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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Feb 13. 2019

역사를 전공해도 괜찮을까??

내게는 참 할 말이 많은 주제다.

가슴 저 밑 언저리에서 올라 오는 큰 한 숨부터 쉬어야 할 것 같은, 나의 지난 날을 관통해 오면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였던 주제니까.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

역사는 곧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역사란 인간이 이 세상에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 왔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면서 지내 왔으며, 개인의 생활 속 작은 소소한 선택에서부터 크게는 세상의 큰 틀을 변모시킬 중요한 선택들을 통해 수많은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는지에 관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나는 역사에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삶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두근거림을 쫓아서

나는 꼬마 때부터, 국민학생 때부터 어줍짢게 내 꿈은 고고학자라고 외치며 장래희망란에도 그렇게 써냈었다. 과연 내가 무엇을 알고 그렇게 했었던 걸까?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본능적으로 끌리고 생각만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분야가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다른 분야에 마음을 주려고 노력해도 결국에는 삶의 시간을 통해 개개인의 태초의 관심으로 돌아 오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에 따라서 국민학교 학년이 바뀔 때마다 어떤 때는 아나운서, 스튜어디스 등등의 다양한 장래희망을 써내기는 했었지만, 6학년 때부터 오로지 '고고학자'로 장래희망란을 굳건히 채웠다. 국민학교 4학년이었을 때 부모님은 주말 여행으로 우리 자매를 경주로 데리고 가셨다. 어쩌면 지금 두 분은 그 곳에 나를 데려 갔던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실 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내가 신라의 공주였던 것만 같은 너무나 강한 연결감과 두근거림을 느끼고 말아 버렸으니!ㅎㅎ 그 때 이후로, 나는 역사, 예술, 고고학 등에 대한 확고한 꿈을 키워 갔다. 다시 말해, 당시의 관념으로 돈 안 되는 일들 말이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변함 없이 일관되게 같은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마음이 그렇게 두근거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들을 이어 오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나는 마침 수시전형으로 원하던 곳을 가려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조금 더 외부로 드러낼 수 있는 학교와 학부의 타이틀을 원했다. 지방의 신흥 도시였던 이유가 컸다. 그 와중에 부모님도 같은 입장이셨다. 사실 나의 미래에 대한 부모님의 설득은 몇 년 전부터 간혹이지만 이어져 왔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래서 역사를 전공해서 어떻게 생계 유지를 할 수 있을까?"였다. 나를 언제나 지지해 주셨던 분들이기에 그 분들이 이렇게까지 얘기하신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정말 걱정스러웠다는 뜻이다. 물론 꽤 오래 전의 일인지라, 법대와 의대 등이 가장 각광받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건 변하지 않았으려나? 캐슬 사람들과 쓰앵님을 보면.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 역시 나를 지지해 주기 보다도, "입학하고 반 년 안에 재수한다에 한 표 건다!" "3년 후에는 분명히 다른 전공을 하고 있을 꺼다"라는 말들을 하셨다.

법대? 의대? 경영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조차 않았던 전공들이 아주 잠시 내 눈 앞에 둥둥 떠다녔는데,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그 곳의 내 모습 또한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끝까지 내 고루한 고집을 고수했는데, 내 삶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첫번째 결정을 이들을 위하여 따라줄 이유가 한치도 없었던 탓이다. (이렇게 수많은 tmi를 쓰는 건,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의 과정으로 공감대를 지닐 분들이 있을까봐서다. :))


학부 시절의 고민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혼란의 시간이 있었던 점은 인정한다. 나조차 흔들리게 했던 주위의 말들도 그 사이에 수많이 있었으니까.

"남들은 다 앞을 보며 가고, 앞만 보고 가도 모자랄 시대이지 않느냐.

모든 것은 더없이 빠르게 나아가고 발전해 가고 있는데, 그것과 상관 없이 지나간 것, 지금과 상관 없는 과거의 것만을 붙잡고 있는 것은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이 특히 내 마음에 크게 자리하고 나를 고민하게 했었다.


하지만 나는 역사를 전공했고 그 안에서 미술사의 전공으로 졸업했고 대학원까지 다녔다. 그렇게 끝까지 역사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암, < 화조묘구도>, < 화조구자도 >, 16세기


심플한 한 가지!

이 세상에 돈을 벌고 돈만 벌기 위해, 혹은 직업이라는 것을 갖기 위해서만 이 세상에 태어 났고 내 삶을 누려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나는 노동과 생계 유지는 기본적으로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중요한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개인의 자존감을 유지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고!


그런데 젊었을 적 한 시절에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그 시기에 비옥한 자양분이 될 수 있는 풍요로운 시간들을 자신에게 마음껏 선물해 주는 것을 나는 어리석다고 보지만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능하다면 권하고 싶은 부분이다.


사람은 자기가 먹고 살 몫은 스스로 지니고 태어 난다고들 한다.

특히 요즘처럼 무엇 하나 정해지지 않은 이 시대에, 내 것이라고 믿고 나를 다 던졌던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옮겨가는 것이 너무나 빈번한 이 시대에 차라리 몽상가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니까.

역사라는 것이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서 전공으로 고려하고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지나 보니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던 20대 초반의 시기를 보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풍요로웠고 축복받았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정말 자주 든다. 

어쩌면 그 정신적 풍요와 호기심들로 인해 세상의 많은 것들에 다 관심을 갖다가 하나로 결정을 내리지 못해 혼란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


온고이지신


앞서 말했듯이,

나는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그들의 사고 방식, 심리 등등 '사람' 혹은 '사람이 인생을, 세상을 살아감'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이 많다는 것은 곧 애정을 바탕으로 한 호기심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정말 흔한 말이지만, 전통과 역사는 미래의 영감이 될 수 있다는 상투적인 명제를 나는 믿는다.

특히 요즘만큼 '온고이지신'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실감하게 되는 때가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이다. 갑자기 5년 전과 지금의 우리의 삶이 너무나 급격하게 달라져 있고, 불과 3년, 1년 전의 삶과 너무나 달라서 우리는 이제 매순간 새로운 기술과 흐름들에 우리를 빠르게 적응시키면서 이 시대와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휘몰아치는 외부의 변화 앞에서 중심점을 갖추지 못하면 우왕좌왕하기 쉽상인 이 시기에 정말 중요해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급격하게 바뀌어 가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바로 '본질'인 것 같다.

인간이 지닌 본질에 대한 것이랄까.

추상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자기만의 기준과 관점.

그것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

빠른 변화이고 이리 저리 대중 없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인 듯해 보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정한 방향성과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걸 앞서서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람의 관심사와 본질적인 욕망들'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변화해 나갈 현상과 방향을 유추해 가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아주 조심스레 든다.

너무 단순화시키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니 말이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호기심.

기본적으로 나와 나를 둘러싼 일들에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살펴보려고 하는 마음.


물론 외적인 기술들을 익히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나는 사람이 기술이 있어야지 하는 그 말이 이렇게나 아쉬운 게 될 지는 몰랐었다. :)


문화라는 카테고리에서 지금을 이해하기

시기만 다를 뿐, 과거의 생활 양식처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도 '21세기의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나고 약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양식'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 혁명??

4차 혁명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도 뚜렷이 정의내리기 힘든 이 단어는 어느 곳에나 멋들어지게 하지만 애매하게 쓰이는 것만 같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는 지식이 더 이상 소용 없어 지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고 조합하고 정리해서 취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지식 정보는 구글링 한 번이면 모두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그렇기에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꿰어낼 수 있는 자신만의 관점이 더 중요해진 듯하다.

김득신, < 야묘도추 >


역사 공부 & 논리적 사고

그러면 역사 공부가 이러한 접근법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볼까?

나는 정말 성실하지도 못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역사 수업을 아주 조금 더 들었던 나부랭이 중에서도 그저 나부랭이인 쭈글이일 뿐이라 아주 조심스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 주셨으면 한다. :))

조금 더 학문적인 부분으로 접근해 보면, 내가 생각하는 한 역사는 왜? 어떻게?? 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분야인 것 같다.

다시 말해, 호기심!

한 사건이나 현상의 배후에 얼마나 많은 이유와 배경들이 얽히고 섥혀서 존재하고 있을까. 역사란 정말 다양한 관점에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해 볼 수밖에 없는 학문이다.


학문의 이름처럼, 내가 공부한 미술사는 미술 작품을 통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회화 혹은 다양한 매체의 미술 작품이라는 단서를 사료로 삼아서 작품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을 다양한 요인들을 추측하고 이를 다시금 생동감있게 발현시켜 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참고 사료를 통해서 당시의 정치, 경제, 문화와 생활상을 읽어 내고 그에 얽힌 다양한 관점의 배경들을 밝혀 내는 일! 혹은 그 반대의 순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추론하는 과정 안에서 다양한 세상의 시스템과 삶의 모습, 개개인을 이해해 가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매우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고 바라보고 분석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어떻게 보면, 미술사 공부의 시작은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접근법들을 배우는 과정 그 자체다.

Jan Van Eyck, < Arnolfini Portrait >, 1434

나는 무엇보다도 역사 공부가 매우 논리적인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전제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들을 차곡차곡 보여 내는 일.

증거와 자료가 충분치 못하고 납득할 만한 것들이 아니면, 그 전제 자체가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떤 부분에서는 자연과학과 같이 매우 논리적인 부분이 있다.


이런 사고의 과정이 나중에 이르러서는 궁극적으로 분야를 초월해서 Logical Thinking이 가능하도록 하는 연습과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로지컬한 사고 과정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이 없지만, 역사라는 분야 자체가 그런 매력을 갖추고 있는 학문인 것 같다는 생각은 뒤늦게서야 들기 시작햇다.

늘 내가 그 안에 있을 때에는 나를 둘러싼 것들의 장점이 덜 보이고 남이 가진 것들이 더 좋아 보이는 게 다반사니까. :)


지금 지나고 보니, 대학에서의 시간은 실로 축복의 시간이었다. 너무나 다양한 시기의 작가들, 그리고 세계 곳곳에 걸쳐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해석해 보려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시대상도 읽어야 했으며, 그 공간은 어떤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 촘촘하게 읽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거시적인 관점도 있겠지만 더불어 미시적으로는 작가 개인의 인생 자체에 집중하는 일이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한 작품은 그것을 창조해 낸 작가의 가치관, 세계관, 마음과 감정의 상태까지 모두 반영하는 결정체였다.

당시의 나는 이렇게 해석하는 작업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상 한 사람의 인생과 마음,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시대에 푹 담기고 나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꽤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간접적이나마 이입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 내려 보는 결론은 역사 공부는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어우러진 일이라는 것이다. (감히 역사학이라는 단어는 못 쓰겠다. 난 그저 나....나부랭이...ㅠ)


Camille Pissarro, < View of Bazincourt, Sunset >, 1892 / < The Church and Farm of Eragny >, 1895

인문학의 축복

수많은 추측과 상상의 나래들.

눈에 보이는 현상 그 너머를 보려고 하는 노력, 바로 읽히지 않는 이야기들을 읽어 보려고 하는 노력들.

내가 속한 시공간을 넘어서서 내가 발딛을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제한 없이 확장시켜 준 상상의 시간들.

그렇기 때문에 이 공부를 할 때 나는 그토록 다양하고 많은 인생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꿈꿀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것이 인문학의 축복이라고 믿는다.


미술사에서 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곧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답은 절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아니, 처음부터 답이라는 것은 없다. 관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프리즘의 각도를 어떻게 잡고 다가가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세상의 현상들은 언제나 다양한 관점으로 읽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이해한다. 현상 너머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고 하는 노력. 매사에, 매 현상에서. 이러한 태도가 습관적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 같다.


지금와서 돌아 보니 인문학은 내게 내외적으로 감사한 시간들을 선사해 주었다.

1. 내부적으로는 자기 관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관심과 관찰


2. 외적으로는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

역사를 전공하면서 얻은 가장 큰 재산은 어떠한 현상에 답은 없지만 답을 만들어 가고 찾아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 즐기는 힘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렇게 ’나만의 답(나만의 해석)’을 찾고 만들어 가는 과정을.

나만의 관점이라는 것이 사실 매우 다층적이고 직관적이라 쉽게 설명해낼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 과정을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미술사 공부는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름 숙련된 안목과 감각을 길러 준 것 같다. 동서고금을 넘나 들며 가장 훌륭한 최고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봐오며 자연스럽게 습득된 안목이 자리하게 되었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우리의 주어진 한정된 시간들을 조금 더 풍성하게, 그럼으로써 밀도있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힘. 그래서 지나보니 더없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Wassily Kandinsky, <Untitled>, 1921 / Willem de Kooning, <Pink Angels>, 1945 / 김환기, <Echo>, 1965


여행!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 짓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내 관심사가 저 멀리 있는 과거,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 같은 몇 백 년, 몇 천 년 전에만 계속해서 머물러 있을 것 같은 걱정이 들었었다. 그랬던 내가 정말 신기하리만치 요즘 시대에 꽤 앞서 있는, 혹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곧 유행할 것 같은 삶의 방식이나 흐름들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아 차리게 되었다.


나의 과거와 미래의 두 시간에 대한 관심을 이어 주는 중간의 접점은 흥미롭게도 여행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여행이 그런 역할을 해준 듯하다.

많은 여행을 하기 전의 나는 내 자신에게만 관심이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오랜 여행 이후, 나의 그러한 관심과 시선이 다른 사람과 외부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실제 사람들, 그리고 실제의 삶과 mingle되면서 내 기본적인 관심사가 보다 현실에 기반한 것으로 옮아 가게 된 것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보편성을 지닌 한 표본의 일인이고, 나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곧 외부에 대해 이해하려는 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가장 ‘보편적인’ 지금 이 시기를 살아 가고 있는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관찰하게 된다.


여행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것, 어떤 장소, 어떤 흐름을 좋아하고 호기심을 느끼는지, 편안함을 느끼는지 등등 꽤 오랜 기간 동안 나만의 통계 혹은 데이터를 쌓아 오고 있었다는 느낌도 든다. 다시 말해, 보편적인 '사람'의 한 표본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관찰외부에 대한 호기심 어린 관심, 관찰이 어우러지면서 나의 시간이 과거에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캄보디아 시엠립 근교의 벵밀리아(Beng Melea) 유적에서

역사를 한때 유행했던 '인문학'이라는 단어로 트렌디하게 일반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또한 다른 학문들 역시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유사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모든 학문은 다 필요한 것이고 가치있는 것이다.


다만 어차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시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조금은 더 용기를 내어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나의 경험을 빌려 조심스레 얘기해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고정관념과 같은 우려가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시각에서 벗어 나서 역사를 조금 더 우리의 실생활로 친근하고 밀접하게 끌어 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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