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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Feb 11. 2018

꽃의 생기를 집에 들이다

자연의 색에 기대다

색을 만들기로 하다

나의 양평 집 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색의 느낌과 초록으로 가득 차서 자못 동남아의 따스한 어드메같은 느낌을 풍긴다.

하지만 겨울이 지속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약간 웅크려지게 되고 좋아했던 시원함이 되려 추운 느낌으로 다가 와서 집이 휑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집 안에 온기와 생기가 필요했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이불을 덮고서는 계속해서 귤을 까먹으며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찾아 보는 시간들을 겨울답다며 진심으로 즐기고 있지만서도, 내게 움직임을 주고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색. 색감. Color!

집에 색을 들이자 싶었다.

나는 내가 색감을 통한 생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직관적으로 느꼈다.


나는 색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미술 작품들을 오랫동안 접해 오면서도 나의 취향은 다소 일관되다. 근대 이후의 미술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회화, 그 중에서도 색감이 밝은 추상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색감과 흩뿌려진 선과 색, 물감의 흐름을 따라서 나의 마음이 움직이고, 피어 났다가 사라지거나 변화하는 것을 가만히 느끼고 지켜 보는 것을 꽤 즐긴다.


초록과 파랑

그래서 최근에 마련한 것이, 마티스의 작품 프린트이다.

마티스의 그림은 아이가 그린 그림 마냥 더없이 단순하고 그저 경쾌하고, 때로는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단순함을 획득하는 것이 예술에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결국 예술가들이 일생을 통해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회귀해 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가장 단순한 것이 강력한 것이며 본질을 꿰뚫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아니, 본질을 제대로 꿰뚫을 수 있는 사람만이 단순함을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마티스의 완벽한 색감과 색들의 선택과 배치와 구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감탄이 가득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원래 좋아해 마지 않았던 그가 새삼 대단한 예술가라는 것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사실 미술을 감상하고 가까이 접해온 사람 치고는, 굉장히 저렴하고 조악할 만큼의 퀄리티이지만, 어차피 내가 진품을 살 수 있지 않는 이상 저 정도로 충분하다 싶었다.

그저 내가 저 그림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주위가 환기되는 느낌이 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는 집에 크게 돈을 들이고 싶지 않다.

좋은 물건을 조금씩 들이다 보면 이 집과 공간에 집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나는 언제고 가볍게 원하는 대로 떠나고 움직이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내가 이 곳에 머무는 동안 그저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곳을 즐기고 누리면 되는 것이다.

내겐 그거면 충분하다.

그나저나, 요즘 이 그림이 색감이 없던 집에 활기를 돋아주는 것 같아 볼 때마다 참 잘 들였다 싶다.


빨강

그런데 이제 내게 기분 좋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게끔 북돋아 주고, 아이디어들을 떠올리는 데에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붉은 계통의 색이 보고 싶어졌다. 아니, 내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서 이렇게나 정확히 '빨간색'의 꽃이 보고 싶어진 때가 또 있을까?

나이가 든 것일 수도 있고.ㅎㅎ


드디어 시간이 되던 날, 꽃시장으로 달려가서 마음에 드는 꽃들을 찾기 시작했다.

보라색 빛이 나던 왁스플라워도 사고 싶었고 헬레보루스도 사고 싶었고, 오렌지색 튤립도 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너무나 의외로 흔하디 흔한 라넌이었다.

너무 흔해서 왠만해서는 꽃시장에서 사지 않던 라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빨간색인 라넌들이 어찌나 눈에 들어오던지! 겹겹이 피어 있는 그 꽃잎들이 그렇게나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붉은 라넌 한 다발과 봉오리 속에 감춰져 있어 아직 꽃 색을 가늠할 수 없는 양귀비를 안고 더없이 행복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동백.

내게 동백은 가장 완벽한 꽃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이 가장 고귀하고 완벽한 것임을 보여 주는 동백.

단아하고 고귀하면서도, 어떤 때는 화려하고 섹시해 보이기까지 하는 완벽한 꽃.

그리고 그 윤기나는 아름다운 잎사귀까지.

언제나 집에 동백나무를 한 그루 들이고 싶어 했지만, 집에서 가꾸고 꽃을 피워 내기에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꽃시장에 갈 때마다 그저 아쉬운 듯이 한참을 들여다 보고 오곤 했었다.

이번 겨울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의 일본 동백을 들이려 했었는데, 이렇게 붉은 라넌을 매일 보고 있자니 이번 겨울은 이제 아쉬움 없이 넘어 가겠다 싶다.



매일 생기 넘치는 붉은 꽃들을 보고 있자니, 한동안 멈춰 있는 것 같던 머리와 마음이 빠르게 깨어 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새 내게 조금씩 봄의 생동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 찾아 오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아름다운 자연의 색에 기대어 추운 겨울을 넘어 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겨울이 정말 춥고 지리하게 느껴졌다는 것은 아니다.

외려 작년보다는 덜 춥게 느껴 지고, 오히려 이 겨울을 즐기면서 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집순이가 될 일은 절대 없었을 만큼 밖으로 나다니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던 내가, 자발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을 즐겨 가고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한, 고요함의 기쁨을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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