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생 1
2024년 04월 09 – 30일
양평 복포리 강변
오랜만에 수채 도구를 들고 나와 야외에서 그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양평의 강변에 나오니 하늘은 파랗고, 산은 푸르고, 물은 맑고.
풍경이 이토록 그 자체로 아름다우면 나는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당혹스럽다. 어떻게 그려도 이 온전함을 담을 수 없을 듯하기에.
한참을 둘러 찬찬히 보니 내 눈에 밟히는 이질적인 것이 있다. 싱그러운 자연인 줄 알았던 강변은, 봄이 완연한 이 계절에 퍼석하게 마른 황갈빛 덩굴이 뒤덮고 있다. 근자에 외래종 덩굴이 우리 환경을 침해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것일까.
자세히 보니 엄청난 두께로 뒤덮은 덩굴 덩어리를 뚫고 나온 얇은 줄기 하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위 노란 꽃들. 개나리구나. 저 죽음의 무게를 이겨내고 빛나는 생명이라. 드로잉을 두 장 빠르게 그려보고 자리를 잡고 앉아 수채화를 시작했는데 바람에 벚꽃 잎이 날려온다.
_2024/04/09
깨끗한 물
녹빛을 입기 시작한 산
노니는 오리들
멀리서 보는
우리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가까이 강변
뒤덮은 마른 갈색 덩굴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한 줄기 노란 개나리
_2024/04/21
해는 져가고 수채화를 한창 마감하기 애쓰는데 거룻배를 타고 온 어부가 내 풍경 속 강에 자리하고, 넣어둔 그물을 걷어낸다. 이미 수채로 많이 칠해진 화폭에 담기엔 늦었던 터라 그저 두었는데 현장을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인가. 수채화를 잠시 밀쳐두고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아차, 이미 일을 다 끝냈던가. 어부는 배를 빠르게 몰아 사라진다. 빠른 크로키 선 몇으로 흔적만을 담았다.
_2024/04/24
손이 점점 느려진다.
닮게 그리려는가. 무엇을 그리려는가.
닮게 그리고 싶다는 욕구와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무엇,
날 애초에 잡아끌었던 그것을
표현해내고자 하는 소망 사이
붓질은 더욱 느려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_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