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고추밭' 스케치. 작업실 '능선 아래 나무' 먹 드로잉, 콜라주
2016년 5월 9-11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48-50일 차.
'공군 후 물 댄 논' 수채화를 완성하러 가는 길에 오골계 키우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고추 지지대를 세우고 묶어주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수채화를 꼭 완성해야 하니 이리 눈길을 주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할아버지는 기다란 지지대를 고추 옆에 박아 넣고 할머니는 지지대와 고추를 잘 묶어주는 모습이, 밭 가득 빽빽한 봉들 사이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시며 일하시는 모습이, 아직 한참은 높다란 저 철봉 끝까지 자라날 가녀린 고추를 정성스레 하나하나 보살피는 모습이 좋아 꼭 담아야 했다.
세우고
묶어주는
‘우리 또 그리네’ 하며 웃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좋고, 혹시나 확인하려 ‘이거 고추 묶어주시는 거죠?’ 물었더니 ‘저 높이 까지 자랄 거요’ 하시는 할머니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도 좋았다.
홀로 그리러 가는 길목에 두 분과 잠시라도 나누는 대화가 마음을 따뜻하게, 풍성하게 해 주었다. 수채화 시간 때문에 고추와 밭의 모습은 후일을 기약하였다.
_2016/05/09 드로잉 노트: 고추지지대 작업
_2016/05/16 드로잉 노트: 고추의 모습과 지지대에 묶여있는 모양을 더 그려 넣었다
3월 말 꺾여있던 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른다. 아직 잎이 날 계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나 산 전체에 빽빽한 가지와 기둥뿐인 나무들의 위로 솟는 선들의 연결이 능선의 저 끝 푸른 소나무들까지 면면히 이어져있어, 꺾인 나무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있다.
과거의 생의 투쟁
미래의 생의 유희
꺾인 나무는 현재의 모습일 뿐, 저 능선 위까지 달려 올랐던 죽음을 무릅쓴 과거의 생의 투쟁도, 온전히 회복되어 거닐며 누릴 미래의 생의 유희도 찬란한 빛의 불길과 같을 것이다.
거친 바위를 넘어서는 나무의 수직 상승의 연결 선
꺾인 나무에서 피어나 둥실 떠오르는 동그란 번짐
_2016/05/10 작업노트: 단장의 능선 앞 꺾인 나무
아무래도 꺾인 나무를 그려 넣은 필치가 약하여 콜라주를 하였다. 아주 섬세하고 작은 조각으로.
_2016/05/11 작업노트: 단장의 능선 앞 꺾인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