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왠지 모르게 잉글랜드보다 태고적 신비를 머금은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곳.
보통 기대를 품으면 실망이 큰 법인데 나는 스코틀랜드를 향해가면서, 또 이 곳을 여행하면서 소중한 귀인들을 만나선지 '무엇을 하든 기대 이상'이었다.
아들과 나는 시애틀에서 암스테르담을 거쳐 애든버러에오는 여정이었다.
공항에서 백신접종 완료자라는 것을 증명하면 코로나 검사없이 영국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 전에 미리 PLF(Passenger Locater Form)를 작성하고 14파운드 하는 자가진단키트도 미리 샀다.( *2월 11일부터는 접종 완료자라면진단키트도 안사도 되고 여권만 달랑 들고 영국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영국 좋아요 ~~)
델타 항공을 탔는데 아들과 나의 좌석이 멀찍이 떨어져 있다. 옆자리 승객에게 바꿔달라고부탁해볼까 했더니 고양이와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발밑 케이지 안에서 냥이가 내내 야옹거려서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이륙 후 얼마 있다 승무원들이 무언가를 나눠줘서 보니 암스텔담 공항에서 요구하는 승객정보를 쓰는 종이였다. 꽤 복잡해 보여서 더듬거리며 물었다.
" 나는 그저 잠시 트랜스퍼하는 건데 이걸 다 써야하나요" 하는 물음에 미국인 억양의 한국말로 "한국분이에요?"하는 답이 돌아왔다.
"어머머!! 네네."
너무 반가웠다.
그렇게 만난 '앤'이라는 이름의 승무원 언니는 시애틀에서 암스텔담으로 향하는 9시간동안 나와 아들을 뒤쪽 빈 자리에 '눕코노미'로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아들에게는 밥을 종류별로 두개씩 건네주었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간식과 음료를 쥐어주었다. 고맙다는 말 외에 할 게 없는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나와 아들에게 신경써 주었다. 내릴 때가 되자더이상 고맙다는 여러가지 표현이 동이 났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인천 공항까지 비행온다는 그녀에게 한국와서 시내로 나오실 수 있음 제가 이 은혜를 꼭 갚고 싶다며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았다. 워싱턴주 시애틀에 사는 그녀는 32년간 승무원으로 일해왔고 두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대학입학차 집을 떠날 때 하루 종일 울었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 살며 스코틀랜드로 유학보내는 내 맘을 헤아려주고 아들을 자기아들처럼 챙겨준 것이다. 아, 나는 아이들이 다 커서 집을 떠날 날만을 손꼽던 엄만데...어쨌든 따스한 모성애를 가진 앤언니의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언니, 꼭 만나요.
스코틀랜드 애든버러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햇님은 어디 가고 이놈의 비.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지친데다가 미국부터 시작한 해외 3주살이가 든 커다란 짐가방도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겨울비 맞기가 싫어서 마음같아서는 택시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애든버러에서 아들이 머물고 있는 던디까지 120파운드(우리돈 20만원)라는 어마어마한 택시비에 놀라고 한편으론 아들 교육에도 안좋을 것 같아(사실은 돈이 문제) 마음을 굳게 먹고 애든버러 시내까지 가는 트램을 탔다.
트램에서 찍은 비오는 애든버러(비가 점점 많이 내렸다)
기차역가면서 들른 타코집
트램에서 내렸더니 거대한기념비가 하늘로 치솟아있는 세인트앤드류스퀘어다.
공항에서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렸다. 반은 우산을 안쓰고 반은 쓴 모습.비에 흠뻑 젖어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찡그리지않는 그들이 참 신기했다.
아들이 던디가는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는 동안 쏟아지는 비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던디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나는 외국에 나오면 무조건 묻는다. 내 경험상,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외국인들은 이방인들에게 매우 친절하다. 그들은 항상 누군가 도와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처럼 보일 정도다. 2분 거리에 영국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중앙 기차역이 있다고 했다.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타코와 맥주를 마시고 기차를 탔다. 애든버러의 중앙 기차역은 영국의 어디든닿을 수 있는 실핏줄을 내보내는 심장부같았다. 정말 크고 복잡했다.
한시간 남짓의 낭만적인 기차여행.
기차 밖으로 보이는 던디의 풍경
던디는 애든버러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동쪽 해안가를 낀 작은 도시다. 바다가 나타나면서 날이 개었다. 그간의 피로가 바다에 싹 씻기는 기분이었다. 기차역에 내렸더니 비는 그쳤지만 스톰인가 싶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남편이 예약해준 호텔이 기차역에서 얼마 안걸리는 건 알았지만 방향을 알 수가 없어 처음 만난 영국남자에게 이 호텔이 어디있냐고 물었다. 포스터붙이는 작업을 하던 이 착한 남자는 큰 짐을 들고 바람을 맞으며 울상을 한 동양인 아줌마가 가엾었던지 잠깐만 기다리면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귀인2와의 만남.
작은 행운들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아들은 무조건 물어보는 엄마를 매우 부끄러워하며 지도를 보며 저쪽으로 10여분 가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시끄럽다고 하고' 미소를 띄우며 그를 기다렸다. 말이 10분이지 그 폭풍같은 바람을 맞으며 큰 짐을 질질 끌고 낯선 도시에서 100분 같은 10분을 걸을 수는 없었다. 작업을 하던 남자는 바람이 너무 불어 도저히 포스터 작업을 할 수 없다며 우리를 데리고 길건너의 자기 차로 갔다. 그는 25세된 딸부터 초등학교다니는 아이까지 네명의 아이를 둔 아빠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가 30대로 보여서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와 그렇게 안보여!믿을 수가 없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그 역시
'얘가 아들이라구?? 나도 믿을 수가 없다..." 라고 하길래 얼른 마스크를 더욱 위로 올려 썼다.
서로 따스한 덕담을 나누다보니 금방 호텔에 도착했다.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영해보인다는 칭찬은 마음의 벽을 허무는 진리다.나는 얼른 지갑을 뒤적여 감사의 표시로 갖고있던 달러 몇장을 건넸다. 그는 완곡히 거절했으나 나 역시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으니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는 달러를 보고 한국돈이냐고 물었다. 아마도 스코틀랜드 밖에 나가본 일이 없는 뼈속까지 스코틀랜드인인 듯 했다.
호텔은 아들 기숙사에서 5분 이내에 있는 아담하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조식도 제공이 되고 프런트에서 24시간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며 매우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 정말 맘에 드는 호텔이었다. 혹시 던디에 올 분이 있다면 강추한다.
이 곳을 기지삼아 나는 이제 2주간의 여정을 보낼 것이다.
1차목표는 작년에 홀로 온 아들의 기숙사를 점검하고 학교를 둘러보는 것, 그리고 2차 목표는 던디를 접수하고 애든버러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주요도시를 둘러 보고 가는 것이다. 아, 또한가지! 골프채를 잡았다면 세상의 누구나 동경하는 세인트앤드류 올드코스에서 채 한번 휘둘러보는 것.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스코틀랜드 입성의 첫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아들 바보 남편이 아들을 위해 기숙사 5분 거리에 있는 호텔로 잡아주었다. 트윈베드룸이라 아들은 이곳에서 잘 수 있는 옵션을 가졌다. 창 밖 풍경이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