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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2. 2017

루끌라의 고마운 인연 Deepak

네팔 EBC

히말라야 자락에는 그렇게 겸허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어진 환경 안에서 삶을 개척해 가는 정직한 사람들이 살아 가고 있다. 

그렇게 재미난 인연들도 계속해서 만들어 진다. 

이 곳에는 바라는 것 없이 호의를 베푸는 선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인간 사회의 물질적인 질서만을 따르기 보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서 자연을 자신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여 놓고 균형을 맞추어 가려는 그들의 모습이 마음 깊게 와닿았다. 내가 본 그들은 결코 자만스러운 면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곳의 자연이란 언제든지 험하게 돌변해서 그들에게 크게 시련을 줄 수도 있는 것인 동시에 엄숙한 아름다움을 평생 느끼면서 신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였다. 물론 그들의 경제적 삶의 기반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드디어 혼자서 그렇게나 열망했었던 EBC 트레킹도 끝나고 루끌라로 내려왔다. 무언가 이 벅찬 느낌을 여전히 간직한 채 기념으로라도 여유를 부려 보고 싶었다. 결국 자축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고산병 때문에 염려되어 마시지 못했던 술도 살짝 마시고 싶고. 근처 바에 가서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나는 너무나 작은 공간이었기에 차라리 바 앞에 앉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혼자서 이 시원섭섭한 마음을 달래면서 있자니, 바텐더처럼 보이는 (알고 보니 이 곳 매니저였던) 친구가 나의 여정을 궁금해 하면서 물어 본다. 나는 이렇게 트레킹을 했고 이제 내일 아침이면 떠난다 등등의 내 얘기를 풀어 놓았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지만 이 곳을 트레킹할 때면 누구와도 늘 주고 받을 법한 얘기를 일상적으로 하면서 있었다. 그도 자신의 얘기를 소소하게 한다. 부인과 아이가 있는데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이 곳에서 일한 지 좀 되었는데 이 작은 마을이 답답해서 다른 곳으로 가서 일을 하고 싶다 등등.


숙소의 문이 잠겨 있다!!!

이제 저녁 9시쯤 되어서 내 숙소로 돌아 가야 되겠다 싶어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무려 내가 머무는 숙소의 입구가 ‘잠겨’ 있었다. 이 시간에!!! 설마 하고서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이 곳을 담당하는 친구가 정말 깊게 잠이 들어 버렸나 보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럼 나는 어디서 자라고? 이 시간에 어디서 어떻게 숙소를 구하라고??? 게다가 난 돈까지 이미 냈는 걸? 너무 황당한 마음에 일단 다시 맥주를 마시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나의 숙소로 함께 가주겠단다. 다시 함께 문을 두드렸으나 꿈쩍도 않는다. 


너무 황당해 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그는 자신의 호텔에 방을 줄 테니 자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다. 사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이 산간 지역에서 나는 혼자 여행하는 여자이니까, 어떤 상황이든 경계심을 먼저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답이 없어서 그 곳으로 가보았다. 그가 자신은 배가 고파졌다며 밥을 먹겠냐고 물어본다. 나는 아직까지도 황당함에 멍해진 상태로 괜찮다고 했다. 일단 부엌으로 가자기에 따라 갔더니 그는 아궁이에 무언가를 끓이더니 죽 같은 것을 먹었다. 흠… 사실 나는 이 곳에서 태어 나서 가장 많은 바퀴벌레들을 보았다. 밀도가 너무 높아서 놀라 버려서 고개를 돌려 버릴 만큼. 그런 곳에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하고 먹는것이 너무 신기했다. 


간단하게 죽을 먹고서는 그가 방을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올라가 봤더니, 너무나 번듯한 방에 고급스럽고 깨끗해 보이는 티베트 계통의 문양을 한 이불이 있다. 내 숙소의 방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튼튼한 가구의 모습을 한 침대가 있었다. 방 자체도 티베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는 정갈한 곳이었다. 나는 의외로 너무 좋은 방의 모습에 깜짝 놀라 가만히 서 있으니, 그가 미안한 듯한 얼굴로 이 정도면 괜찮겠느냐고 한다. 그럼! 충분하다 마다! 세상에 산간 마을에서 이렇게 좋은 곳에 머물러 보는 일이 있다니. 얼마를 지불해야 할 지 몰라서 물어 보니, 그는 그냥 편하게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내 숙소로 가서 조심해서 카트만두로 내려 가라고 한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한껏 차오른다. 이렇게 좋은 사람의 도움을 마지막에 받게 되는 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던 것이다. 그와 나는. 그렇게 종종 페이스북과 메세지를 통해서 서로 안부를 주고 받는 정도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바래왔듯이 카트만두의 거의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보이는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듯한 사진이 올라왔다. 네팔이라고 해서, 카트만두라고 해서 이들의 관광업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세계 각지에서 엄청난 숫자의 여행자들이 늘 몰려 드는 대표적인 세계적 여행지이고, 그러다 보니 이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음식이나 서비스 수준도 매우 높은 곳들이 꽤 많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그는 스위스에서 몇 달을 지내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점점 그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고 매니저의 자리까지. 그리고 늘 그의 너무나 아름다운 두 딸과 부인, 그가 쏙 빼닮은 그의 어머니 사진까지. 늘 행복하고 다복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럴 때면 무언가 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삶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빌게 된다. 척박한 가운데 그들이 일궈 나가야 하는 삶이란 우리네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다. 분명 다른 질서와 가치관을 따라 가는 삶일 것이다. 그가 행복해 보여서 정말 기쁘다. 내가 여전히 그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도 자신의 소식을 내게 기쁘게 알려 주는 루끌라의 인연이 나는 지금도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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