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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2. 2017

자연의 시간을 따르게 되는 곳

네팔 EBC

현대적인 시간이 멈추는 곳, 자연의 시간을 따르게 되는 곳


우리는 문명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개념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 곳에 와서야 진심으로 그것을 느끼게 되었다. 트레킹을 하던 중 시계를 봤던 적은 손에 꼽을 듯하다. 아침에 일어 났을 때와 저녁에 잠들러 갈 때 정도밖에 없었던 듯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루 일정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

아침에 알람을 들으면서 잠을 깨고 시간을 확인하면서 오늘의 스케줄과 출발 시간 등을 가늠한다. 나는 늘 롯지에서 설렁설렁 늦게 출발하는 편이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겼다. 그렇게 쫓기는 것 하나 없이, 옆 동네 마실 가듯이 옆의 풍경을 휘휘 둘러 보며 즐기면서 놀듯이 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하면서 짐을 다시 푸는 식이었다. 어차피 누가 누가 빨리 높이 가나 하는 레이스를 하러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와서까지 그런 식으로 달려야 한다면 그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일 테니까.



그렇게 여유롭게 출발해서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놓은 듯이, 하지만 발을 헛디뎌서는 절대 안 되기에 정신을 똑 바르게 차려서 걸어 가다 보면 어느새 목에 갈증이 조금씩 느껴지고 허기를 약간 달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온다. 그 때가 바로 티타임! 이왕이면 가장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있는 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 당장 지나가는 이 곳이 썩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포터에게 바로 다음에 있을 롯지까지 걸어가 보자고 한다. 그렇게 거대하게 빛나는 솔로 쿰부 지역의 풍광을 눈앞에 두고서 따끈한 ‘레몬 진저 허니 티’ (이 곳에서 계속해서 볼 수 있는 고유명사같이 되어 버린 차 종류, 레몬생강꿀차!!) 를 주문한다. 몸에 좋고 고산병에 도움이 될 법한 재료들이 다 들어 갔으니 무언가 이름이 가장 긴 것이 좋은 것이겠거니 하면서 늘 주문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물로든 차로든 따뜻한 액체를 몸에 계속해서 공급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레몬 진저 허니 티가 아니라면, 보통은 짜이를 주문한다. 내 사랑 마살라 짜이!!! 


그렇게 쉬면서 아몬드와 내가 사랑하는 피스타치오 등의 견과류를 먹으면서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도록 스스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때로는 스니커즈 같은 초코바를 먹기도 한다. 이 작은 것이 갑자기 뽀빠이같은 힘을 내어 이 길을 올라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경험해 보면 정말이지 놀랍다. 항상 육지에서 준비물을 살 때면 포터와 나눠 먹을 수 있을 양을 가늠해서 준비한다. 역시나 매번 쉴 때마다 그에게 함께 먹자고 건넨다. 그렇게 눈 앞의 하나하나의 풍경이 일생 일대의 풍경인지라, 그리고 각도를 달리 할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풍경인지라 눈과 마음에 최대한 선명하게 담으려고 노력한다. 실은 그 순간 내가 느끼는 느낌을 오롯이 기억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게 20여 분, 때로 다른 트레커들을 만나서 대화가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한참 그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면 포터가 가자고 얘기해 준다. 그렇게 일어 나서 한 두 시간 더 걷다 보면 사람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서 롯지에 하나 둘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때가 점심 시간! 그러면 또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다시 출발! 롯지에서 음식을 주문하고서 일정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은 몇 가지 정해진 음식을 해놓고 늘 팔고 있는 우리 개념의 식당이 아니다. 주문이 들어 가면 그때서야 그들의 속도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의 백반과 같은 음식 탈리도 좋고 이왕이면 고산지역으로 갈수록 힘을 내기 위해서 ‘치킨 프라이드 라이스’ 같은 음식을 일부러 보충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또 오후 트레킹을 시작하고 걷다 보면 하늘이 약간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 고산지역에서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함께 흰 설산의 풍광만을 오롯이 보면서 가고 싶다면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답이다. 왜냐하면, 12시 정도를 기점으로 하늘에서 만들어진 구름들의 양이 눈에 띄게 늘어 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름의 양으로 오후의 시간대를 가늠하고 어느 정도 시간의 좌표를 찍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고 하면 짐을 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날의 트레킹 일정이 끝나는 것이다.


트레킹이 전반부였다면, 롯지에서의 시간은 이 날의 후반부이다. 수많은 트레커들과의 만남과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일단 방에 짐을 풀어 두고, 따뜻한 난로를 켜 둔 롯지의 거실로 나온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미 모여서 신발을 말리거나 책을 읽고 있다. 늘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포르투갈, 미국 등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따스함을 느끼겠다고 난로 주변으로 빙 둘러 앉아 있다. 그렇게 팔로 몸을 쓰다듬거나 손을 호호 불며 온기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미리 주문해 둔 시간에 맞춰서 저녁이 나온다. 다른 트레커들과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내일을 위해서 조금 일찍 그러니까 9시 전에 보통 자신의 방으로 들어 간다. 그러니 시계를 들여다 보며 하루의 일정을 가늠하는 일상적인 습관이 이 곳에서는 거의 소용이 없어 지는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이 너무나 편안했다. 우리 모두 사실은 예전에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자연스러우면서도 신기하리만치 오히려 나의 순간 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거짓말처럼 내가 시간의 어느 즈음에 있는지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고 익숙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느림의 여유를 얻지만 의외로 정확함과 ‘oriented’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기이한 경험. 아마도 사실 이것이 원래의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 곳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한 생활의 리듬을 익혀 갔다.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무언가를 늘 갈망하고 앞서 나가려던 내가 원래의 나다움을 회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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