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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2. 2017

탕보체에서 만난 여행자들

네팔 EBC

탕보체 롯지의 난로 앞에서


눈이 펑펑 내리던 그 때, 포터 니마와 함께 들어간 롯지에는 이미 두 명의 트레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극도로 추운 시즌이었기에, 생각보다 트레커들은 많지 않아서 만나면 이내 반가운 마음이 커졌다. 

추운 날씨만큼 우리는 난로 주위에 가까이 둘러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 일쑤였다.

그렇게 또 탕보체에서 만났던 두 사람! 한 명은 내 또래의 미국인, 한 명은 호주 할아버지였다.

미국인이었던 제프리는 인도를 자주 드나들고 있는 여행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트레킹 끝나고 어디로 갈 예정이에요?”

나는 호주 할아버지의 일정을 물었다. 

“랑탕!” 

아,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하는 랑탕! 

너무나 경험해 보고 싶은 곳이다 언젠가! 

“얼마 동안요?”

“세 달”


그런데 랑탕에서 얼마를 계신다구요? 3개월? 

할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무심하게 대답하신다.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늘 겨울마다 히말라야 산 속에서 3개월 정도 지내신다고 했다. 그 지역이 다만 이번에 랑탕이었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그렇게 평범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추운 겨울의 폭설과 추위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히말라야 산에도 봄이 찾아 온다고 했다. 세상에 참 대단한 여행자들이 많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만났던 엘리자베스는 이제 애교일 정도이다. 이렇게 멋진 여행지에 오니 멋지고 특별한 여행자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예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 만큼 여행에 대한 나의 꿈과 폭도 원래 그러했지만 더없이 크고 넓어지고 있었다. 아마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여행 중간에 사람들이 ‘얼마나 여행하셨어요?’ 라고 물었을 때 ‘1년 넘게 이 곳 저곳 원하는 곳들 가면서 여행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었다. 내겐 그저 일상적인 대화이지만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을 만큼의 반응을 가질 수도 있었겠다 싶다.


21세기의 실크로드 위에서


그런데 이런 나도 이란을 가보니 별 거 없었다.ㅎㅎ 그 곳은 가장 모험적인 배낭 여행자들의 집결지였다. 이란이라는 곳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실크로드의 마지막 기점이자,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가 교차하는 지역이고 그렇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더없이 풍요로운 발전을 거듭했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도 21세기의 실크로드 위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사실이 너무나 흥분되고 설레면서 짜릿했다. 나도 어찌저찌 하다 보니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서 그 곳에 당도하는 기나긴 장정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지금의 실크로드 위에서!


내가 이 곳에 있을 당시만 해도, 모두들 어디로 가는지 물어 보면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이제 유럽으로 간다’, ‘유럽을 여행했는데 이제 터키를 여행하고 아시아 쪽으로 넘어 가려고 한다’ 등등 제각각의 답이 나왔다. 어느 여행지에서도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답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얼마나 여행했는지 물으면, 누군가는 7년째 여행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제 3년 차이다 등등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답이 쏟아져 나왔다. 1년 좀 넘게 여행하고 있다던 나와 일본의 자전거 여행자 친구가 가장 꼬꼬마 막내인 수준이었다.

지금은 훨씬 더 쉬워졌지만 쉽사리 여행하기 어려웠던 이란이었던 만큼, 멋지고 모험적인 여행자들이 차고 넘쳤었다. 또 한 번, 그렇게 나는 여행에서 여행에 대한 겸손을 배워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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