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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2. 2017

지금껏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보다

네팔 EBC

드디어 베이스캠프로 가기 전 날!

롯지 밖으로는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이 사나운 바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슝슝! 소리만 들으면 바로 귀신이 나타나고도 남을 것만 같다.

포터 니마가 내일은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타르까지 갔다 오는 일정을 반드시 이른 오전 중에 끝마쳐야 한다고 얘기한다. 시간이 늦어질 수록 추위와 바람 때문에 일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침 5시 반. 눈을 떴다.

롯지를 출발해서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경사가 4, 50도는 족히 될 것 같은 길을 끝없이 올라갔다. 거짓말 조금도 보태지 않고, 위를 올려다 보니 오십 걸음 정도 올라 가면 충분히 닿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몇 걸음 옮기고 숨을 고르기를 반복했다. 확실히 쉽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심지어 나는 안에 옷을 껴입기는 했지만 겉은 청바지인 상황이었다. 추워도 너무 춥다. 동도 트기 전이다. 햇빛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해가 뜨기 직전 새벽의 가장 추운 바로 그 시간이었다. 진정으로 장갑을 끼고 있지만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칼바람과 함께 했으니! 

진정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추위였다. 


그런데 니마가 내 손을 가리킨다.

‘니 장갑 한 쪽만 주면 안 돼?’ 

이런 눈빛과 손길로 내 손을 보고 있었다.

“응??”

‘이렇게 추운 거 뻔히 알면서, 미리 준비해 오지. 고객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입장인데 되려 동상이 걸릴 것 같은 추위에서 한 손을 맨손으로 가라고?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라는 마음이 쿡하고 솟아 올랐다. 

여행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못된 마음을 먹은 때였다.


“우리가 진짜 올라왔어!”

약간 고산병 증세를 보여서 나의 포터가 오히려 케어해 주고 있던 미국친구 제프리에게 얘기했다.

이 곳에 섰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일단 주위를 둘러 본다. 나의 왼편으로 세상 가장 높은 고봉이라고 하는 영적인 느낌이 가득한 에베레스트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고도에서 그렇게 높게 느껴 지지도 않는다. 

(물론 안다. 이 곳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사람들이 베이스캠프로 삼는 곳이다. 그나마 그 곳을 올라가기 위해 존재하는 곳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사방을 360도로 둘러 본다. 말 그대로 흰 색의 설산들이 사방을 빙 둘러서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사람도 없다. 나와 제프리, 그리고 나의 포터 니마. 이렇게 오직 세 명뿐이다. 


바람이 휘휘 불어 온다.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어느 순간엔 잠잠하다가 이내 산에 부딪쳐서 돌아 오는지 쌩쌩 거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마치 직접 두 발로 오지 않으면 절대 마주할 수 없는 꼭꼭 숨은 산의 신비를 혼자서 몰래 엿보는 느낌이다. 지구의 태고적 소리! 몇 십 만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 지구의, 자연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하면 큰 과장일까?

하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다. 

실제로 우리가 밤에 아름다운 별빛을 보지만, 사실 그것은 몇 백만 광년 전에 그 곳에서 출발한 것이 드디어 지구에 이르러서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별빛은 몇 백만 광년 전 저 별이 내뿜은 빛인 것이다. 그것과 같이, 비록 나는 2000년대에 에베레스트 근처에서 이 곳을 느끼고 있지만, 마치 이 곳의 소리와 풍광은 이 곳이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옛날 옛적의 모습 그대로를 보고 느끼고 있는 것만 같다.



이 곳에 있을 수만 있다면 정말 하루 내내 끝도 없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고요이고 적막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채워 주는 듯한 평온함을 주는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완전하면서도 완벽했다. 그 속에서 나를 만났다가 눈을 돌려 에베레스트 고봉을 번갈아 보자면 내가 오랫동안 안고 있었던 수많은 물음들에 답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완벽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겸손함의 바닥 그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닿은 느낌이었다. 이 자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입 밖으로 나오는 그 어떤 말도 이 맑고 성스러운 느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꺾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하찮은 우주의 한 존재일 뿐이구나라는 것이 실감나는데, 그것이 왜 그리 좋은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저 이 우주의, 지구의, 자연의 태초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언어가 아닌 온 마음과 감각으로 내 안에 담아 본다. 저 태산같은 우주가 곧 내 마음이길!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무한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가장 정성스러운 경배를 올린다. 그러면서 앞으로 산을 마주 보고 둘러 싸여 있는 이 맑고 깨끗하고 명징한 느낌을, 이 벅차고도 벅찬 마음을 언제나 기억하자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다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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