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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18. 2017

세상에 단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나의 라다크

미루나무가 반짝이는 라다크의 오후

여행은 닮고싶은 것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아닐까?


수많은 여행의 거듭됨을 통해서 나는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나의 마음과 발걸음이 지속적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내게 라다크는 그런 곳이다.


나의 가장 뜨거웠던 청춘의 정점을 찍었던 곳이며,
현실에 맘 놓일 곳이 필요했을 때 가장 간절하게 떠올랐던 곳.
그렇게 곧장 달려 가서 위안을 받았던 곳.


그렇게 한 장소가 내 삶의 굵직한 시간들과 함께 엮이면서 더 이상 이 세상의 수많은 곳들 중 하나 혹은 어디쯤이 아니라, 나만의 곳이 되는 것. 마치 누군가가 그저 석 자의 이름을 가진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나의’ 친구 혹은 ‘나의’ 연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라다크는 오직 ‘나의’ 그 곳, ‘나의’ 라다크가 되어 주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내게 그런 한 곳 쯤 있어 주는 것이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느낌은 더없이 특별한 유대감이자 여행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그렇게 처음 찾았던 라다크는 무엇보다도 

내게 세상 다시 없을 풍경으로 다가와 주었다. 


내게 세상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것이며, 이 세상은 여전히 내가 알거나 닿지 못했던 미지의 곳으로 가득차 있다는 설레고도 벅찬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내가 느낀 것은 일종의 안도감이었다. 앞으로 내가 보게 되고 봐야 할 아름다운 세상이 얼마나 많을지 얘기해 주는 듯했다. 또한 그렇게 멋진 풍경을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모험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해나갈 것임을 알고 있음을.


육로 여행의 출발지 마날리와 레의 고도차는 1500m 정도. 고도가 평탄하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5고개에 거쳐 최고 지점인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갯길’인 5400m의 타그랑 라를 거쳐서 내려 오는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2시에 출발해서 밤 12시에 도착하는 20시간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어디에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풍경이었다. 


그저 경외감으로 넋을 놓고 바라 보았던 끝도 없이 굽이굽이 이어 지던 처음 보는 풍경들. 꽤 많은 곳들을 다녀 보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시간만큼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갖고 있는 정보는 마치 백지와 같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여정이 막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그저 처음 가보는 그 장소 안에 나를 자연스럽게 누이고 스며들어 가면 되겠지 하고 기대하게 되는 여정이었다. 

오랜만이다. 이런 여행! 이런 느낌!



거친 자연의 웅장함. 

그 어떤 말들을 다 압도하고서 마지막에는 이 말만 남는 것 같았다. 거친 황량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특별한 웅장함이었다. 황량해 보이는 갈색 산 위에 흰 만년설이 쌓여 끝도 없이 이어지는 풍경이다. 

저 멀리 강인한 산군이 지평선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밑으로는 초록색 잔디로 뒤덮인 평원과 협곡이 끝도 없이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곳은 내게 생명력의 땅이었다!


신기했다. 

경외감으로 바라보게 하는 풍경이 아니라, 순수함과 맑음이 내 안에 스미게 하는 그런 따뜻한 풍경이었다. 

내 안의 생각과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깨끗하고 맑은 곳. 그 곳 안에 들어서면 현실 속의 나마저 순수해질 것 같은 그런 미지의 풍경. 라다크는 내가 갈망하던 곳 이상을 넘어 서는 모습으로 나를 맞아 주고 있었다.



과연 이 세상의 시계를 몇 만 번이나 뒤로 감아야 이런 풍경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하지만, 도리어 그래서 감사한 곳. 우리가 잃어 버린 순수를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이 곳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그대로 지켜 나가면서 이어 나가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간 그 안에서 발견한 오직 단 하나는 '사람의 순수함'이었다. 

이 생각을 30년 전 호지 여사만 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곳을 찾아 들고 사랑에 빠지는 누구나가 할 법한 생각이었으니까. 이 곳에서 일곱 난쟁이들 같은 동화 속 사람들이 나온다 한들, 그러려니 할 만큼 아름답고도 낯선 풍경이었다. 

이 곳은 그 어떤 곳도 아닌 라다크니까.


처음 마주치는 라다크 레의 사람들은 더없이 넉넉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다. 

‘줄레!’ 

앞 글자를 한 톤 더 높게 발음하는 이 인사말은 발음하는 사람을 오히려 기분좋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보는 사람들에게 모두 ‘줄레! :)’ 하고 인사하기 시작한다. 

마치 휘파람이 내 입 안에 머금어져 있는 듯하다. 새소리가 입 안을 간지럽히는 느낌이다. 

기분이 그저 좋아지고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미루나무가 반짝이는 라다크의 오후


라다크 레의 호젓한 곳에 한 달 동안 머물고 있던 친구 집에 다녀 오면서 보았던 그 오후 2시의 여유로움!

반짝이며 빛나는 초록빛 나무만큼이나 더없이 투명한 채도 높은 파란색 하늘에 새하얀색 구름이 살포시 걸려 있다.

초록빛 미루나무는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몸을 맡기며 사르르 잎을 떨구고 있다. 



내 공간에서도 역시 그랬다. 

모두의 사랑방이었던 다시 없을 풍경을 뷰로 가진 나의 방 침대에 드러 누워 책을 보고 있을 때면 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 왔다. 

그리고 저 먼 곳에는 파랑, 초록, 흰 색이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허공에 걸려 있었다.  

그러면 저 밑에서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여유였다.


내가 사랑했던 마을 알치는 어떤가? 

마침 풍요롭게 수확하고 있던 이 당시의 알치는 풍요와 여유, 기쁨이 가득찼던 곳이었다. 

이 곳에서 이들의 속도와 생각에 따라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라다크는 내게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이미지! 그 곳은 내게 샹그릴라였다. 

내가 전 세계를 돌아 다닌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비경을 가진 곳은 찾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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