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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21. 2017

가장 사랑하는 인도 여행지, 라다크

미루나무로부터의 단상


# 내가 ‘라다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바로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바로 미루나무.

햇살조차 제 색을 내지 못할 것 같이 더없이 파란 하늘과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길고 긴 연두빛 잎의 미루나무가 일렬로 벽처럼 늘어선 풍경이다. 나무는 바람에 따라 잎사귀를 사르르르 사르르르 소리 내며 옆으로 잠시 몸을 기댄다. 이 곳의 오후 2시의 풍경이었다.

당시 내가 너무나 부러워하던 여행을 하던 여행 친구가 있었다. 그림을 하던 그 친구는 각종 그림 도구들을 미국에서부터 챙겨 와서는 레 안쪽 언저리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바라 보이는 곳에 큼직한 방을 빌려서 한 달 동안 살듯이 여행하고 있었다.

일상 같은 여행. 내가 원하던 여행이었다.



친구 집에 다녀오던 길에 눈을 들어 바라 보니, 눈 앞에 일렬로 늘어 선 미루나무들이 잠시 몸을 기대고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오후 2시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움. 내게는 그것이 곧 라다크였다.

반짝 빛나는 초록빛 나무만큼이나 파란 하늘은 눈이 시릴 것만 같이 맑았고, 채도 높은 흰 색의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나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그런 일체감이었다.


이렇게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몸을 자연스럽게 기울이고 받아 들일 줄 아는 삶


“바람같이 살아라”

스님의 말씀.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순간 순간에 머물면서 흘러가듯이 사는 삶.

허공에는 걸림이 없다. 바람이 불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그저 그 곳에 맺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을 따라서 비켜갈 뿐이다. 그렇게 걸림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한 순간 한 순간 온전히 집중해서 누리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왜 나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고민들로 나를 옭아 매고 멈춰 있게 만들었던 걸까? 저렇게 바람에 이는 자연스러운 나무 같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는 라다크의 오후다.


# 비슷하게 아름다운 날들이 이어져 갔다.

다시 없을 풍경을 뷰로 가진 모두의 사랑방이었던 내 방 침대에 드러 누워 책을 보고 있을 때면, 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 들었다. 그리고 저 먼 곳에는 파랑, 초록, 흰색이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허공에 걸려 있었다. 저 아래 마당에서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행복하게 들려 온다.


무엇이 더 필요한 순간일까?

나는 무엇이 늘 부족해서 그렇게 애닯아 했던 걸까? 이 정도면 행복감을 느끼는 데에 차고 넘치는 것을. 무엇과도 맞바꾸고 싶지 않은 여유였다.  

라다크에서는 세속적인 욕심을 떠나서 나를 놓고 또 내려 놓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충만해지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내가 현실의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절대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바라고 꿈꾸는 것이 많아 늘 스스로를 괴롭히던 내가 또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면 그 모습이 또 빼꼼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과한 욕심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소소한 것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마음가짐.

앞으로 두고두고 계속해서 기억하고 싶은 마음가짐이었다.


# 일상. 이 곳에서 만난 H

아침을 먹고 느즈막히 숙소 옆 까페로 가서 툭 트인 라다크 풍경을 배경 삼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라다크에서 나의 일상이 그려져 간다.

우리는 나이 대에 맞는 얘기와 고민거리들을 주고 받으며 마치 이 곳이 서울 동네 어디쯤 되는 것 마냥 익숙함의 일상을 만들어 간다. 때로는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잘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렇게 여행은 우리에게 한결 여유로움과 정확한 시선을 갖게 해준다. 그 곳에 있던 마음을 그대로 내려 두고, 떠남 혹은 물리적인 공간을 변화시킴으로써 갖게 되는 단절감은 우리가 그 전의 일들에 대해서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을 갖도록 해준다.

그리고 여행이 주는 최고의 마력은 내가 속한 이 시간, 이 현재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아닐까?

이 둘이 어우러지면서, 우리는 일상에서 수 만 km는 더 떨어져 있는 곳에서 조금 더 가벼워져 간다.


# 나는 라다크를 닮아 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 곳에 살아 가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를 닮고 싶었다. 이 곳에서 이들의 속도와 생각에 따라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낯섦. 순수함이 간직된 미지의 곳.

그리고 일상 같은 편안함이 바람처럼 불어 오는 시간.

내게 첫 번째 라다크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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