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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2. 2017

히말라야와 처음 만나다

인도 마날리, 맥글로드간즈

내가 히말라야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언제였을까? 

나는 처음부터 그 곳을 좋아했었을까?

문득 그 기억을 떠올려 본다.


2007년 인도

인도로 어학연수를 갔었다.

그 때 친구들과 짧은 방학을 이용해서 잠깐 방문했던 곳이 인도 북부의 마날리와 맥글로드 간즈였다.

마날리는 시원한 물소리를 듣고 시원한 삼나무 내음이 날 것만 같은 숲 속의 선선한 바람을 느끼면서 여유롭고 널쩍지근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맥글로드 간즈는 그렇게 마날리에 있다가 '근처'에 있다고 하길래 문득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곳이다. 이 경우 인도에서 '근처'라 함은 야간 버스를 타고 굽이 굽이 산길을 넘어 가서 9시간 정도 가야 닿는 정도이다.

지금도 오롯이 기억한다. 맥글로드 간즈로 가던 그 길과 이 곳에서의 나를 챙겨줬던 네팔 친구, 도착했을 때 마주했던 이 곳만의 너무나 독특한 풍경과 여유로움을.


당시의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 여정이 나의 최초의 인도 배낭 여행이었던 것 같다. 인도를 처음 방문했던 것은 사실 2005년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대학원에서 답사의 목적으로 간 곳이었기에, 배낭여행의 성격은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는 지금 생각해도 초행자가 인도에 접근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적응 기간이랄까. 급격한 충격에 나가 떨어지지 않고 호감을 유지시켜줬던 완충제였다고 할까. :)


네팔 친구 산투와의 만남

마날리에서 맥간으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던 버스 주차장에서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느꼈는지 근처에 있던 그가 내게 인사를 한 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는 내가 안심하게끔 나의 좌석을 찾아 주었다. 그렇게 눈을 붙이고 새벽까지 자다가 깨어 눈을 떠보니 버스 승객들 모두가 곯아 떨어져 있었다. 그 때가 5시쯤이었다. 운전사 옆에 앉아 그와 얘기하고 있는 산투가 보였다. 그 친구 역시 나를 보고서는 내 자리로 와서 앞에 앉아서 풍경을 보면서 가라고 했다. 그렇게 운전석 옆의 특별석에 앉아 구불구불 조금씩 높아지는 히말라야 산길을 바라 보며 맥글로드 간즈에 조금씩 가까워 갔다.



산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4일 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까지 더없이 점잖고 예의바른 친구였다.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그런 선한 친구였다. 

나는 그를 통해서 네팔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처음으로 직접 들었다. 그는 자신이 더없이 아름다운 곳 포카라 라는 곳에서 왔다고 했다. 그 곳에는 큰 연못이 있고 'fish tail'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 처음 들어 보는 곳이었고, 내 머리 속에 좌표를 찍을 수 없는,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어느 곳이었다.

그런 이 곳이 몇 년 뒤에 내가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당시에는 생각이나 했었을까? 2011년이 되어서야 그가 말한 자신의 고향에 있는 'fish tail'이 아름다운 안나푸르나의 봉우리 모양을 일컫는 애칭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알아 차리지는 못했지만, 내 삶에서의 작은 연결 고리들을 이미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와의 만남

버스에서 내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 섰을 때, 눈 앞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안개가 자욱했던 풍경. 태어나서 그런 풍경은 처음 봤다. 그러니까 이 숙소는 산 등성이에 자리해 있었던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발코니에서 무언가 땅이 끝나는 느낌이었고 그 앞에는 정말 한 치의 틈도 없이 안개가 자욱이 껴 있었다. 그 신비로움과 이국적임과 평화로움에서 느껴지던 여유!

어쩌면 나는 이 곳에서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었던 내 상상 속의 티베트를 느끼고 싶어 했고, 그 한 자락이라도 보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빈 방을 기다리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다 만나게 된 사람이 당시 나와 똑같은 상황의 엘리자베스였다. 예의 서로 인사를 하는데, 스스럼없고 자연스러운 그녀의 느낌이 정말 좋았다. 우리는 따뜻한 짜이를 앞에 두고 창문 유리 너머 안개 자욱한 풍경을 바라 보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었다. 그녀는 NGO를 위해서 기금을 모금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리쉬께시에 들렀다가 곧 에베레스트로 갈 것이라고 했다. 


응?? 내가 아는 그 에베레스트?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그 산 말인가? 

그 곳을 그녀는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있는 건가?

이 사람은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그동안 내가 미처 몰랐던 수많은 삶들의 가능성들을 엘리자베스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얼마 뒤,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에베레스트 정상 근처에서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 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 여기 왔어’ 하며 그 사진을 보내 주는데, 나는 그 광경을 보고서 얼마나 흥분했던지. 

설산의 압도적인 풍경 때문이 아니라, 얘기했던 대로 그녀가 정말 그 곳에 갔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그것이 진짜 히말라야의 최정상이 아니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으로 올라 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적어도 그녀는 내가 아는 한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엘리자베스의 ‘나 이 다음에는 에베레스트를 가려고 네팔로 갈 꺼야’ 이 말이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서 이 곳이 지구상에서 내가 가봐야만 할 곳으로 기억되어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일상을 보내던 내게 어느 순간 이 곳이 내 머리 속에 튀어 오른 거겠지.


# 나는 첫 히말라야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이 경험들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게 이 여행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호기심으로 그 길고 긴 여행을 떠났었을까?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새삼 감사하다. 내게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들.

그리고 그 세상이 낯설고 먼 것이 아니라, 내 옆 집처럼 그리고 내 이웃들처럼 친근한 느낌이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들. 그들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서 훨씬 더 날아 오를 수 있었으니까.


# 그 만남 이후의 나

사실 나는 일상적인 평범한 삶을 꿈꾸기보다, 어릴 때부터 한국 기준에서는 특이한 삶을 로망처럼 꿈꾸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중 하나가 라다크같은 곳에서 한번 쯤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젊은 때에!

이런 나였기에 여행이 주는 비일상성은 '드디어' 나의 삶을 내가 원하는 다른 곳으로 활짝 열어 주는 것만 같았고, 드디어 내가 올바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안정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여행 중에 흥분되는 것은 ‘내가 결정하면 정말 어떤 삶이든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저 곳에 머물 듯이 살아 보고 싶다고 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저 내가 움직이면 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수많은 삶의 선택지들이 내 앞에 놓여져 설레디 설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 삶이 어느 정도로까지 흥미진진해질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삶의 재미를 알았다고 할까?

세상이 이렇게나 풍요로운 것들을 내게 안겨줄 수 있는 곳이구나. 나는 수많은 것들로 행복해 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면에 정말 강한 면을 갖고 있구나, 내가 이런 것을 참 좋아하는구나 등등. 나에 대해서도 알아 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경험으로, 온 몸으로 내가 직접 겪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얻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여행의 시작이자 끝은 사람이다. 그것은 내게 변함 없는 진리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흥미를 갖고 마음을 열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 역시도 그런 자유로운, 틀에 얽매이지 않은, 그렇게 주체적인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마음 속에 품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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