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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Dec 17. 2021

골프는 퍼포먼스다

만년 백순이의 변명

2019년 4월, 명문 구장 태광 cc에서 나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공을 쳤다. 친구들은 다들 잘 치는 수준이었고 캐디님한테 특별히 나를 부탁한다면서 돈을 쥐어주는 친구도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맘을 전한다)

 필드가 익숙한 친구들은 날씨와 풍경 바람 얘기를 시작으로 먹고 마시기까지 하며  골프를

'즐길 줄 아는' 것 같았다. 눈에 친구들은  프로나 다름없어 보였다.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속이 미슥거렸다. 콩쿠르대회에 노래하러 나가는 기분이었다.

세 번째로 티샷을 하러 티박스에 오른 순간 깨달았다. 골프는 최소한 네 명의 관중을 둔 퍼포먼스라는 것을!

예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뒤에서 떠들기나 좋아하지 멍석을 깔아주면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어서 보고 듣는 사람이 안쓰러워하는 '무대 공포증'이 있는 나와  골프는  애초 맞는 운동이  아니었다. 혼자 수련이 중요한 요가나 필라테스  피티만  즐겨온 나로서는 내 몸짓을 누군가  샅샅이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경 쓰였다. 심지어 티박스에 올라 자세 잡고 스윙 연습해보고 치는 친구들을 지켜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으니 누군가 나의 그런 동작 하나하나를  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백스윙을 하고 공을 날리는 동작이 구경꾼들 앞에서  무용이나 발레 하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 골프는 남의 시선을 즐기고  남들이 볼 때 더 멋지게 스윙을 휘두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들에게 유리한 운동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나는 이런  인간이다; 어린 시절,  새 옷을 입고 부모님을 따라 친척집이나 사 많은 장소에 갔다가  누군가 "우리 감이, 꼬까옷이 너무 이쁘다!"라고 외쳐서 그곳의 많은 시선들이 내게로 향하면 엄마 뒤에  숨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를 주목하게 만든 그 사람을 진심을 다해 원망하고 미워했다. 다들 한 마디씩 이쁘네 귀엽네 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일이 고역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날 그렇게 대해주길 바랬다. 중고등학교 땐 나를 콕 집어 노래를  시킨 친구와 몇 달은 말을 안 했다. 그  친구는 아마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앉아서  떠들 땐 다들 편하고 친한 친구들이라도 앞에 나가면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고 시선도 둘 데 가 없었다.


나이가 공으로 먹는 법은 없다고  옛날에 비하면

많이 대범해지고 배짱도 생겼지만 주목받는 자리는 여전히 불편하고 싫다. 이런 내가 남들 앞에서 온몸을 쓰는 골프가 맞을 리가 없는 것이다.

또 티샷 할 땐 다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해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정적을 유지해주는데 나는 그것도 맘에 안 든다. '백색 소음'이라고 어느 정도 시끄러워야 공부도 잘되고 잠도 잘 자는  사람이 있는 법인데 신나게 떠들다가도  티샷에 누군가 서면 약속이나 한 듯 너무  조ㅡ용한 것도 나로선

심리적 부담에 한몫한다. 너무 조용해서 집중이 더 안되고 시선이 더 신경 쓰여 뒤통수가 따갑다.

박스에 서면 그립을 체크하고  백스윙을 할 때 채를 밑으로 끌다가 팔을 구부려 코킹을 했는지 왼쪽 어깨가 내 턱밑까지 왔는지 생각하고 박자를 맞춰 몸과 팔을 돌려 치는데 생각은 백스윙까지이고 그다음 약 1~2초간은 어찌 쳤는지 찰나의 순간이다. 스퀘어가 됐는지  오른팔은 펴졌는지 체중이동이 되면서 채는 던졌는지 머리는 급하게 들지 않았는지 피니쉬는 잘 된 건지... 이렇게 차분하게 수만 가지 생각할 것도 많은데 갑자기 조용한 분위기에선 멘털이 무너진다. 그립이고 백스윙 자세고 빨리 치고 내려오고 싶은 생각뿐인 것이다.

남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낯설고 부끄러운 기분 때문에 오래도록 골프가 늘질 않았다.

필드의 추억은 스코어를 떠나 훈훈한 분위기였고 (내 개인적인 심리적 부담감은 차치하고) 즐거웠다.  세 친구들의 열정적인 배려로 소위 멀리건을  홀마다 받았다. 또 그들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농담하고 어쩌다 공이 잘 맞으면 재능이  있다고 추켜주었다. 칠 때마다 굿샷!나이스! 낫 배드!라고 외쳐 주어서  나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예의를 배웠다^^

 그날 내가 제일 잘한 것은 그린 위 퍼팅이었는데 ㅡ잘 넣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없으니 과감하게 굴린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친구들은 퍼팅이 젤 중요한데 퍼팅 신동이라며 어떻게든 주눅 든  나의 기를 살려주려고 애를 썼다. 뿐만 아니라 다들 푸짐한 간식을 준비해와서 카트에 앉으면 먹었다. 이 친구들 분에  나는 골프 갈 때는 반드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가는 것이 당연한 미덕으로 인지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어쨌든  홀을 지나며 내 긴장도 차츰 풀렸고 공도 참 많이 치고 웃기도 많이  웃은 날이었다. 동반자가 정말 중요한 운동이 골프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나인홀 끝난 후엔

그늘집에서 맥주도 한 잔 하고 부침개도 먹었다.

잘 관리된 아름다운 필드와 푸른 하늘, 잔잔한 바람,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굿샷을 한다면

골퍼들에겐 이곳이 천국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찌어찌 공을 굴리며 18홀을 다 도니 스코어와는 별개로  산 정상에 오른 느낌이었다.

다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맛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다음 필드를  또 잡았다. 골프는 꼬꼬무ㅡ꼬리에 꼬리를 무는 먹방과  약속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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