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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Jun 26. 2023

'엄마답다'라는 말의 폭력

우리 안에는 저마다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늘 널 숨 막히게 했던 엄마는 엄마다워야 한다는 큰 편견 하나가 깨졌네? 누가 그러더라. 세상에서 제일 폭력적인 말이 남자답다, 여자답다, 엄마답다, 의사답다. 학생답다 뭐 이런 말들이라고.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서 서툰 건데..., 그래서 안쓰러운 건데. 그래서 실수 좀 해도 되는 건데"                - 괜찮아 사랑이야 대사 중


나는 워킹맘이다. 회사에서도 야근 한 번 마음 편하게 하지 못하고, 집안은 엉망이고, 애들에겐 항상 미안한 자책으로 하루를 종종거리며 보내는 죄스런 워킹맘이다. 사회에 나가 일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건 엄마라는 타이틀이다. 해본 적도 없지만 배운 적도 없다. 다만 우리 엄마처럼 사랑 표현이 박한 엄마는 되지 않아야겠다고 본능적으로 결심했는지 친구같이 재밌는 엄마 콘셉트는 성공적이었다. 그렇지만 단호하고 일관된 교육법으로 행동의 경계를 잘 정해서 키우는 그런 콘셉트의 엄마로는 잼병이다. 일을 해서 그런지, 원래 예민한 아이이기도 해서 그런지 유독 나에게 칭얼대고 나를 힘들게 한다. 이뻐 죽겠다고 물고 빨고 하다가도 애를 잡아먹을 듯이 화를 내고 때리고 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괴물인가', '나 같은 사람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 이런 자책을 한다. SNS를 보면 다들 애들 너무 잘 키우는 것 같은데 나만 육아의 루저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엄마라는 타이틀이 너무 싫게 느껴진다.


퇴근한 나에게 엄마가 애한테 너무 오냐오냐한다고 이렇게 애 키우지 말리고 화를 내셔서, 나도 울컥해 엄마랑 대판 큰소리로 싸웠다. 난 엄마한테 이런 사랑 못 받아봐서 난 애한테 이 정도는 해주고 싶다고, 나도 오냐오냐 키우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사랑과 엄한 훈계 그 사이를 잘 못 맞추겠다고.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고 첫 애라 난 아무것도 잘 모르겠다고 처음 키워봐서 모르겠다고 나도 힘들다고... 엄마는 아빠랑 매번 싸울 때마다 그러면 안 되겠다 다짐하면서도 엄마맘대로 안되잖아 그런지 몇십 년인데 왜 나한테는 바로 잘 되길 바라냐고.. 나도 맘대로 안된다고.. 생각대로 잘 안된다고.... 막 쏟아부었다. 엄마는 괜히 말한 내가 잘못이지 라며 화를 내고 다음날까지 아무 말이 없으시다. 마음이 많이 상하셨었나 보다. 난 세계평화와 지구오염, 불우한 이웃, 티브이 드라마에만 진심을 다해 공감하시고 불쌍히 여기지만 정작 남편 자식들에겐 매정하고 냉랭한 엄마가 싫었다. 아니 지금도 싫다. 이상 속에서 살고 현실에는 무감각해져 사는 것 같다.

누구보다 모질고 가난하고 험난한 삶을 사신 엄마가 본인의 인생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드셨는지, 엄마보다 100배는 더 냉랭한 외할머니의 나와 같은 셋째로 자라온 엄마가 그 당시 얼마나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커왔을지 상상은 가지만 난 이럴 때마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보다는 상처 받은 3살짜리 꼬마로 돌아가 엄마한테 화를 낸다. 사람들은 애를 낳으니 엄마가 보고 싶고 더 그립고 그 마음을 이해하겠다고 하는데 난 반대다. 별생각 없던 난 애를 낳고 나서 더 반발심이 생겼다. 엄마인데 왜 그러는 건지, 엄마면 이런 마음일 텐데 왜?

난 5살짜리 아들을 둔 엄마지만, 우리 엄마 앞에 선 나는 3살짜리 아이다. 나 좀 봐 달라고, 좀 따뜻하게 대해달라고, 사랑해달라고 울부짖는 아이. 대뜸 이런 아이의 모습이 나올 땐 나도 당황스럽다. 우리 엄마도 그렇겠지. 상처 받은 엄마의 어릴 적 아이가 그 속에 있겠지. 엄마도 가난한 삶 속에 4명의 아이를 나름 최선을 다해 키우셨고,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는데. 그냥 실수할 수도 있고,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에게 관대해져야 하는데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의 정의를 한 가지 모습으로 박아두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자책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다.

금요일 밤, 일주일의 손자 케어 업무가 끝나고 고향으로 내려가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어제 미안했어' 그 말이 목까지 차오르다 그냥 만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 5년 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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