이다

양구 '자작나무', '밭일' 스케치. 작업실 '능선 아래 나무' 채색

2016년 5월 12-18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51-57일 차. 
표지: <자작나무 새>  


<자작나무> 종이에 연필, 38 x 25.7cm, 2016


올라갔으나 밑으로 쳐지는 선

두 개씩 가지 뻗음

뻗다가 급하게 꺾이는 선


흑백. 가로 선의 끊김 

거친 외곽

옹이 주변의 주름. 소용돌이

 

_2016/05/12 드로잉 노트자작나무 연구




<밭 갈리기> 드로잉 과정 _2016/05/12


이전에 그렸던 부대에 맞붙은 밭의 주인이 일을 시작한 것이 보였다. <공군 후 물 댄 논> 수채화를 완성하고 내려오는 길이라 이미 어둑하여 지나쳐 갔다가 다시 돌아가 그렸다. 처음 보는 밭 갈기 형태여서 담고 싶었고, 부대와 맞붙은 밭의 일하는 장면은 다시 보기 쉽지 않을 것이기에.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는 젊은 사장님께 박수근미술관 입주작가임을 밝히고 기계 이름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뒤의 부대는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_2016/05/12 드로잉 노트최관민 사장님 갈리기




<밭 갈리기> 드로잉 과정 _2016/05/18


뒷부분에 부대의 대강을 그려 넣었다. 고춧대로 보이는 봉들과 검은 비닐을 자세히 그려 넣어야 할 텐데 부대 안을 다니는 사람을 먼저 그려 넣고 좀 더 작물이 자라고 나야 보기 좋을 듯하여 다시 중단하였다. 


_2016/05/18 드로잉 노트부대




<밭 갈리기>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작물이 너무도 많이 자라 오히려 밭 갈리기 풍경과 맞지 않게 되어 부대 안에 일과 후의 장병 몇과 부대 담장, 수풀 등을 마무리하며 그려 넣었다.


_2016/06/21 드로잉 노트부대




<고추 검은 비닐 씌우기> 드로잉 과정 _2016/05/13


안대리 뒷산 아래밭 옥수수와 고추의 주변과 세부를 더 그려 드로잉들을 완성하고 오는 길, 택시운전을 하시는 집사님께서 텃밭에 고추를 심기 전 둔덕을 만들어 비닐 씌우는 작업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렸다. 늦은 저녁이라 이미 다 끝내 가시던 중이어서 얼굴의 디테일을 채 그려 넣지 못하였다. 주업이 농사가 아니어서 옥수수 조금, 고구마 조금, 마늘 조금, 고추 조금씩 밭에 구역을 나눠 줄지어 놓은 모양이 좋았다. 후에 다른 작물도 그려 넣어볼까 싶다.


_2016/05/13 드로잉 노트이봉호 집사님고추 검은 비닐 씌우기




<고추 검은 비닐 씌우기>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옥수수를 그려 넣었다. 고추의 자리와 옥수수 사이에 고구마 자리가 있으나 땅에 달라붙어 너무도 조그마하여 생략하였다.


_2016/05/18 




<능선 아래 나무> 채색 작업과정 _2016/05/13


작업실 앞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방문을 한다. 내 그림이 어찌 읽히는지, 그 소통의 정도와 힘을 가늠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사람들에게 쉼과 충전의 시간을 제공하는 좋은 기회임도 분명하다. 그러나 양구에서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이래저래 작업할 시간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분산되고 있다. 요즘 연이은 만남과 대화로 혹 내 그림이 약화될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업의 시간이 부족해지고 작업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며, 말이 작업보다 앞서게 될 위험도 많다. 


눈으로 보고 읽는
대화



모두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과 대화였으나 이제 다시 작업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작업의 과정이란 참으로 많은 절제와 외로움을 기반으로 한다. 결국 나는 입이나 글로 아닌, 눈으로 보고 읽는 대화를 택한 것이 아닌가. 이 방식에 걸맞은 생활 또한 감수해야 할 것이다.


_2016/05/17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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