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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2. 2017

세상 그리고 인생과 연애했던 여행의 기록

현재 진형형인 긴 여행의 프롤로그

“매 순간 찬란할 수 있기를, 반짝 반짝 빛날 수 있기를!”


내가 늘 내 자신과 나의 인생에게 바라는 것이었다.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축제와 같으니까. 백지와 같은 시간들에 굳이 좋지 않은 것으로 채워 넣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향과 맛들로 채워 넣을 수는 없을까. 늘 생각했다. 그러기에도 짧은 시간이니까.

그렇게 늘 오래 바래왔듯이, 나는 세상과 인생과 연애하는 시간을 내게 선물했다.

앞으로 550여 일에 걸친 나의 찬란하고 설레는 여행에 대한 기억을 펼쳐 놓고자 한다.


혼자 여행을 간다는 것

2011년 1월 6일부터 2012년 6월 30일까지의 550여 일에 이르는 여행을 혼자서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묻는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괜찮았느냐고, 혼자 여행하는 것은 어떤 것이었냐고. 홀로 여행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혼자 여행을 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의 꿈은 뭘까?

나는 어떤 때 행복한가?

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오롯이 내 존재 그 자체로 서 있고 나에게 귀기울여 주는 일이다!”


처음부터 계획된 여행은 아니었다.

나에게 세상은, 인생은 그런 것이었다.

너무나 많은무궁무진한 가능성들로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어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지 궁금해 지는. 그리고 설레어야 하는.

어릴 적부터 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가 머물러 있는 이 곳만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러한 호기심이 나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다양한 곳의 역사나, 예술,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끔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은 전공으로 이어졌고 스무살이 된 나는 자연스럽게 미술사를 전공하게 되었다.


서른 그리고 연애의 시작

2011년, 나는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단지 내가 한국에서 여자로서 꽤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 법한 나이를 막 지나쳐서가 아니었다. 최고 명문대 출신과 대학원 재학 중이라는 나의 차림이 주는 안정감과 주위의 시선은 꽤나 달콤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계속해서 더 나은 곳으로 꿈꾸게 하는 곳인 것만은 분명했고, 나를 부족함이 없도록 느끼게 하는 면이 있었다. 학교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를 꽤나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했으니까.


하지만, 꿈!

나는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이 단어로 심장이 늘 두근거리기를 원했다.

그런 만큼 내 인생도 특별하고 설레는 것이기를 바랬다.

2011년 1월 1일, 서른 살이 된 그날은 내게 매우 평범한 날 중 하나였다. 매년 새해 첫 날이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언젠가 내가 늘 꿈꾸던 티베트를 갈 것이고, 히말라야의 설산을 내 발로 직접 걸어 볼 것이며, 중국과 티베트를 잇던 그 오랜 길인 차마고도를 홀로 탐험할 꺼야." 라는생각을 머리 속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불과 5분도 안 되어, "그런데 왜 그게 꼭 언젠가, someday 여야만 하지? 왜 지금 당장이면 안 돼?"라는 생각이 떠 올랐을 때, 나는 뭔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뭇거리고 있던 나에 대한 한심함이 몽글몽글 몰려오면서 동시에 심장이 쿵쾅거리는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사 모든 것에 ‘언젠가’라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미루고 실행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나의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내가 그렇게 원하는 저 곳들, 인간의 순수함이 살아 있을 것 같은 곳들, 나의 마음의 고향일 것만 같은 저 곳들을 가보자.

사실 왜 항상 영적인 순수함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티베트를 동경했는지, 꼭 한 번 내가 느끼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10대 초반이었던 그 때부터 티베트는 내게 의심의 여지 없이 그런 곳이었고, 나는 그 오랜 바람을 향해 실제로 발을 내딛는 것뿐이었다.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여행처럼.

때로 그런 일들이 없는가? 외면적으로는 갑작스럽고뜬금 없는 일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던 일들.

나는 바로 비행기표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5일 뒤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인천공항에서 출발과 모험의 가능성과 설렘을 한껏 안은 채, 나는 도화지 같은 내 시간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그렇게 세상 그리고 인생과의 진한 연애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쟁취한 운명 같은 첫 만남

행복해지고 싶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더 넓은 가능성을 내가 몸소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청춘의 열정을 한 가득 느끼고 싶었다.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모험과 탐험에 대한 유전자가 내 몸 속에 원래부터 내장되어 있기는 하다. 항상 바깥 세상에 대한 시선을 견지해 왔고, 대학원 시절 뉴욕과 버클리에서 일정 기간 지내기도 했었다. 또한 미국 대륙을 홀로 횡단하고 흔치 않게 미국 중서부 지역과 북부 지방을 여행하고, 인도를 2번 여행하는 동안 외국 친구들은 나에게 어쩔 수 없는 여행자의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제대로 나에게 더 큰 가능성을 열어 주고 싶었다. 더 넓고 신나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열정 가득한 혼돈의 세상으로.

나는 더 이상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직접 부딪치고 느끼고 내 두 발로 움직이고 싶었다. 그 세상 안에서 어떤 것이든 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짜여져 있던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새로운 진정한 나를 만들어 가는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사람들은 때로는 여행에 목적과 당위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떠날 수밖에 없게 하는.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여행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얘기를 나누면, 다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그러나, 만약 여행을 현실에 대한 도피나 외면, 치유의 과정이 아니라 단지 길 위에 서 있는 그설렘과 즐거움, 다양하고 멋진 사람들과의 설레는 만남을 위해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그 자체이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여행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고 단 한 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그 시간 앞에 나를 내어 놓았고,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질 일들 앞에 내가 머뭇거림 없이 탐험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이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던 흥분되고 따뜻하며 설레고 찬란했던 여정이 펼쳐질 것이었다. 중국의 차마고도에서 티베트, 네팔, 인도까지 육로로 이어지는 시간들. 동남아의 뜨거우면서 여유로운 시간들, 그리고 여행의 정점을 찍었던 스페인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900km 종주, 유럽, 이집트, 이란, 터키, 파키스탄, 스리랑카, 미얀마로 이어지는 설레는 한 걸음 한 걸음. 그 곳에는 그렇게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사람들, 여행 친구들, 찬란하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 역사, 그리고 길 위에 서 있는 흥분과 정해지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 청춘, 열정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들이 있었다.

그렇게 5시간의 비행 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중국어만 들려오는 혼잡한 공항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내 가슴은 두근두근.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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