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그녀에게 진짜로 연락이 왔다.그녀의 글에 내가 댓글을 남긴 후 '같은 스코틀랜드니 만나면 좋겠다'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주고받은 이후.
그런데 그녀가 나를 초대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겁도 없이!?)
적어도 나는 겁은 나지 않았다. 글은 곧 그 사람의 향기와 인품인데 나는 그녀의 글에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그녀가 얕은 내 글을 보고 만나자는 말을 철회할까 두려워 덥석 잡았다.
"좋아요. 아이들도 있으시니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아이들이 셋 있는 그녀, 나야 여행자지만 그녀는 이곳의 생활인이다.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털링으로 오시면 제가 마중을 나갈 수 있어요. 거기서 에든버러 성만 큼이나 의미 있는 스털링 성을 보고 우리 집에 와서 점심을 같이 먹어요."
던디에서 스털링까지 2시간도 넘는 버스 편을 알아보고 있을 때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기차 라인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스털링 성을 예매하는 방법도.
카톡으로 통화도 했다. 목소리도 자근자근, 조용하고 상냥했다.
나는 아무래도 전생에 스코틀랜드와 아름다운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하루 선물 같은 귀인들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은가. 골프든 여행이든 그 무엇이든 사람 때문에 즐겁고 사람 때문에 상한다. 스코틀랜드는 이미 풍경과 정취만으로도 내게 힐링을 선물했는데 귀인들 천지였다. (흑흑, 감격의 눈물)
그녀를 만나기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들과 조식을 먹고 5분이면 닿는 거리의 기차역을 가기 위해 40분 전에 나갔다. 그만큼 들떠 있었다.
이미 가봤던 기차역 근처의 VA던디와 디스커버리호의 멋진 외관을 돌며 다시 사진에 담고 천천히 주변을 걸었다. 25분 전 기차역에 들어가 수도 없이 플랫폼을 확인하고도 불안해서 사람들에게 기차표를 보여주며 1번에서 스털링 가는 기차가 맞냐고 묻기도 했다.
기차 안에서
정확히 한 시간 후 나는 스털링에 도착했고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만났다.
초록 점퍼에 어깨까지 늘어뜨린 생머리, 날씬하고 예쁜 그녀가 해맑은 미소를 활짝 지으며 다가왔다. 우리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제스 혜영 작가님이었다.
"이렇게도 만나네요!!" 우리는 서로 웃었다.
마치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러웠다. 어색함도 없었다.
전날은 춥고 비가 하루 종일 내렸는데 그날은 우리의 만남을 하늘이 도운 건지 날씨도 너무나 화창했다.
그녀의 차를 타고 스털링 성으로 갔다. 원래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로 하셨는데 남편분이 아이들을 봐주신다고 했다. 남편분 덕분에 나는 제스 혜영 님과 스털링 성을 같이 돌아볼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 로버트부루스 동상 / 스털링 성
로우랜드에서 하이랜드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스털링 성에서 내려다본 전경
북부와 남부 사이에 위치한 이 성은 중요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스털링 성을 지배하는 자가 나라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략적으로 완벽한 요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도 멜 깁슨이 분한 영웅 '월리암 월레스'는 스털링 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한다. 성 곳곳을 둘러보다 보니 스코틀랜드를 발아래 두려는 잉글랜드 왕조의 야심과 욕망에 끝까지 저항하며 자유를 울부짖으며 격렬하게 싸운 '스털링 다리의 전투'장면이 되살아난다.
이 성에선 제임스 2세가 태어났으며 1543년에는 메리 여왕의 대관식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는 수도 없는 전쟁의 격전지들이었던 고성들을 둘러보면서 조금씩 이해되었다. 왜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빠져나오려고 독립투표까지 했는지도.
전쟁에 사용되었던 수많은 무기와 군사복, 전쟁 용품들을 보며 스코틀랜드인에 빙의되어 주먹을 꽉 쥐기까지 했다. 외국인인 우리가 보기엔 다 같은 영국이고 영국인 같지만 실은 켈트족과 앵글로색슨족이라는 민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완전히 다른 나라다.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에 대한 침공과 함락, 두 나라의 적대적인 관계는 어쩌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감정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뿌리 깊은 것으로 느껴졌다. 스코틀랜드 사람에게 혹시 잉글랜드 사람이냐고 묻는 것처럼 실례되는 말은 없다고 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들과 다녀왔던 비 오는 에든버러 성보다 스털링 성이 더 아름답고 볼 것도 많았다.
스코틀랜드의 상징적인 동물은 유니콘이다. 중세복장을 하고 유니콘에 대해 설명하는 분.
여왕이 쓰던 침실/ 역대왕들의 얼굴을 천장에 그렸다. 봉사자의 설명을 알아듣고 해석해주는 혜영작가님의 유창한 영어실력이 부러웠어요.
사진도 찍어주고 억지로 사진도 찍히신 혜영님
가는길에 혜영님 설명과 버무려져 특별했던 스털링다리와 저 멀리 보이는 윌리엄 월레스 기념관
스털링 성 구경을 마치고 드디어 혜영님 집으로 향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면 유명한 곳들을 주욱 둘러보고 사진 찍는 여행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관광지는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도 들어가 보는 여행을 좋아한다. 타국의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것처럼 그 나라 문화와 역사까지도 한 번에 이해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럴 기회는 없거나 매우 드물다. 나는 그 희박한 행운을 혜영님 덕분에 체험하게 된 것이다. 스털링 성에 갈 때보다도 흥분이 되는 순간이었다.
혜영님 집으로 가는 길엔 던디에선 볼 수 없는 낮은 힐들이 주욱 이어진다. 감탄사를 내뱉었던 드라이브 코스.
아기자기 아름다운 동네, 집값은 아름답지 않지만...
힐들을 지나며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아기자기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나타났다.
바로 그녀의 동네 Tillicoultry.
탄성이 나왔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아이 셋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릴 것 같았는데 고요했다. 큰 애만 빼고 아빠와 아이들이 바로 보이는 힐에 놀러 갔다고 했다. 나는 여배우 같이 날씬하고 예쁜 큰 따님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어 회화가 필요한 순간인가 착각도 잠시, 앗! 큰 따님은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우리는 부엌으로 들어가 점심 준비를 했다.
큰 따님이 구워놓은 스콘과 딸기잼, 혜영 님이 구워주신 겉바속촉의 바게트 빵과 스프레드, 막 볶은 듯 진한 향이 기가 막힌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아보카도, 햄과 치즈, 그리고 과일들로 식탁이 풍성했다.
배가 고팠던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한 채 정신없이 먹었다.
그리고 나서야, 마주 앉은 혜영 님과 우리들의 수다를 나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8살이나 어린, 그러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브런치에서 그녀의 글을 접한 사람들은 다 아는, 생각과 글의 깊이가 너무나 성숙한 혜영 작가님이다. 섬세한 울림과 감동이 살아 춤추는 그녀의 글을 한번 읽으면 다른 글들도 다 읽게 되고 댓글도 남기게 된다. 나도 그녀를 만나기 이전 그 늪에 빠져 팬이 되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남편분과 두 아이들이 돌아왔다. 얼른 나가 나는 또다시 영어로 인사를 했다. 영어를 좀 배우고 싶은 마음도 한 몫했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한 그 순간, 키 크고 미남인 그녀의 스코틀랜드인인 남편분은 만면에 커다란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며 말씀하셨다.
혜영님과 닮은 꾸밈없이 맑은 미소였다.
"어우 너무 반가워요. 잘 오셨어요!." (또 한 번 어머나!다들 한국말이라니!)
어린 두 아이들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한다.
뿐만 아니다. 아이들은 심지어 존댓말을 구사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부모에게 공손하게 존댓말 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집의 가정교육이 참 부러웠다. 그래서 항상 따박따박 반말하고 심지어 대들기도 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냥 관뒀다. "엄마는 외할머니한테 반말하면서." 그 한마디가 내 입을 막았다.
그래, 본보기가 되지 못한 내 탓이다. 어릴 때부터 무서운 아빠에겐 존댓말을 하고 만만한 엄마에겐 반말을 일삼은 나, 그런데 남편 역시 무서운 아빠가 아니니 우리 아이들은 반말이 고착화되었다. 그래도 삼촌, 이모,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그 밖의 모든 어른들에게 다른 얼굴이 되어 얌전한 목소리로 사근사근 존댓말 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그런데 하물며 외국에 사는 아이들과 남편에게까지 한국어를 습득하게 하고 존댓말까지 하게 한 엄마이자 아내이자 대한민국 국민인 그녀가 달리 보였다. 엄마의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건 엄마 나라의 영혼과 문화를 습득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말은 정교하고 배우기 까다로운 언어인데, 영어권 나라에 살면서 아이들이 그 정도로 한국말을 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가진 파워가 느껴졌다.
가족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휘트니 휴스턴을 닮은 둘째 따님과 귀여운 아드님과 사진을 찍고, 혜영님과 나는 드라이브 내내 보았던 야트막한 힐을 트래킹 하기로 했다. 너무 신이 났다. 등산은 싫어해도 트래킹은 매우 좋아하는데 스코틀랜드에서의 트래킹이라니!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달러'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의 힐을 가기로 했다. 동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부촌이라고 한다.
찬란한 푸른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젖은 땅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대화.
눈을 감고 생각하면 그날 힐의 숲에서 맡았던 공기와 바람, 까맣고 젖은 땅을 밟던 찌걱거리는 소리와 촉감까지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고 진귀한 경험이었다.
마치 수중에서 자란 것처럼 이끼가 잔뜩 끼어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나무들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많은 날 비가 내리고 습하기 때문이라고 혜영님이 설명한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나무의 틈틈이 셀 수 없는 동전이 촘촘히 박혀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산 여기저기 소원을 빌며 돌들로 탑 쌓기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자연 속의 기운에 기대어 소망을 비는 것은 영국인들도 다르지 않나 보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많은데 나무 사이사이에 수많은 동전이 박혀있다. 아마도 우리가 소원을 빌며 돌 쌓기 하는 것과 같은 문화인지?
트래킹을 하던 힐의 정상에 있는 성 (이날은 휴관이라 아쉽게도 내부는 보지 못했다.)
스코틀랜드처럼 수많은 성을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약 3천여 개의 성이 존재한다니 어디를 가든 멀지 않은 곳에 근사한 성이 있을 수 있다. 이 힐에도 역시 정상에 성이 우뚝 서있다. 자그마해도 세월과 역사가 그대로 스며있는 성이다.
성을 보는 것을 끝으로 오르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자 한 시간여의 트래킹이 끝났다.
이제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브런치에서 댓글로 이어져 진짜로 만나고 관광하고 집 초대를 받고, 꿈같은 하루가 저물어 간다.
혜영님은 또다시 나를, 20~30분 거리의 스털링 기차역에 내려주었다.
완벽한 하루, 너무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그녀와 작별 후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무지개를 보았다. 역시 행운의 날이었다 / 금방 저무는 초저녁의 스코틀랜드
그리고 나를 반겨주는 던디ㅡ기차역 앞의 VA 던디와 디스커버리호 그리고 박물관. 저녁에 보니 더 멋있다.
P.S 예전에 서점에서 '인연은 사람을 선물 받는 거야'라는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스코틀랜드에 와서 많은 '사람 선물'을 받았고 그중의 화룡정점은 제스 혜영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연은 또한맺는 일보다 지키는 일이 더 어렵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제가 소중한 인연을 지켜나갈 수 있게 꼭 갚을 시간이 오길 바랍니다. 우리 꼭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