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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2. 2017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 걸음

티베트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 걸음

생각보다 한국을 떠나고 여행을 위한 한 발짝을 내딛는 일은 정말 쉬웠다. 불과 몇 시간 후, 나는 정말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차마고도의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중국 사천성 청두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원래 일정은 내가 내 발로 걸어 보고 싶었던 티베트와 네팔 이 두 곳을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몇 달 전 봤었던 < 차마고도 >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직접 그 자연과 순박해 마지 않는 사람들과 눈인사라도 나눠 보고 싶었다. 그렇게 맑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차마고도 또한 나의 일정에 추가되었다.


청두는 현재 중국 4대 도시에 들어 가는 신흥 공업 도시라는 말에 걸맞을 만큼,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빠져 나오면서 처음 맞닥뜨렸던 고층 빌딩과 네온 사인, 도시 자체의 규모 등은 ‘이래서 중국이 거대하고 발전하고 있다고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내 눈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밤에 도착한 나는 곧장 청두의 명물 게스트 하우스인 ‘Sims Cozy Guesthouse’로 향했다. 여행 꽤 해봤다고 자부하는 나 역시 중국은 처음인지라 낯설어 하던 차에, 배낭 여행자들의 숙소에 도착해 직원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친구 집에 방문한 것 마냥 든든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안내 받은 주황색의 방문을 여니 1, 2층의 개별 커튼이 달려 있는 조악한 침대가 방을 빙 둘러 있었고, 나는 이내 2층 침대로 올라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늑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배낭 여행자가 되어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음 날의 일정을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머리에 그려 보며 설레어 하는 느낌을 가져볼 수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내게 온 자유를 놓치지 않고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벽에 붙은 동티베트와 스촨성, 윈난성 지도를 보고 있었다. 숙소 직원이 누가 나를 찾는다는 말을 건넸다. 돌아 보니 50대 한국인 아저씨였다. 1월에 차마고도 쪽으로 내려가는 여행자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는 일행을 찾고 있다고 했다. 역시 내 여행 운은 아직도 유효했나 보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리장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시는 분을 만났으니. 이제 나는 이 분의 여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비밀의 땅으로 들어 서다

스촨성과 윈난성에 있는 티베트 지역은 많은 여행자들이 쉽게 방문하는 곳이 아니다. 아직까지 많이 때묻지 않고 베일에 가려 있는 곳을 여행한다는 그 모험심에 나는 잔뜩 설레었고, 속으로 스스로를 꽤 멋지다며 대견해 하며 길을 떠났던 것이다.


청두를 벗어나 고원으로 내딛을수록, 사진으로만 봤던 티베트 가옥들이 내 눈에 들어 왔다. 저 멀리 평화로운 모습에 가슴이 차분해 지고 동시에 두근대며 나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이제 정말 티베트 땅에 내가 들어 와 있는 느낌이다. 평원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가옥과 이들이 자리한 곳은 도시에 익숙한 나에게 '땅'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땅! 하지만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는 자연 그 자체 말이다. 

둘 중 하나가 상대를 지배하고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지는 것. 그 곳은 티베트인들이 몇 천 년의 세월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그들의 터전이고 땅이었다. 내가 상상속으로만 그렸던 그 곳, 그들만의 땅! 아직 이 지구상에서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그들의 삶과 사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그 비밀의 땅으로 내가 발을 들여 놓은 기분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 곳이 이방인으로 하여금 낯설음을 느끼게 하지 않고, 오히려 친숙하게 열린 느낌을 준다는 점이었다.


이미지는 Trekearth.com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티베트 건축을 무척 사랑한다. 감히 내가 본 건축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간결한 사각형 형태의 건물의 흰색 벽에 붉은 색 띠를 두른 듯한 느낌과 채도 높은 색색의 띠를 두른 듯한 양식. 강인하면서도 담백한 티베트인들의 정신과 닮아 있는 듯했다.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색들만 사용하면서 가장 세련되고 멋스러운 건물을 만들어 낸 듯한 그들의 미적 감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실제로 티베트인들은 아름다움에 큰 의미를 두는 민족이었고, 그들의 미적 감각은 화려한 색채의 장신구와 가옥 등을 통해 표현된다. 티베트 전통 가옥들이 푸른색 평원과 고원에 점점이 흩어져 있을 때에 만들어 내는 자연과의 조화는 티베트인들이 추구하는 조화와 어우러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티베트 건축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창틀이 아닐까! 흑백이 완연히 대비되며 소박하지만 강렬함을 전해주는 듯하다.


굽이 굽이 도는 고갯길과 3000m를 넘는 ‘작은 언덕’들은 내게 어느새 익숙한 것이 되었고, 나는 낡은 버스 창문이 덜컹거리며 스며 들어 오는 매서운 1월 티베트 고원의 바람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명징한 정신이었다. 이 바람이 어찌나 고마운지. 이렇게 거칠 수도 있는 곳에서 오롯이 나 혼자 걸어 나가는 기분을 참 오랫동안 원해 왔구나 하고 느낀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지며 나는 조금씩 더 그들의 땅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캉딩은 티베트 사원으로 유명한 꽤 규모 있는 티베트 도시이다. 사원 바로 옆에 숙소를 정하고 사원을 방문하기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내딛을 때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다른 세상 안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그 곳은 다르면서도 조용한 곳이었다. 

훠궈로 마무리하는 저녁.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방문한 곳에서, 그것도 티베트 사원을 바로 옆에 두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머리 맡 창문을 통해 고도로 인해 어느 때보다 가까이, 밝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나는 새까만 밤에 포근히 안겼다. 시릴 만큼의 상쾌하고 차가운 바람에 따뜻한 미소로 답하며. 어쩌면 이 밤이 다이나믹하고 어디로 향할지 나조차 예상할 수 없던 나의 여행의 진정한 첫 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앞으로의 날들에 설레는 맘을 감추지 못한 채, 나는 말 그대로 칠흙같은 밤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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