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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영 Grace H Jung Jun 24. 2023

화가의 양구일기 9_왜 끌렸을까

양구 정림리 '농촌', 안대리 '군부대' 스케치

2016년 4월 7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16일 차.

 

<농촌과 부대> 종이에 먹, 21 x 31cm, 2016


왜 딱히 눈길 끄는 것 없는 이곳이 끌렸을까. 곰곰 그리는 내내, 그리고 난 후에도 궁금함이 지속하였다.


양구는 내게 분명 살아가는 장소로서 현실임에도 너무 비현실적이다. 정림리 뒷산을 바라보며 그리던 때, 내가 서 있는 곳이 소리가 모이는 장소인 듯 마을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들 - 핸드폰이 고장 나서 고치러 간다든지, 빈 리어카 끌며 힘드냐는 등 이곳저곳에서 맥락 없는 촌의 일상이 들려오고, 동시에 군부대의 하루가 마감되는 듯 용어조차 익숙지 않은 그들의 일상이 - 총기를, 야간근무자는, 누구누구 일병 어디로 와달라는 확성기 소리와 자유시간인 듯 운동하며 지르는 소리, 심지어 아주 크게 노래 부르는 소리, 충성! 경례하는 소리까지 전혀 그려낼 길 없는 부대의 일상이 들려왔다. 


땅을 일구고
땅을 지킨다



높다란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정림리. 한쪽은 땅을 일구고 한쪽은 땅을 지킨다. 이 둘의 세계는 들리는 일상의 이야기와 용어만큼 섞이지 않고 펜스로 나뉘어 있다. 복장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다. 풍경으로는 나뉘지 않은 산에 둘러싸인 조그만 건물들, 나무들, 차들, 그 사이 전깃줄의 얽힘들. 그러나 그 안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 한 마을이 이렇게 특수한 휴전의 전방지역 환경하에 극명히 그 이질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갓 이주해 온 내게 더 특별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어쩌면 이보다 더 첨예하고 복잡한 경계와 얽힘에 놓여있는 것이 아닐는지.


<정림리 할아버지> 종이에 먹, 21 x 31cm, 2016
<파심기> 종이에 먹, 각 25 x 23cm, 2016


땅을 일구는 사람들을 더 많이 그려야겠다. 군인들의 모습도 스케치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함께 공존하는 마을의 모습도, 모든 걸 둘러싸 아우르는 산맥의 모습도. 이렇게 그리고 그리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난 무얼 보는지, 무얼 듣는지, 무얼 생각하는지. 무얼 그려서 말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리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_2016/04/07 드로잉 노트정림리와 안대리농촌과 부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날 지키시고 주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주께서 내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그때까지 주는 날 떠나지 아니하실 것이다. 계속되는 약속의 말씀. 내가 처음 이 말씀을 붙잡고 기약 없는 유학길에 올랐던 것처럼 나는 아직도 홀로 있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으며 매번 이 말씀에 큰 위로와 힘을 얻는다.

 

_2016/04/07 아침묵상( 28:15) 중에: 떠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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