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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pr 11. 2018

포틀랜드에 꼭 가보련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 아니냐고?

왜 지금 와서 그 흔한 포틀랜드 얘기를 하는 거냐고?


포틀랜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이 곳이 꽤 알려 지기 전이었다. 2008년 버클리에 잠시 있을 때 포틀랜드에서 온 친구가 있었어서 이 도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기억에 담아 두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이 곳은 저 끝, 이런 단어는 그렇지만 저 미국 어디께 변방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 Portland is Portland!! "

그러다가 2011년 스페인 까미노를 걷는데 미국 보스턴에서 온 미쉘이라는 나보다 8살 정도 많았던 peregrina와 며칠을 계속 같이 걷게 되었다. '보스턴에 있다니 부럽다.' 그랬더니 그는 아니란다. '안 그래도 이 까미노를 마치고 나면 자기는 오레곤 주로 갈 꺼야.' 그런다. 응?? 오레곤?? 그 드넓은 평지와 산이 끝없이 펼쳐진 야생의 자연 그대로를 보고 싶어서 나는 미국에 있을 때 혼자서 몬타나 주와 와이오밍 주를 여행하기도 했었다. 그 곳에서 플라잉 낚시도 던져 보고 그 드넓게 탁트인 자연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런 곳을 얘기하고 있는 것인가? 오레곤 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던 나는 내 머리 속에서 오레곤 주를 몬타나 주 그 근처 즈음으로 위치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오레곤'이라는 단어를 힘주어서 대명사처럼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오레곤'은 당연히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지만, 뭔가 '오레곤'이라고 하면 무언가 사회 안에서 암묵적인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시대의 단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쉽게 얘기하자면, '나 제주 가서 살고 싶어'와 같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것이 제주라는 특정 지역을 당연히 가리킬 수도 있고, 그렇게 자연과 함께 좀 더 한 템포 느긋하게 나를 챙겨 가면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 보고 싶어, 이런 화자의 마음을 우리는 쉽게 유추할 수 있지 않은가. 



그 오레곤 주의 중심지가 바로 포틀랜드이다. 그는 요즘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이주하고 있으며 자신의 꿈과 같은 이상적인 곳이라는 뉘앙스로 내게 얘기했다.


힙스터들의 성지처럼 소비되다

그러다가 한국에 '포틀랜드'라는 단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곳의 나름 감각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한 상점들과 scene들을 보자니, 정말 궁금해지기는 했다. 아니, 정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기는 했었다. 단순히 며칠 가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최소 한 달쯤, 그것도 그들의 시원한 크래프트 맥주가 넘쳐 나고 그 어느 때보다 맛날 여름에 가서 그 곳의 햇살과 푸르른 나무들의 싱그러움을 한가득 안아 보고 싶었다. 역시나 경제적인 부분이지만 가능만 하다면 여름 내내 머물러 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2, 3년이 지나면서 포틀랜드는 우리 나라에서 또 연남동처럼 매체에서 과하게 소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 조차도 그 곳에서 대해서 관심을 조금씩 거두기 시작했다. 연남동의 결말이 그러했듯이, 포틀랜드도 자본과 사람들의 흥미로 인해 원래의 제 모습을 지키고 있지 않을 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소비되기 시작하면, 그 본질을 지켜낸다는 것이 정말 어렵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포틀랜드인 이유를 찾고 싶다.

그러다가 정말 최근 들어서, 다시금 이 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 이유는 앞의 이유와 정반대의 것이다. 포틀랜드. 지금 전 세계에서 지난 몇 년 간 가장 '힙'하며 '핫'한 (이런 단어들을 참 안 좋아하지만!!) 포틀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이며 me-too creator들의 (나는 동네를 만들어 내는 초기의 creator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비슷한 성향이든,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모여 들면서 동네가 변화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영향으로 처음의 색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중심가의 임대료가 말도 못하게 치솟았고, 나름 저렴하고 매력적인 임대료로 자신들의 사업을 할 수 있었던 creator들이 바깥쪽으로 몰려 나게 되었다는 기사들도 보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포틀랜드는 포틀랜드인 듯해 보였다. 

그 수많은 외침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지점에서 갑자기 이 곳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저력은 과연 무엇이길래? 

이 도시를 지켜 나갈 수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갑자기 그런 질문들이 머리 속에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포틀랜드는 오늘날 대안 문화의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금 더 그 성향이 강하고 본질이 농후하게 녹아 있는 곳이 예전 내가 경험한 버클리일 것 같다. 이 곳 특유의 활기차고 생기 넘치며 지적으로 예리하게 살아 있는 느낌을 퍽이나 좋아했던 나이기에, 왠지 포틀랜드에도 내 마음의 큰 조각을 내어 주고 흠모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이란을 다녀온 적이 있어 비자는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기회가 닿으면 올해는 꼭 포틀랜드를 다녀와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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