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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Jul 04. 2023

치마가 자전거 체인에 끼인 날

경거망동 최대충의 파란만장 실수담 1

나는 주택에 산다. 시내(?)와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주택가라 성격 급한 나는 걸어가는 것보다 자전거 타는 것을 선호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장을 보러 가는데 자전거를 이용했다. 평소보다 좀 치렁치렁, 샬랄라, 봄이 왔어요 치마를 입긴 했으나 치마 입고 자전거 타기 경력 8년 차이므로 당당하게 페달을 밟았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서울로 나가는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갑자기 내 긴치마가 자전거 체인에 끼여서 자전거는 서버렸고, 내 치마는 말려 아래로 내려가고 내 팬티가 10cm 정도 보였을 무렵! 난 본능적으로 전광석화와 같이 뒤를 돌아 이 광경을 현재 누가 목격하고 있나 봤고 다행히 그 큰 버스정류장에는 사람이 없었고, 오토바이 배달하시는 아저씨만이 나를 봤지만 못 본 척 연기하며 지나가는 걸 슬로비디오로 봤다. 


"엄마야" 소리 지르며 난 주저앉았고 슬쩍 보니 체인이 내 치마를 단단히, 야무지게, 맛있게 먹어버렸다. 몸을 자전거 쪽에 밀착시켜 1cm도 더 자전거에게 치마를 내어주지 않으려고 했으며 최대한 어색하게 앉지 않으려고 한쪽 무릎을 세우고 추석에 절하듯이 다소곳이 앉았다. 치마와 자전거 체인은 하나가 되었고 그 팽팽함때문에 나는 그 자세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당연히 그곳은 인도 보도블록 위였고 맨 무릎이 따갑다느니 이런 느낌은 내게 사치였다. 누가 봐도 그 광경은 긴치마를 입은 한 여성이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보도블록 위에 다소곳이 앉아 명절에 막 절하려고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고 자세를 취해봐도 내가 운전대를 잡고 앉았는지, 그렇지 않다면 내 치마와 체인의 엉킴만으로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어찌 됐건 다소곳이 앉았는데 팔까지 길게 뻗어 운전대까지 잡고 있었다면 그건 상상하고 싶지 않다. 불가능한 자세인 것 같기도 하다. 1초면 충분했다. 당황할 시간은... 왜? 난 빠르니까 그리고 부끄러우니까 


나는 역시나 현명했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삼천리 자전거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이들 자전거를 다 거기서 샀기 때문에 분명 나를 살려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실은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거기는 서울로 나가는 가장 큰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이지 않나. 신의 도움으로 현재는 다 서울을 가버리고 아무도 없지만 곧 사람들이 올 것이므로 난 서둘러야 했다. 그리고 주택 사는 사람들의 통로이므로 아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엔...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사장님이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소리쳤다. "사장님! 저 삼천리 자전거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있는데, 치마가 자전거에 끼였어요. 죄송한데 가위 좀 가지고 횡단보도 건너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살려주세요. 부탁이에요." 역시 사장님은 무료하고 장사도 안 되는 오후에 이 흥미진진하고 놓치기 아깝고 혼자보기 아까운 광경을 놓칠세라 가위를 가지고 전화를 끊기도 전에 이미 나오셨다. 


8차선 도로에 신호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장님은 횡단보도에 서 계셨고, 뉘 집 규수처럼 땅바닥에 새초롬하게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셨는지 입꼬리가 씰룩거리는걸 나는 분명 봤다. 예의상 참고 계시는 그 표정도 잊을 수가 없다. 이럴 땐 시력이 좋은 게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나에겐 구세주이므로 크게 웃든 작게 웃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호가 바뀌면 저 넓은 횡단보도를 건너 백마 탄 왕자처럼 가위를 가지고 와 내 치마를 잘라 나를 구해주실 것이므로. 그러면 나는 빠르게 집으로 가면 된다. 그뿐이다. 이 악몽은 곧 끝난다. 


밀착된 자전거와 이제 좀 친숙해졌는지 도대체 체인에 내 치마가 어떻게 끼였는지 보기 시작했다. 체인과 치마는 하나가 되었지만 혹시 모르니 페달을 뒤로 돌려봤다. 뭔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서둘러 앞 뒤로 페달을 왔다 갔다 하니 조금씩 운신의 폭이 넓어졌고 체인은 내 샬랄라 치마를 결국 뱉어냈다. 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때의 그 환희, 기쁨, '나는 천재다!' 하는 벅찬 마음이 또렷이 떠오른다. 나는 무릎 세워 절하던 자세에서 벌떡 일어나 마치 정류장 옆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서서 서둘러 사장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제가 페달 왔다 갔다 하니까 빠지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전화를 끊으며 돌아서서 가게로 들어가시는 사장님의 뒷모습에 아쉬움이 한가득 배어있었다고 느끼는 건 나의 착각일까. 축 늘어진 팔 아래로 덜렁거리는 가위가 앞 뒤로 흔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장을 봐야 했기에 방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그러나 자전거는 타기 싫어서 그냥 끌고 걸어가는 사람처럼 마트로 가서 평상시처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서 '아아'를 사서 호기롭게 삼천리 자전거 안으로 들어갔다. 감사했다고, 순간 사장님만 생각났다고, 흔쾌히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아까 사장님께서 입꼬리를 씰룩거리시며 나를 기다렸던 횡단보도로 갔다.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뿐히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경쾌하게 밟았다. 이전과 단 하나 달라진 점은 자전거 운전실력을 뽐내며 오른손으론 핸들을 잡고, 왼손으론 펄럭거리는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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