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휴학생의 라떼 시절, 지도교수님 회상하다가 시간이 감
본격적으로 처음 논문 쓰는 법을 얘기해볼게요. 음, 덧붙이자면 처음 논문을 가장 쉽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입문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어렵지 않게, 너도나도 할만한 방식으로 작성하도록 돕고 싶어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주세요. 필요 없는 이야기들은 과감히, 연수 씨 스스로 편집하세요.
저는 지도교수님을 정말 잘 만난 케이스예요. 정말 순수하게 교수님 지도 하나하나에 맞춰서 논문을 쓰기 시작하고, 결국 완성을 했어요. 처음 시작부터, 아직도 생각하면 몸 전체가 덜덜 떨려오는 중간 심사와 최종 심사를 거쳐서 논문 완본을 제출하고, 마침내 검은색 표지의 하드커버로 제작된 그 책을 받은 모든 과정을 말이에요. 전 그때 처음 잘 배운 논문작업으로, 나름대로 흥미를 획득했던 것 같아요. 논리적인 글을 써서, 학술적인 언어로 정립해 가는 데 재미를 느꼈어요. 글이라는 것은, 정말 정직하게, 쓰는 노동이거든요. 다른 것에는 재능이 없어 보이지만, 학교에서 글을 쓰고 제출하며 첨삭을 받는 과정에서 저는 희열을 맛보았어요. 그것이 무자비한 평가로 돌아와도, 모르는 것을 알게 되니까 무섭지 않고 오히려 지금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무엇보다 학술논문을 퇴고해가는 과정은 정말 매력 있었어요. 물론 제가 쓴 생생한 초고를, 매일 쳐다보면서 절망해야 했지만요. 퇴고의 과정도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적이 있어요. 한 단락, 한 단락을 따로따로 떼어서 마치 퍼즐처럼 더 논리적으로 설득될 수 있게 이리저리 갖다 붙여보시면서, 최악인 제 초고에서 약간의 가능성을 찾아보셨죠. ‘그때, 교수님의 표정은 꼭 이 퍼즐을 그럴듯하게 맞추고야 말겠어.’ 와 같은 순진무구한 게이머 같았어요. 마치 놀이처럼 보여주시던 단락 재배열의 모습!
아무튼 그때 교수님은, 함께 수업 듣는 학생들과 점심식사를 하시면서 무심코 말씀하셨어요. 제 논문을 봐주시면서 자연스럽게 들던 생각을 말씀하신 것 같아요. 이 친구는 논문을 쓰는 스킬에 대한 생리는 잘 이해해서 이미 준비가 되어있는데, 뇌 속에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라고요. 지도만 받다가, 그렇게 은연중에 나오는 평가를 듣는 건 처음이었는데, 저는 그저 그 말씀을 논문을 쓸 수 있는 기본기적 세팅은 되어있었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였어요. 제멋대로 해석이지만요. 그 해석으로 저는 자신감을 충전했으니까, 그거면 된 거죠. 뭐.
논문에 ‘논’자도 몰랐던 제자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음 스텝을 설명해주실 때는, 그 말씀 그대로 정말 녹음을 하고 싶었어요. 너무 모르는 상태라서, 절박해지더라고요. 그 매뉴얼을 담백한 언어로 전달해주셨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교수님의 일생에서 수없이 많은 연구논문을 쓰시면서 쌓인 귀한 팁을 많이 가르쳐 주셨던 거예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토대로 저도 한번 말해볼게요. 제가 그대로 따라 했기 때문에, 제 몸에 여전히 살아있는 기억이에요. 정말 논문이라는 한 권의 책에 대해서, 그 탄생을 전혀 모르던 저였으니까요. 무지에서 시작한 모방이에요.
아참, 논문을 쓰는데 또 하나 흥미가 가득했던 것은요. 제 지도교수님은 정말 우아했거든요. 세상의 모든 품위와 우아함 세포는 교수님에게 가득한 것 같았어요. 미인이시기도 했지만, 지성과 겸손을 겸비하신 분이었어요.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그 호칭이 너무나 합당했던 분이었어요. 그분을 닮고 싶었어요. 제 안의 그 열망이 기억나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죠. 옷차림부터 교수님의 언어, 행동 하나하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학문에 대한 철학까지 교수님만의 고요하고 견고한 아우라가 있었어요. 요즘 연수씨 세대 말로 하면, 정말 스타일이 너무나 힙했던 분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교수님은 정말 학자의 자세를 보여주셨어요. 천재의 모습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정말 성실하게 늘 연구의 자리에 계셨어요. 학문의 태도에서 고전적이고 보수적이셨지요. 정도(定道)의 길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신 것 같아요. 여하튼, 정말 멋진 분이세요. 저는 그 분께 배운 시간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중간에 남편의 유학으로 외국에 가느라, 떠나기 전날에 허겁지겁 작별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이 갑자기 떠올라요. 저를 가볍게 안아주시면서, 위트 있게 이런 말씀을 날리셨어요. “캐나다행이 너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모를 거야! 거기에서도 꼭 공부해야 해!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이들 모두 언어를 배울 때까지 눌러앉으렴! 난 네가 오늘 왠지 부럽구나! ‘당시에는 한국 분위기가 뭔가 어수선했거든요. 그러고는 이때까지 인사 한번을 제대로 못 드렸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서 말이에요.
캐나다에 가 있는 동안 오랜 기간 귀국하지 못했어요. 자연스럽게 학기 등록이 미뤄지니 어느 날 휴학 상태에서 제적을 예고하는 메일이 오더라고요. 그리고도 조금 시간이 지나서 귀국하면서 다시금 학교로 돌아가려 했지만, 셋째를 출산했어요. 지금도 어린 막내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어요. 연수씨랑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까, 논문을 쓰는 그 시절 제가 떠올라서 좋아요.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바닥을 보았고, 한계를 보면서 또 그것을 깨뜨리는 과정이었어요. 그리고 학자의 자세를 배웠어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학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 생애 가장 좋은 멘토링을 받던 시절이었죠.
문득 제가 옆길로 많이 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논문 쓰는 법을 아주, 제대로 배우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니까요. 연수씨도 만나게 되면 아마 정말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