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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Dec 18. 2021

명랑 골프 성공기

골프는 사교다

꼬꼬무 골프

한번 시작한 골프는 꼬리에 꼬리는 무는 다음 라운딩 약속으로 이어진다.

팀을 이루어 쳐봐서 네 명이 하나같이 조화롭고 그간 알고 지내던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다음 약속을 잡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아침부터 만나 보통 한 사람의 차를 타고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을 함께하기 시작해 그늘집 포함 4시간 반에서 5시간가량의 라운딩, 그리고 뒤풀이 2시간까지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는 골프. 때문에 라운딩 한 번으로 잘 지내던 사람이 더더욱 막역한 사이가 되거나 반대로 티타임조차 안 하는 서먹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초급자에서 중급자에 이르기까지 골프는 한 홀을 도는 짧은 시간에도 드라이버와 세컨 어프로치 샷이 전부 다를 수 있고 맘먹은 대로, 어제 연습한 대로, 레슨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때 여과 없이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의 성격이다.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탄식 정도야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속상해하거나 남 탓을 하거나 잘못된 샷 몇 개에 화를 참지 못하거나 하는 과잉 반응은 나머지 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본인이 잘못 쳐 놓고 분위기를 망친다면 그보다 무례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실망을 동반자를 위해 누르는 노력이나,  남의 미스샷을 눈감아주고 격려해주는 것 모두  필드 위의 아름다운 배려가 아닐까?

나는 한 홀에도 수도 없이 많은 샷을 할 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즐겁게 생각했다.

"이 비싼 그린피를 내면서 투온 쓰리온에 원펏 투펏으로 끝내기엔 돈이 아까워.. 여러 번 치면서 필드에서 연습할 수 있다니 감격스럽다"  아니 실제로, 너무 잘 치는 사람들은 기다리는 시간도 많고 채를 몇 번 휘두르질 못하니 좀 안돼 보이기까지 했다. (혹자는 그래서 내 실력이 안 는다고 비아냥거리지만 뭐 어쨌든)


골프는 멤버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스코어에 집착하는 사람들, 명랑 골프 하는 사람들.

나는 당연히 후자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그동안 밥친구 술친구 하던 친구들 동생들 언니들 모두는 실력은 각각이어도 명랑 골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었다. 완벽한 유유상종이었으니, 정말  럭키한 셈이다.

골프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식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A팀 네 명이 나가는데 한 명이 못 나가게 되면  또 다른 팀에서 차출한다. 나를 믿고 새 멤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쳐보니 웃음 만발, 그러면 그 팀은 A- 1이 되고 내가 내 친구의 팀에 땜빵으로 불려 나갔다가 화기애애, 그 팀은 A-2가 되는 식이다. B팀 C팀 D팀이 B-1, B-2, C-1, C-2로  수 없이 늘어나고,  결국  어느 누구와 팀을 섞어 나가도  즐겁게 18홀을 돈다. 결국은 내가 속해있던 친구들 동생들 언니들  서로의  멤버가  어울려 치게 되고  골프를 매개로 결국은 '위 아더 월드'가 되는 것이다.  잘 치건 못 치건 우리들은 서로 소개한 사람들이면  실력보다 인격을 믿고 어우러져 즐겁게 공을 쳤다.  프로급  실력을 가진 동생 언니들을 소개로 만나 라운딩을 했지만   가끔 옆으로 공을 보내는 묘기까지 부리는 나를 무시하거나 한심해하긴 커녕 원포인트 레슨을 자처하고 여러 번 칠 기회를 주었다.

모두들 내가  주눅 들까 걱정이었는지 격려 멘트도  날려줬다. 


"감이는 소질이 있어."

"감이처럼 열심히 연습하면 금방 돼."(진짜 매일 연습하던 때였다. 늘진 않았고 ㅠ)

"나는 구력이 있는데도 이모양인데 뭐, 내가 너만 때는 공을 띄우지도 못했어."

"3년 지나면 똑같다. 걱정마라."

"너는 존재 자체로 충분해. 즐겁게 치자."

"다 똑같아. 너 진짜 잘하는 거야."

"감이는 이쁘니까 이 언니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 못생기고 잘 치는 것보다 낫다. 괜찮다."(너무 못 치니까  이런 거짓말까지)

"감이 언니, 서두르지 말고 다시 쳐. 캐디 언니 한번 더 칠게요."

"저번보다  샷이 좋아졌어."

"골프는 계단식으로 느는 게 아니라 치다 보면 갑자기 늘어. 실망하지 마."

"내년엔 진짜 잘 치겠다."


아, 갑자기 울컥한다. 골프에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소질 없는 나를 3년째 이렇게 필드 위에 있게 한 이유가 내 소중한 멤버들 덕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겉으론 모자란 사람처럼 웃었지만 속으론 부끄러워서 저 숲 속으로 숨거나 집에 가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글라스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날씨보다 스코어보다 중요한건 단연코 멤버다!

 내게 골프는 사교다


골프 약속이 잡히면 레슨을 받고  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하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즐겁게만 치던 몇 개월이 지나자 타수를 줄여볼 비법이 있을까 하여 레슨 프로를 바꾸기도 했다. 특히 전날은 꼭 가서 채를 휘둘렀는데 잘 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만큼이나  항상 나를 격려해주는 멤버들에게 보은하고 싶은 맘도 컸던 것 같다. 멤버야 기본으로 100점이니 말할 게 없고 어쩌다 공이 잘 맞는 날은 두 배 세 배로 신이 났다. 오 이 맛이구나! 골프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더군다나  내 샷이 좋은 날은  동반자들이 나보다  더욱더 기뻐해 주었다. 그간 공 굴리고 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나 보다 미루어 짐작하니 고마움과 함께 미안한 맘이 차올랐다. 사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끼리 치면 더욱 재밌는 게임이니까.


연습을 열심히 하고 라운딩  당일, 정성껏 준비한 간식을 싸들고 다 같이 만나 골프장으로 향하는 길은 설렘과 동시에 긴장을 느끼게 된다. '오늘은 어쩌려나... 공이 좀 맞아야 할 텐데...' 심란한 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골프장에 도착하면  오늘은 드라이버만 제대로 하자! 한 가지 목표만 세웠고 그도 안되면 세컨만! 그도 안되면 퍼팅만! 하는 맘으로 즐겁게 쳤다. 홀마다 잘되는 샷이 다르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 오늘 긴 시간 많이 웃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은  그날 고민한다고 갑자기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내 고유의 성격과 맞는 운동도 아니었으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동안   밥 먹고 술 먹고 수다 떠는 시간을 이렇게 아름다운 필드 위에서 더욱  즐겁게 보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라운딩을 거듭하면서 '무대공포증'도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듯했다.

친구들은 내 티샷 때  차라리 떠들어 달라, 보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흔쾌히 들어줬다.

돌아보면 모두들 철딱서니 없는  초급자인 나를 위해 더할 나위 없이 큰 양보를 해준 것 같다.


누가 멤버가 되어도 18홀이 끝나면 우리는  늘 같은 말로 행복한 하루를 정리했다.

" 멤버 최고! 날씨 최고!"

80대부터 120대까지 참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멤버들이었지만  분위기는 언제나 훈훈했다. 힘든 운동을 좋아하는 내게 골프는 사실 운동이라기보다  '필드 위의 사교'였다.


그러나, 이 즐거운 사교는 '대학 동창 골프 동호회'에 들어가며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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