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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n 28. 2017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단상 1

알쓸신잡 / 과잉의 시대!



과잉의 시대


머리를 자르러 가면 나는 항상 그동안 보고 싶었던 패션 매거진을 손에 든다. 그 때부터의 몇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잡지와 그 안에 있는 글을 보는 나만의 행복한 시간이다. 며칠 전 그렇게 보그 매거진을 보다가 이숙명 칼럼니스트가 쓴 글을 보았다. 디지털 노마드와 젠트리피케이션의 직접적 상관 관계에 대하여 쓴 글이었다. 자신의 거주지 안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서 떠난 디지털 노마드는 결국 거대한 글로벌 차원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한다는 것이 주요 요지였다. 요즘 그럴싸하게 언급되는 멋들어지는 단어인 디지털 노마드를 메뚜기 떼라고 묘사하던 그 통쾌함이라니! 본인도 그 중의 일인임에도 이렇게 적나라하고 비판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솔직함이 너무나 부러웠다. 글을 쓰더라도 이런 정직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     



그 글을 보다 보니, 평소 내가 해왔던 생각과 굉장히 유사해서 내 생각과 경험을 소소하게 써내려 가보려 한다. 나름 내가 굉장히 친근한 두 주제이기 때문에. :)


먼저 '디지털 노마드'


사실 영어로 멋지게 표현해서 그렇지, 실제 의미는 ‘여행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여행하는 것’ 아닌가. 내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던 건 2009년 제주에서였다. 2009년의 제주라니. 그 한적함과 자연 그 자체였던 그 곳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때의 제주가 얼마나 아름다웠었는지 적극 공감할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생각하니, 나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왜 제주를 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

그 때 역시 제주를 여행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온 한 여행자를 호스텔 라운지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만나진 사람들끼리 얘기를 시작했는데, 그는 그래픽 아티스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 나오는 그래픽 작업을 여행다니면서 완성해서 작업 결과물을 제작사 측에 전송해 주면서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에도 종종 라운지에서 골몰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친구를 볼 수 있었다. 그 제주 이후로도 친구의 페이스북을 보면 늘 여행 중이었다. 일본, 대만, 콜럼비아 등등. 지금까지도 그는 고향인 LA가 아닌 다른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내가 실제로 제주에서 거주하다시피 하던 2014년 초, 나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하고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여행하듯이 일하면서 지내고 있는지 접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던 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글 속의 그들은 무언가 굉장히 얼리 어답터스러운 신흥 종족같아 보였고 힙해 보이기도 했다.   


발리 우붓의 풍경
우붓의 전통 의식을 보다가
디지털노마드의 성지 HUBUD에서 운영하는 Turn Point  과정들

그 때, 그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있다는 발리의 우붓, 그 중에서도 그들의 코워킹스페이스이자 커뮤니티 허브와 같은 후붓(HUBUD)을 가보자 싶었다. 실제로 그 곳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요가 센터인 요가반(Yoga Barn)에서 매일같이 하고 이후 시간에는 이 곳에서 보내면서 코워킹 스페이스를 경험했다. 6개월 뒤, 다시 한 달을 발리에서 머물렀다. 요즘에서야 디지털 노마드 개념이 성행하고 있는 걸 보면, 한국인 치고는 꽤 빠른 접근이었던 듯하긴 하다.   


우붓의 아름다운 요가센터, 요가반(Yoga Barn)

그런데 그들이 발리에만 머물고 있겠는가. 우붓이 유명해 지면서 2년 후 쯤에는 너도나도 이 곳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고, 이 곳은 아주 대중적인 곳이 되어 갔다. 그 후, 디지털 노마드 개개인의 성향과 원하는 취향, 무엇보다 물가, 커뮤니티의 퀄리티 등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발리의 우붓은 어느새 한국의 서촌, 연남동과 같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타격을 그대로 받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곳은 가격적인 이점을 잃어갔고, 앞서가는 전문가들 보다도 너도나도 모여 드는 곳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 어느 곳이 더 괜찮은지 물색하기 시작했고, 세계 곳곳의 지역 이름이 그 리스트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젠트리피케이션은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의 라이프스타일을 과대 선전하고 그럴싸하게 멋지게 포장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이는 없다. 직업적 능력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어야 하는 이야기 아닌가.  특히나 그럴싸한 라이프스타일을 우루루 따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물론 작업을 하는 예술가나 원거리 근무가 가능한 글로벌 기업이나 스타트업 등에 속해 매우 안정적이면서 바람직하게 디지털 노마드적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는 이 글에서 굳이 다룰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래서 결론은 그렇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가끔 필요한 글을 쓴다. 평범한 듯한데, 이도 디지털노마드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뭐 별 거 없는 듯하다는 생각이다. :) 각자의 취향에 맞춰 살면 되는 일이긴 한데, 나 역시 또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종족이 되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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