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영 Grace H Jung Sep 05. 2023

화가의 양구일기 26_유일의 산물이 아닌가

양구 '곰취축제' 스케치

2016년 5월 20-22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59-61일 차. 
표지: <곰취축제 헌병> 


<걸그룹 공연> 종이에 먹, 10.7 x 15.8cm, 2016


첫째 날, 축제의 이모저모를 그려볼 수 있으려나 싶어 손바닥 크기의 조그만 스케치북을 들고 가 보았다. 그런데 여러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받고 지방 축제를 처음으로 구경하는 터라 이곳저곳 시간을 뺏겨 나오는 길 밤에 마지막으로 공연장에 들리기까지 스케치북을 꺼낼 생각을 못했다. 


양구가 워낙에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군인도시이긴 하나 걸그룹 공연이 한창인 무대 주변은 참으로 흥미로왔다. 군복 입은 남자 군인들과 사복입은 남자 직업군인들, 심지어 양손에 잡은 아이들마저 사내아이에 남학생들. 여성들도 분명 있을 텐데 아마도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 가려졌겠거니. 이 많은 무리를, 조그만 스케치북에, 어두운 공간에서, 현란하게 돌아가는 공연 중에, 그린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어느 정도의 분위기를 담아낸 듯하다. 


_2016/05/20 드로잉 노트곰취축제걸그룹 공연




<씨에스타> 종이에 먹, 10.7 x 15.8cm, 2016


걸그룹 마지막 공연은 유명한 그룹인 피에스타였다. 잘못 알아들어 씨스타라는 많이 들어본 그룹 이름과 섞여 이해한 탓에 ‘씨에스타’인 줄 알고 적었다. 많은 남자들이 놀랍게 열광하였는데 치안을 위한 경찰관도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동영상을 찍느라 바빴다. 


선택된 시간과 장면이
구성된 기록



빠르게 그려나가긴 했어도 드로잉이란 동영상이나 사진처럼 동일한 시간의 순간적 기록 혹은 순차적 기록은 불가능하다. 여러 시간대, 여러 다른 동작들. 작가의 눈으로 발견되고 선택된 시간과 장면이 구성이 된 기록. 그 누구도 이 시대에 스케치북과 붓을 들고 이 시간, 이 장면, 이 느낌, 이 생각들을 기록하지 않았으리라. 보고 그려놓기까지의 숱한 생각, 판단, 결정. 거기에 이를 가능하게 할 기술, 감각. 어찌 보면 드로잉이란 참으로 놀라운 인간만의 유일의 산물이 아닌가. 

 

_2016/05/20 드로잉 노트씨에스타




<창작공예인>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창작공예인 부스의 뒤편에 주전부리 겸 술자리가 벌어져 있었다. 축제기간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인데 각기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이 전면에 드러나는 군상을 그리기는 미술관에서 그린 군인들 무리 이후 처음인가 싶은데 희정의 표현에 의하면 만화와 민화의 경계라. 개개인의 특징, 무리로서의 이야깃거리, 전체 장면으로의 시각적 재미 등 군상을 담아낸다는 것은 많은 도전을 준다.

 

_2016/05/21 드로잉 노트곰취축제 창작공예인최능출 군종관 바리스타염색 이담연권지영 상사




<패션쇼 준비> 종이에 먹, 25.6 x 18.5cm, 2016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님이 참여하는 시니어 패션쇼의 준비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박인숙 명예관장님의 뒷모습과 정미란 씨의 모습이 마침 함께 있어 그려보았다. 여인의 섬세한 곡선이 유려하게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것을 알았다.


_2016/05/21 드로잉 노트패션쇼 준비




<곰취축제 헌병> 종이에 먹, 15.8 x 10.7cm, 2016


양구군의 큰 행사라 뙤약볕에도 헌병이 교통정리를 돕고 있었다. 가까이서 대놓고 그리기가 민망해 먼발치에서 그렸더니 모자나 얼굴의 디테일이 담기지 못하였다. 그나마 복장의 디테일이 어느 정도 맘에 들게 나와 다행이다. 


_2016/05/22 드로잉 노트곰취축제헌병

 



<캘리그래피>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앉아 쉬면서 바라다보이는 창작공예인 라인의 끝 쪽, 캘리그래피 부스가 마지막날 오후 늦게도 손님이 꽤 있어 그려보았다. 위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한지도 재미있고. 아직도 사람을 그릴 때 선이 길게 한 번에 나가지 못할 때가 꽤 있다. 닮게 그리고 싶다는 욕구와 예술적 선의 흥취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정짓지 못하는 결과이리라. 


_2016/05/22 드로잉 노트곰취축제캘리그래피


매거진의 이전글 화가의 양구일기 25_힐링이 되었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