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Jun 26. 2023

운양동 3년 연속 행복한 40대 1위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몇 년 동안 내가 신랑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약간의 비아냥거림도, 아니 80%는 비아냥거림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의 나는 기분이 좋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낚시를 간다. 그것도 바다낚시. 한 달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저기 어디 북한인지 중국인지까지 가는지 폰 연락이 안 된다. 내일 낚시를 간다하면 오늘 밤 12시쯤 출발. 잠을 자다 어렴풋이 신랑이 나가는 소리를 듣지만 난 그대로 다시 잠이 든다. 2시간 차타고 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배를 타고 몇 시간 들어가서 낚시를 하고 온다. 꼭 출발하기 전에 배에서 인증 샷을 찍어 보낸다. 난 농담으로 여러 장 찍어서 돌려막기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사진이 오면 새벽에 잠시라도 깨었을 때 ‘잘 도착했구나.’ 안도하고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응원의 문자를 보낸다. “만선하시오!”


갑자기 야구를 좋아한다. 10년에 한번 갈까 말까였는데 요 몇 년 가는 횟수가 늘었다. 영화를 좋아한다. 이건 원래 좋아해서 난 두 아이 어렸을 때의 집중 육아기간에 나온 영화와 드라마는 본 게 거의 없는데 신랑은 혼자 영화관을 많이도 다녔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별일 없으면 점심 무렵에 하는 영화가 좋다 식의 프로를 보며 맥주 마시는 걸 즐긴다. 캠핑을 좋아한다. 아이들과 예약 없이 떠난 캠핑장에 무작정 자리 잡고 냇가에서 놀고 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술은 말도 못하게 좋아한다. 가끔 본능만 남은 늑대인간이 되어서 들어와서 문제지 저 정도로 좋아하면 마시게 두자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은 성가대도 시작했다. 얼마나 연습을 열심히 하는지 퇴근길이나 주말에 집에서 쉴 때 틀어놓고 질리도록 노래를 부른다.


집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해수어항 민물어항도 있다. 아끼는 잔디와 벚나무 두 그루도 있다. 물론 두 아들과 와이프도 당연히 있다. 일은 말할 것도 없이 열심히 한다. 출퇴근길이 멀어서 새벽에 나가고 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들어온다. 4~5시간 자고 나가는 것 같다. 내가 돈 덜 벌어도 좋으니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고 하지만 아직은 일이 좋고 더 열심히 하고 싶어 한다.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타고 멀리 나가거나 가까운 산에 가거나 한다. 아이들에게는 200점짜리 아빠다.


둘째가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운양동 3년 연속 행복한 40대 1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전쟁같이 육아, 집안일과 회사 일을 병행할 때는 많이 원망스러웠다. 당연히 신랑도 그때는 이정도로 하고 싶은걸 다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이 하는 편이었기에 다투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 아이도 크고 나도 일을 그만두니 확실히 내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내가 덜 힘들고 편하니 신랑의 즐거움도 응원하게 된다. 심지어 저렇게 좋은게 많은 신랑이 부럽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즐겁고 웃음 지어지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특히나 뭐하나 특별하게 좋아하는 게 없는 나는 그런 신랑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부럽고 그랬다. 아이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아빠의 묘비명은 ‘불나방처럼 살다가다’ 로 하자고 했다.


나도 요즘 안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가족들 다 건강하고 큰 문제없이 하루하루 평온한 날들이 주는 기쁨이 크다. 신랑은 이번 주말도 첫째를 데리고 낚시를 간다. 첫째를 위한 마음은 20%, 본인이 한 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80%인듯하다. 그럼 어떤가! 행복하다는데... 나도 행복하고 당신도 행복하니 됐다. 우리 따로 또 같이 행복하자!

이전 10화 그 밤 9시경 수원행 지하철 1호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