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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영 Grace H Jung Aug 08. 2023

화가의 양구일기 22_이 모두를 담아서 좋다

양구 안대리 '공군 후 물 댄 논' 수채화

2016년 4월 19일 - 5월 12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28-51일 차.


<공군 후 물 댄 논> 수채화 과정 _2016/04/19


미완의 수채화를 두고 서울로 일주일이나 떠나 있었던 터라 논의 모양이 그새 바뀌었을까 예배 후에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대강 공굴어 두어 굴곡진 트랙터 자국 가득하던 물 대진 논이 이미 깔끔히 모내기가 끝난 상태였다. 게다가 부대 철책이 너무도 훤히 보이는 것이 억새를 다 쳐내버렸나 보다. 가는 길목의 드룹나무들도 이미 때가 지나 활짝 핀 강한 잎이 자라 있었다. 이럴까 걱정돼 떠나던 날 해가 다 지도록 논 부분만이라도 최대한 많이 그려놓았는데 안타깝긴 어쩔 수 없다.


삶의 터전
자연



내려오는 길에 오골계 주인 할아버지를 만나, 감자 싹들 사이에 비가 오지 않아 싹이 나오지 않은 비어있는 흙더미의 의미를 배우고 그 옆 부대가 2사단 사령부인 것을 들었다. 원래 6∙25 직후 미군부대 24사단이 있다가 한국군에 인계한 곳이란다. 마늘도 원래 훨씬 더 자라 쫑도 길게 나오고 알도 굵어져야 할 텐데 비가 오지 않아서 파모양으로 작다 하셨다. 땅 아래 100미터 이상 파 지하수를 얻는 것도 단단한 화강암 땅이어서 이천만 원 정도가 드는 데다 판다고 나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비가 역시 가장 바랄 것이라고.  


제주에 있을 때 미국에서보다 훨씬 더 자연에 밀착해서 반응하였는데, 양구에서는 관조의 대상으로서 자연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자연을 더 알게 되고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가게 되는 것 같다.


_2016/04/19 수채화 시작

_2016/05/01 수채화 노트:    대강 공군 




<공군 후 물 댄 논> 수채화 과정 _2016/05/02


일주일 새에 나뭇가지들이 연녹색 잎으로 풍성해졌다. 뚜렷이 보이던 부대 건물이 잎사이로 설핏 보일 뿐이다. 뒷산도 그 색과 형태가 완연히 달라졌다. 바뀐 것도 많고 오랜만이어서인지 그리는 속도가 더디었다.


새로 구매한 수필로 인해 얇게 번지게 해서 말리는 기법이 더해졌다. 그래서인지 겹침의 무게, 깊이감이 기분 좋게 얹혀 간다. 기억 속 논물의 청량함과 노을 속 산의 아스라함, 나무와 수풀의 묵직함과 사이사이 사람의 흔적이 아름답게 어우러지기를.


_2016/05/02 수채화 노트:    대강 공군 




<공군 후 물 댄 논> 수채화 과정 _2016/05/09


벌써 세 번째 발걸음이다. 오는 길에 밭일하시는 모습에 눈을 뺏겨 드로잉을 하느라 오늘도 결국 완성을 못하였으니 한 번 더 와야 하겠다. 논의 모습은 4월 19일 성글게 공군 후에 물이 대어져 있는 모양인데, 산과 나무는 풍성한 어린잎들을 하루가 다르게 키워가고 있어 거의 한 달의 차이가 나겠다.


맑고 투명한
겹침의 깊이



논물과 먼 산은 물의 표면 장력을 이용하여 가장자리가 짙어지는 얼룩을 이용하였다. 투명한 겹침의 효과를 선적 효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사생 수채화도 점점 본 작업의 회화기법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맑고 투명한 겹침의 깊이. 또한, 노을이 지는 때의 색을 담아서인지 붉고 푸른색의 어우러짐도 본 작업의 색채와 그 맥을 잇는다. 보고 그리는 것과 추상화 과정과 결과인 추상화가 모두 선과 색채와 기법에서 맥을 하나로 하여 내재된 힘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기를. 거의 완성이나 밝은 해 아래 세부를 확인하고 완성해야겠다.

 

_2016/05/09 수채화 노트: 공군    . 안대리




<공군 후 물 댄 논 Irrigated Rice Paddy> 종이에 수채, 28 x 39.5cm, 2016, 개인소장


드디어 완성하였다. 호선을 그리는 길 오른편으로는 나무들 사이로 부대의 건물이, 왼편으로는 마을의 건물이. 오른편으론 부대의 울창한 나무들이, 왼편으론 마을의 논이. 정면 끝에는 이 둘을 둘러싸는 산맥이. 시작과 끝의 시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 모두를 담아서 좋다.


_2016/05/12 수채화 노트: 마을과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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