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바에서 만난 연수씨_1

첫 학술논문, 잘 쓰게된 썰 풀어본다.

by 우조

연수씨를 처음 마주쳤던 곳은 동네 에스프레소 카페였다. 나는 오전에 운동을 마치면, 그곳에 잠시 들러 콘파냐를 한잔 마시곤 했다. 그날도 그렇게 들른 길이었다. 그레이빛 벽을 따라 길게 나 있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며 한 모금을 마시려는데, 내 발치 아래로 A4용지 한 뭉치가 떨어졌다. 타인과 그리 여유 있게 떨어져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 종이 위에 쓰인 제목을 보게 되었다. ‘처음 쓰는 논문작성법’. 나는 재빨리 그것을 주워 옆자리의 그녀에게 웃으며 넘겨주었다. 한눈에 봐도 풋풋한 대학생처럼 보였는데, 그 얼굴은 조금 전까지도 내용에 꽤 몰입하여 집중한 기색이다. “죄송합니다!” 말하며, 그녀는 흘러내린 안경을 다시 야무지게 고정했다. 내가 그 종이 뭉치를 빤히 바라보니 그녀가 멋쩍게 웃는다. 그 모습이 수수하고 정겹다.


벌써 오래전인 대학원생 시절, 논문작업으로 정신없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논문 쓰시나 봐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요! 파이팅!!”

파이팅이라니...파이팅이라니...낯선 이에게 파이팅이라니, 그러나 이렇게 말해놓고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줌마의 오지랖. 그래도 아는 척은 여기까지만 해야겠지. 공기의 질감이 다른 걸 보니 그녀는 좀 황당한가 보다. 곱게 사라져야겠다는 마음으로 다 마신 잔을 들고 일어서는데, 이번엔 그녀가 말했다.

“아, 너무 어려워요, 어렵네요. 도무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저 MZ세대의 혼잣말인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와서 중얼거렸으리라. 이 아주머니는 몇 초간 고민한다. 이제 전개될 오지랖의 범위에 대하여. 그리고 결정하고 내뱉는다.

“맞아요, 처음엔 다 그렇죠. 뭐. 제가 논문 쓸 때는 어떻게 졸업이나 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첫 논문도 어떻게 쓰게 되고, 거기서 재밌었는지 그 길로 쭉 가다가 잠깐 이렇게 쉬고 있어요.” 활짝 웃으며 라떼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대화하면서 우리가 함께 쌓은 에스프레소 탑은 한 오 층 정도 되나 싶다. 바쁘게 마시고 사라지는 인파들 가운데 우리는 마치 동지를 만난 듯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지금 대학원 석사과정을 두 학기 남겨놓은 상태였다. 이제 프로포절을 작성해서 내야 하는데, 논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막막해 죽겠다고 했다. ‘아, 고민을 하는구나.’ 나는 고민을 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경외감이 느껴졌다. 요즘 MZ세대는 저렇게 야무지구나.’ 내 시절이 오버랩되어서, 어림잡는 질문을 몇 개 던지니 자신도 반가웠는지 정보를 술술 읊기 시작했다. 하긴 나도 그랬다. 자신의 분야와 소속이 아닌, 타대학원생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뭔가 반가웠다.

충분한 대화 후에, 다음 일정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자기 이름은 연수라고 한다. 그리고 언제 또 여기 오시냐고 묻는다. 수업이 없는 오전에 오면 혹시 언니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미괄식으로 핵심 메시지를 던졌다.


“논문 쓰는 법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냥 대충이라도 어떻게 쓰면 되는지요,”

에스프레소를 꼭 쏘겠다는 말과 함께. 대학원 등록금을 쏟아부어 쟁취했던 나의 지적재산을 날로 먹으려는 그녀가 실없고 귀여워서 웃었다. 그래, 나에게도 논문 쓰는 선배님, 교수님은 계셨지만, 곁에 논문 쓰는 언니는 없었지.

“그런 썰이라면, 얼마든지 풀 수 있죠, 연수씨. 근데 뭐 도움 될 것이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쉬운 논문 관련 에세이 책도 많으니 소개해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녀가 말한다.

“제가, 언니, 제가요. 논문은 이미 책으로 많이 배운 것 같아서요. 언니, 괜찮으시면 가벼운 인터뷰 하신다고 생각해주시고 조금만 도움을 요청할게요”

나는 그 정중한 간절함에 으쓱해졌고, 며칠 후 다시 그 카페에서 초롱초롱한 새내기 논문작성자 그녀와 재회했다.


“어떻게, 며칠 동안 잘 지냈어요? 정신이 없죠? 논문이란 거 말이에요. 지금 해주는 이야기를 모든 케이스에 적용하지는 말아요. 저도 석사논문 쓰고 나서는,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어쩌다 보니 가방끈이 길어지긴 했지만, 석사논문을 쓰고 나서는 바로 결혼에,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에, 남편 유학까지- 본의인지 아닌지 모르게 단절이 된 케이스에요.


그래도 생각해보니,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논문 하나를 제대로 배우면서 쓴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정말 만족스럽게 생각해요. 그때 논문 쓰면서 단련되었던 학술논문 쓰는 법이 직장에서도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각종 자료 모아 어필하고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하는 게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지만요. 지나치게 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모든 걸 다 쏟았던 마지막 학기였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 집안 사정이 있어서 흔히 4학기까지 마치고 수료생이 되어 논문을 쓰지 않고, 교수님 배려로 4학기에 바로 논문을 쓸 수 있었어요. 수업 스케줄 병행해가며, 교수님께 논문지도를 받았으니 과제에 치어가면서 분주했지만, 저로서는 너무 감사한 케이스였어요.


지나고 보니 보이네요. 사실 그때는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고, 다음 미팅이 잡힐 때까지 거의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자면서 버텼어요. 아주 젊었을 때니까 가능했겠죠? 정말 신기하게 뭔지 아세요? 열람실에서 달리다가, 외박이 안 되어서 부랴부랴 귀가했었는데. 다시 노트북을 켜고 집중하면서 한 시간 정도 지났나? 생각했는데요, 어느새 창문 밖으로 푸른 새벽빛이 가득한 거예요. 전 그때 정말 제가 꿈을 꾸나 했어요. 그 정도로 정신없이 썼나봐요. 근데 그 몰입에는, 곧 말하겠지만 큰 장단점이 있어요. 논문은 완성되겠지만, 몸에는 아주 많은 무리가 온다는 것을요, 하하. 그렇게 아침 해를 보면서 잠에 겨우 들고 세 시간 후에 좀비처럼 학교 수업에 들어갔답니다. 가능할 것 같냐고요? 좀비처럼 지냈던 건 제대로 기억나요. 대학원 열람실에는 밤낮없이 그런 사람들 많잖아요? 연구실 귀신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때는 폭주하는 기관차 같았어요. 열정 그대로 마구 달리고, 브레이크 밟는 법을 몰랐어요. 선배들이 아무리 논문을 위해 달릴지라도, 운동을 반드시 병행하면서 근력을 키우지 않으면 디스크가 터져서 너도 다른 선배들처럼 으레 반드시 응급차로 실려 갈 것이라는 경고를 날려도, 저는 그 말이 전혀 진지하게 와닿지 않았어요. 귓등으로 듣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도 휴학 없이 바로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기 때문에 너무 어렸었어요. 또 어리석었죠. 선배들은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란걸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젊을 때, 열정을 겸손하게 잘 써야 해요. 힘이 남아돈다고 그대로 질주해서도 안 돼요. 반드시 몸과 마음 모두 겸손해야 해요. 빠른 게 좋은 게 결코 아니에요. 느려도 옳은 방향으로, 건강하게 가는 게 장거리로 완주할 방법이에요.


무슨 말인지 지금은 잘 모르죠? 한마디로 몸을 최대한 사리면서 논문을 쓰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제 나이 때가 되어서, 몸이 그 시절 혹사당한 설움과 아픔을 그대로 돌려주더라고요. 지금부터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꼭 걸으면서, 몸을 글쓰기에 최적인 상태로 늘 관리하셔야 해요. 안되면 스트레칭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면서, 몸을 한 번씩 그윽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본격적으로 논문을 털어내는 절정에 이르러서 지치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이건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친 이야기가 아니니까, 논문을 어떻게 작성하는지보다 더 염두에 두어야 해요. 몸을 제일 먼저 아껴주고 나서, 논문을 생각하세요. 연수씨가 정말 논문을 제대로 알아가고 배워가고 싶다면, 이건 글쓰기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해요. 연수씨 몸과 뇌와 성실의 합작품이에요.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아요. 쓰다가 자료가 방대해지고, 내용을 더 넣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들 테고, 이런저런 욕심이 들 거예요. 혹은 그저 다 채우고 끝낸다는 일념으로 마구 달리게 될 거예요. 그때 제가 드린 말씀 꼭 기억하세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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