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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25. 2017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낭만

2011 라다크 직전, 맥글로드간즈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낭만


한국의, 세상 속에서의 시간 관념이 아니라 내가 있던 곳에서 잠시 떨어져서 우리만의 속도대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그런 예외적인 시간을 가졌던 그 때.

이 예외적인 시간이 일상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늘 품어 왔던 나의 로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두들 각자 자신의 페이스대로 움직인다.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채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하라며 마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이 곳에선 누리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과연 이럴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인도에는 유독 이런 여행자들이 모여 들었고, 그 곳에서 우리는 각자 혼자 왔지만 이미 혼자가 아니게 되어 버린 열 명에 가까운 여행자의 무리가 되었다.



각각을 만난 곳은 사실 맥글로드 간즈였다.

라다크라는곳, 레라는 곳이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알려 지기 전에 2011년만 해도 라다크는 나름 미지의 곳에서 모험을 꿈꾸는 배낭 여행자들의 목적지가 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다녀 온 이후로, 라다크를 다녀 온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면 특별한 공감을 바탕으로 끈끈함과 유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까?

우리가 사랑했던 그 하늘, 그 나무, 그 미소들, 그리고 함께 공감하고 사랑에 빠졌던 그 미소와 여유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라다크!

함께 그 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파란 하늘, 여유롭고 순수한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를 함께 되뇌곤 했었던 것이다.


드디어 라다크로?!


이런 라다크를 가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비행기를 타서 한 시간 만에 해발 3000m 지역으로 바로 진입하는 방법, 혹은 미니 버스에 몸을 싣고 꼬불꼬불 위험 천만하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최소 16시간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버스로 가는 경로도 두 가지인데, 마날리를 거쳐서 레로 올라가는 방법, 그리고 인도 북서쪽의 달 호수가있는 도시 스리나가르에서 더욱더 외계와 같은 최고의 풍경을 보면서 레로 들어 가는 방법이 있다. 당시 나는 맥글로드 간즈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9시간 동안 야간 버스를 타고 마날리로 넘어 가서 이 곳에서 미니버스를 찾아 레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 루트를 이용하고 있었고, 대부분 레에서 스리니가르로 육로를 통해 넘어 가는 경로를 택하고 있었다. 나 역시나 같은 경우였다.


그러다 보니, 라다크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사실 맥글로드간즈에서 먼저 안면을 텄던 친구들이었다. 지금과 달리 조용하게 우리만의 세상이었던 맥글로드 간즈에는 경사진 이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 위치한 아늑한 한국 식당이 한 곳 있었다. 외지에서 길어지는 여행의 시간 동안 한국어로 된 활자는 무엇이든 고파질 즈음에, 많은 한국어로 된 책을 빌려주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 여행자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는 사랑방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 곳에 들어서면 먼저 약간 허름하고 자연스러운 인테리어에 편안함을 느낀다. 눈을 돌리면 어떤 여행자는 매듭을 지어 예쁜 실팔찌를 만들고 있고 누군가는 히피 같은 머리와 옷 스타일을 하고서 기타를 퉁기고 있다. 또 어떤 누군가는 조용히 짜이 한 잔을 시켜 두고 책을 읽고, 누군가는 노트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곳. 여유롭고 자유로운 여행자들의 분위기가 한껏 배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맥간의 사랑방에서 우리의 첫 만남


특히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우기였다.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경사진 언덕을 따라서 (그래도 나름 2000m 가량에 이르는 히말라야의 산자락이다. 우리 나라 한라산 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산마을) 안개가 가득 끼어서 누군가는 우울하고 축축하다고 할 법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고 운치있다며 턱을 괴고 넋을 놓고 바라 보다가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에 혹은 누군가와 조용히 조곤조곤 대화하기 좋은 그런 날이 된다. 특히 이런 날 한국 식당의 야외에 일렬로 쪼로록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뭉게 뭉게 피어 나는 산안개를 보고 있으면 그 차분한 분위기에 넋을 놓은 채 시간이 흘러 간다. 없던 감성마저 생길 것 같은 분위기에 젖어 들고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 가다 보면 한 풀 잦아든 듯한 느낌으로 그 안개에 젖어 든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우리는 그곳에서 만났다.

사실 가장 처음에 어떻게 마주쳤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맥간의 길 중 하나, 그러니까 내가 일하고 있던 까페 앞을 지나가던 그들과 처음 만났나 보다. (맥간에는 마을 남쪽을 가로 지르는 길이 두 개밖에 없다. 얼마나 작고 아늑한 마을인지.) 그리고 늘 책을 품 안에 안고 맥간을 지나 다니던 H를 종종 보게 되면서 그녀의 모습이 눈에 익게 되었다. 누가 봐도 엄청난 문학 소녀같아 보이는 포스를 갖고 있던 그녀.


일행 모두를 만나게 됐던 그 날은 자원 봉사를 하고 있던 NGO에서 티베트 아이들과 소풍을 다녀 온 뒤, 모처럼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국 식당으로 향했던 때였다. 그곳에 이미 그들 무리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자리를 같이 하자고 부른다.

“혹시 티베트 사람이에요?”

내 앞에 앉게 된 친구에게 물었다. 그럴 만하지 않나? 다듬지 못한 머리와 수염 등 그의 외모는 당시 그렇게 보였었고 이 곳은 티베트 주인이 운영하는곳이니까. 그는 그 말이 못내 싫었나 보다. “참 나,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 쪽도 딱 그렇게 보이는데 뭐.”

약간 황당하다는 기색을 보인다.

그게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내가 잘못했지. 내게는 그런 편견이 없어서 순수하게 물었던 건데.

그런데 그만큼 우리는 이미 현지화되어 편안한 모습과 차림으로 이 곳에 젖어 들어 있었다.

나의 옷과 같은 차림새하며 오랫동안 다듬지 못한 머리나 염색한 후로도 10센치는 더 자랐을 것 같은 머리, 인도를 싸돌아 다니면서 까맣게 그을린 피부까지.


그나저나 위의 대화의 주인공은 사진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사진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던 W였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인도 여행회사를 잠시 그만 두고 온 J, 국문과 출신이면서 소설가 김연수를 너무나 좋아하던 H, 2년간 세계 일주를 ‘철저하게’ 계획하고 나온 장교 출신의 M 등이 있었다.

곧 그들이 오매불망 기다렸던 이 곳 최고 메뉴 중의 하나이자, 한국인이 더없이 그리워했고 반가워 할 돼지불백이 나왔다. 사실 이 맛은, 한국 무한도전에 나왔다고 하는 연남동의 유명한 기사 식당보다 백 배는 더 맛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맛이다. 매콤한 맛을 더한 이 음식의 기본 맛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산간 마을에서 먹는 매콤한 한국적인 맛의 결정체라니!!! 그저 은혜로울 뿐이다.


아, 맥간은 나름 인도의 미식의 도시이다!

여행자들에게 인도에서 치이고 치여서 필요한 건 마음의 안정과 휴식뿐일 때, 사람들이 발길을 향하게 된다는 그 곳이 바로 당시의 맥간이었다. 정말이지, 우리는 이 곳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졌고 아름다운 음식의 향연에 환희를 느낄 정도였으니, 맥간은 정말이지 나를 포함한 인도 배낭 여행자의 분명한 구세주였다. 말 그대로 설레임을 가득 안고 인도 각지에서 찾아 드는 그런 안식처였던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갈 꺼에요?”

그렇게 각자의 음식을 앞에 두고, 한국인들답게 맛난 것들을 서로 권하며 거의 함께 나눠 먹는 저녁 자리가 되면서 다음의 일정을 묻는 당연한 대화가 오고 갔다.

“레. 라다크요!”

다들 레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다만 그들이 나보다 1, 2주 정도 먼저 그 곳으로 가 있을 듯했다. 그 곳에서 나는 특급 정보를 얘기해 준다. 아시아 게스트하우스 15번 방이 최고의 뷰를 가진 곳이라더라! 그러니, 내가 가기 전까지 그 곳을 맡아서 쓰다가 내가 갈 때면 달라!ㅎㅎ 이미 블로그 등을 통해서 본 그 방의 뷰는 내가 꿈꿨을 법한 라다크의 모든 로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 같았다. 그 초록 나무의 여유로운 푸르름이 한 눈에 보이는 방이라니. 그 풍경이 어떤 것인지 직접 느끼고 싶어서 몸이 들썩들썩할 지경이었다.  


여행의 묘미란 그런 것이 아닌가!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앞두고서 그 곳은 어떤 풍경의 장소일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 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멋진 시간을 갖게 될 것인가?

이런 저런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것에 대한 설레임. 

바로 그 때가 그 설레임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시기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라다크니까!

그렇게 우리는 가장 뜨거운 시간들을 보내며 라다크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대망의 라다크! 이번엔 꼭 간다!

그렇게 맥간에서 이미 친해지고 몇 번 식사를 함께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만의 기분좋은 끈끈함이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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