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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Feb 26. 2022

아들이 선물한 스코틀랜드 3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 그리고 골프 버디( Birdie 말고 Buddy)


작년에 아들 학교가 결정되고  남편과 스크린골프를 치러가면, '언젠가 골프의 본고장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에서 칠 거니까 연습해야 해'하며 종종 구장을 그곳으로 정하고 플레이를 했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말이 쉽지 스코틀랜드에서 무슨 골프를 치겠나 싶었다.) 스크린 속이었지만 평평하고 드넓은 초록 필드를 둘러선 고성들이 특이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지던,  그 옆으론 화이트 샌드 바다가 펼쳐져있던 환상의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 거기선  거의 남편을 이겨먹었다.(다는 아니고 몇 홀만)

 

가끔은 말이 씨가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꿈이 아닌  현실 속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에  있었다.

던디 seagate  정류장에서  20여분. 가는 길엔 바다가 펼쳐진 다리를 건너고, 들판의 평화로운 양 떼와 말들을 보는 건 보너스다.  영국 하면  또  이층 버스,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내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좋아?" 골프를 모르는 아들은 심드렁하게 물어본다. "응 좋아. 내가 살다 보니 네 덕을 다 본다. 아들아." 초행길이 두려워서 바쁘다는 아들에게 사정사정해서 너도 무조건 가봐야 하는 곳이라며 끌고 왔다.

종점에 내려서 5분도 못 걸으니 골프숍 거리가 나타났고... 샵들을 지나 왼쪽으로 꺾자마자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갑자기 펼쳐진 올드코스가 눈 앞에 나타났다.  나는 숨이 다 막혔다. 벅차오르는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사진을 투척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가슴이 탁 트이는 올드코스 전경
그 유명한 스윌컨 번 브리지. 우승자들은 이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고.
골프장  바로 옆의  바닷가. 모래가 밀가루같이 부드럽고 곱다.
애초 양을 키우던 들판이었다는 이곳은 목동들이 바람을 피했다는 엄청난 크기의 벙커들이 있다. 크기는 달라도 깊이가 매우 깊다. 들어가 바람도 피하고  누워보고 싶었...


골퍼들에게 이곳은~

15세기에 골프가 시작된 곳, 골프룰이 처음 만들어진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여왕 퀸 메리도 골프를 쳤던 곳이니 그 역사와 상징성이 남다른 곳이리라. 오픈 챔피온쉽의 우승은 골퍼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과지만 세인트 앤드류에서의 우승은 오랜 전통으로 특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는 이곳에서 두 번씩 우승을 했다고.


버킷리스트였지만 여기를 와볼 수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너무 쉽게 얻은 이 행운 앞에서 나는 마치 이곳에서 대회를 치르는 선수라도 되는 양 흥분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추워도 춥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추위를 느낄 정신이 없었다.

필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바람을 맞으며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주욱 걸었다. 골퍼들의 공만 잘 보면 필드 안으로 막 걸어 들어가 사진 찍는 것도 허용되었다. 정말 신기했다. 만일 한국에서 골프를 치고 있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이 마구 필드를 가로질러 다닌다면?사슴이 나타나고 노루가 나타나는 일보다도 더 놀라운 일이겠지.


골프 치는 팀을 따라 간격을 두고 걸었다. 그들의 샷을 보고 그들이 걷기 시작하면 따라 걸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스윌컨 번 브릿지를 찾기 위해 골퍼들에게 묻기도 했다. 골프를 치면서도 그들은 너무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고 공 조심하란 말도 덧붙였다.

코스를 한편으로 둘러선 고성들은 거의가 호텔들로 전 세계의 골퍼들이  패키지로 끊어 예약을 하고 머무르는 곳이라 한다. 놀라운 것은 코로나로 주춤해졌지만 원래는 핫시즌인  5월부터 10월 정도까지 이 올드코스 패키지는 엄청난 고가의 가격에도 몇 년 치 예약이 동이 났을 정도라 하니  골퍼들이 어느 정도로 소망하는 성지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비시즌에도 올드코스의 그린피는 링크된 다른 코스의 두세 배를 받는다. 그 올드코스를  내 집 앞마당처럼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다니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날은 답사 겸 골프 박물관과 올드코스를 돌아보고  클럽하우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골프의 탄생지인 만큼 이곳의 티 하나 볼마커 하나도 가격을 떠나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샵에 들러 한국의 끈끈한 골프팀들 선물을 좀 사고 이곳에서 골프 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한 가지 슬픈 소식은 혼자서는 올드코스에서 칠 수 없고, 칠 수 있다 해도 개런티 된 스코어가 요구되었다. 나 같은 백순이는 팀이 있어도 올드코스에서는 칠 수가 없는 것이다. ㅠㅠ 그곳 필드의 풍경을 눈이 시리도록 담고 골퍼들의 친절도 마음에 새기고 잔디를 마구마구 밟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엔 언젠가 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올드코스가 보이는 클럽하우스 식당
Birdie는 못해도 Buddy를 만나다


 그다음 날, 아들은 학교로 나는 세인 앤드류 올드코스로 등교했다.

이든 골프클럽하우스를 찾아 채를 빌리고 골프를 치기로 했다. 여러 개의 코스가 링크되어있는 세인트 앤드류 링크 코스 중 초보자도 부담 없이 혼자 칠 수 있는 Balgove Course로 안내받았다. (딱 보면 스코어가 나오나)

그날따라 날씨도 봄 날씨, 바람 한점 없었다. 스타터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티를 꽂는다. 12월 1월 채 한번 못 잡아보고 정말 몇 달만에 치는 거라 보는 사람은 없어도 긴장이 되었다. 머릿속으로 우리 프로님의 구령에 맞춰  천천히 백스윙을 하고 채를 휘둘렀다.

조오기 앞에 툭.

에휴... 그닥 길지 않은 첫 홀을 몇 번을 쳐서 그린까지 갔는지 세기도 귀찮았다. 연습도 못한 데다가 남의 채라 그렇지. 구시렁대며 두 번째 홀에 서서 저기가 내 그린이겠거니 뻥 날렸다.

  ! 이번엔 제법 잘 맞았다. 의기양양하게  걸어가서 그린을 향해 세컨 샷을 치려는데 난데없이 저~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린다. 

노우~~~~~어쩌고 저쩌고  남자 넷이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지른다.  그 그린 ' 네 거 아니'란다. 헐!!!

나는 너무 창피해서 정말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지만  쏘리~~ 하고 웃으며 공을 집어 들고 세 번째 홀을 찾아 나섰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그들은  활짝 웃어주었다.

 "나는 진짜 바보야. " 클럽하우스에서 쥐여준 코스 지도를  잘못 본 것이다.   너무 창피해  시무룩하게 세 번째 홀을 찾아 를 꽂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조인할래?"

"조인????!!!"

"응 저기 우리 와이프도 있어. 같이 치자."

"코스가 헷갈려. 조인해준다면 정말 고마워!!."

"코스 못 보는 거 당연한 거야. 혼자라면 나도 그랬을 거야~"

그런 따스한 말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내 바로 앞 팀이었는데 헤매는 날 보고 있던 것이다.

비로소 제대로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어리버리한 나와 기꺼이 조인해준 고마운  골프버디들


Dawn과 Lain부부는 그렇게 만나 골프버디가 되었다.  그들이 있으니 나는 더욱 신중하게 쳤고 비거리는 짧았지만 따박따박 그린을 향해 직진했다. Buddy  앞에서 Birdie도 하고 파도 몇 번 했다. 그들은 나의 3년 구력을 믿을 수 없다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그들은 애버딘에 사는데 1박 2일 골프를 치러 왔다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여기 왜 왔냐 아들은 어느 학교 다니냐 남편은 뭐하냐 딸은 전공이 뭐냐 또 한국 사람들은 골프를 즐기냐  개인 호구조사부터 나라 이야기까지 많은 것을 물었다. 물론 자기들 소개도 자세히 했다.  레인은 사업을 하고 던은 교사라 했다.  딸은 중학생 초등생 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골프를 치다 보니  18홀이 금세 끝이 났다.


내일도 칠래? 낼은 다른 코스 어때?라고 말했다.

"올드코스?" 나도 모르게 손을 모으며 물으니 "뉴코스"라고 해서 김은 조금 샜지만, 단박에 오케이. 사실 뉴코스나 올드코스나 나에겐 감지덕지다.

이들 부부 덕분에 나는 연달아 이틀을  세인트 앤드류 링크 코스들 중 두 가지 코스에서  골프를 쳐보는 호사를 누렸다. 꿈같이 달콤한 이틀이었다.




  날씨의 변덕이 심하고 비도 많이 오는 데다 음식 맛도 없고 추워서 스코틀랜드 사람은 냉정하다는 글을 읽고 걱정을 좀 했었다.

하루는 햇살이 쨍하고 바람도 고요했고 하루는 치던 공이 날아올 만큼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추위는 한국보다 덜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을 보낼 때  입는 옷들을 챙겨간다면 오히려 더울 정도였다. 일단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2주 동안 딱 하루 있었다. 또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엔 (운이 좋았는지) 인종차별을 한다거나 무시한다거나 차가운 사람들도 없었다. 다들 내 후진 발음을 열심히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했고 내가 못 알아들으면 몇 번씩 반복해서 천천히 말해주었다. 나는 2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운 곳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으론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변덕스럽지도 냉정하지도 않았다.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귀국한 지금도 벌써 세인트 앤드류에서의 추억이 그립다.


(계속)


P.S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저녁에 아들을 만나 밥을  먹고 호텔에 들어가면 아무리 늦어도 시간은 늘 오후 6시 반에서 7시 반사이었습니다.

아침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날이 밝아지고 오후 5시 반이 되면 컴컴해지기 때문이죠.  웬만한 상점도 5시 6시면 다 문을 닫았어요. 매일매일 너무 긴긴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호텔 로비에 와서 호텔 앞 슈퍼 리들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브런치를 쓰기도 읽기도 했습니다.

주로 ' 스코틀랜드'로 검색을 했고 정말 많은 작가분들이 이 아름다운 곳에 대해 쓰셨더군요. 그러다가 눈길이 멈추는 어느 작가님의 스코틀랜드 일상이 있었습니다. 그림도 사진도 글도 마치 동화 같았어요. 역사도 다루고 아픔도 다루는 묵직한 주제조차 솜씨 좋게 잘 버무리셨더라고요. 어느 아름다운 해변을 소개한 글에서, 매일같이 하루 한 곳씩 가보던 나는 그 해변이 너무 예뻐서 구글링을 해봤어요.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 여행자에게 한 시간은 껌이죠. 그래서 나도 스코틀랜드에 있는데 가봐야겠다고, 감사하다고 댓글을 남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다음편에

호텔 로비, 글쓰기 딱이었는데...얼마 못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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