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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영 Grace H Jung Aug 01. 2023

화가의 양구일기 21_군복 입은 천사를 보내셨구나

양구 '옥수수밭' 스케치. 작업실 '단장의 능선' 색 드로잉

2016년 5월 10-11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49-50일 차.


<옥수수 심기> 종이에 먹, 25 x 23cm, 2016


'공군 후 물 댄 논' 수채화의 마지막을 점검하고 완성하러 갔는데, 밭과 논 주인 가족이 옥수수를 심으며 마침 쉬는 시간 과일을 들고 계셨다. 참외를 한 쪽 받아먹으며 그림도 보여드리고 이곳 풍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들었다. 9월 경에 벌이 집을 짓는데 아주아주 큰 벌집이라 그렸으면 하셨다. 곧 아카시아 꽃이 만발할 것이라고도. 


함께 맞춘 호흡



옥수수 심기는 모종이 다 떨어지며 금세 끝이 났다. 할머니와 며느님 둘이서 둔덕을 사이로 마주하고 약간 엇갈려 착착 심고 이동하여 일하시는 모양이 정겨웠다. 심긴 옥수수는 이들이 함께 맞춘 호흡의 흔적으로 튼튼히 자라나겠지. 


산짐승이 콩류는 다 먹어버렸는데 작년에 옥수수는 안 먹길래 올해도 옥수수를 심는다 하셨다. 내가 수채화를 그리고 있던 중에도 고라니를 두 번이나 보았으니.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엔 올무로 잡기도 하셨다며, 이런 손해에 대해서도 그저 흐르듯 어허허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참으로 자연 그대로가 아닌가. 


그저 흐르듯
자연 그대로


종일 허리 굽혀 농사일하는 것이 내 보기엔 더 힘들 것 같아 보이는데, 이전에 종일 땡볕에 서서 사과나무 그리는 것을 보았고 또 해는 지는데 혼자 산자락에 남아 그리는 걸 보셨다며 힘들고 위험할 것을 걱정해 주셨다. 


_2016/05/11 드로잉 노트옥수수 심기박옥이 할머니윤영숙 어머니

_2016/05/13 드로잉 노트옥수수 밭의 둔덕의 모양과 옥수수를 물과 함께  그려 넣었다.




'단장의 능선' 30호 4폭 작업과정 _2016/05/10


제일 처음에는 가로로 길게 네모난 스케치북 4장에 크로키를 하였고, 다음에는 화첩 6폭으로 가로로 더 길게 스케치를 하였는데, 세로로 긴 캔버스 4폭으로 옮기려니 먼저 종이에 실험을 하였다. 수채로 밑작업을 하고 아크릴로 빠르게 전체적인 색감을 잡아나갔다. 크로키 당시 적어놓은 생각들로 흑백의 드로잉들이 색을 입는 것에 도움을 받았다.


우리의 피가
스민 땅



땅의 색이 좀 더 핏빛이어도 되지 않을까. 단지 낙엽과 흙이 빛을 받아 빛나는 색이 아니라 우리의 피가 스민 땅. 바위의 회색은 훨씬 더 메마르고 거칠어야겠다. 초록의 풍성함은 변화된 모습. 어쩌면 이 4폭이 시간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도 좋을 듯하다. 

 

_2016/05/10 작업노트단장의 능선




'단장의 능선' 2호 4폭 작업과정 _2016/05/10


‘단장의 능선’ 작업 두 가지를 시작하였다. ‘꺾인 나무’에서 불안한 먹선과 급작스런 진하기에 당황하였고 ‘단장의 능선’ 4폭 채색에선 갈피를 못 잡아 지친 몸이 가라앉은 감정으로 더욱 지쳐가고 있었다. 첫 단계의 채색작업이라 시행착오도 많아 더 힘겨웠는데, 오후 5시경 그리다가 전면 유리창을 보았을 때 밖에 군복 입은 대령님이 지나던 길이었는지 멈춰 창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군복 입은
천사



눈이 마주치며 너무 놀라 당황하였는데 웃으며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워 주었다. 진정이 되자마자 밖으로 나갔는데 그새 저 멀리 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분투하는 내게 군복 입은 천사를 보내셨구나. 큰 격려와 위로가 되어 이후의 작업에 즐겁게 힘을 낼 수 있었다. 일반인을 감동시킬 힘이 그림에 있기를.


_2016/05/10 작업노트: 단장의 능선 


'단장의 능선' 4폭 색 드로잉 작업과정 _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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