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쓰는 논문, 쉽게 시작하기_언니가 도와줄께요
“논문을 한 편 처음 쓰는 것은 상당히 긴 이야기라서, 지금 아무리 대충 이야기한다고 해도, 다 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시간 되는대로 한번 들어봐 줘요. 아마도 모든 것을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몇 번 더 있으니까, 오늘은 스케치하는 느낌으로, 개괄적인 이야기만 해볼게요!
논문을 처음 쓰는 사람, 아니 일단 논문을 써내야 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지만, 그 논문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말 도무지 모르겠다 싶은 사람이라면요. 이렇게 이해하면 좋아요.
일단 논문이라는 것도 결국 소통을 위한 여러 언어 수단 중에 하나에요. 누군가가, 상대에게 뭔가 자기의 뜻을 전하고자 할 때 말이에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주로 어떻게 그것을 전달하나요? 다양한 수단이 생각날 수 있어요. 가령, 누군가는 한국어로, 누군가는 영어로, 누군가는 중국어로 타인과 말을 해요. 혹은, 누군가는 수어로 말을 해요. 또 미술작품으로, 춤으로, 오페라로, 노래로 전달하기도 해요. 어떤 이들은 고소장을 접수하거나, 판결문으로 작성하여 전하기도 하죠. 이 모든 것에는 다 ‘메시지’가 반드시 담겨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논문으로 소통하고 싶어 해요. 학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의 히든카드인 논문으로 말하는 거예요. 학자는 논문을 통해 자신을 말해요. 연수 씨는 지금 작은 학자 새내기에요. 그렇죠? 연수씨는 그렇기 때문에, 연수씨 자신이 가진 자원 중에, 논문을 써서 그것을 통해 학자들 세계에서 소통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어, 용어를 써서 말해야겠죠. 소위 그 바닥에서 통하는 룰을 사용하는 거예요. 사용자를 위해, 연수씨가 가장 친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꼭 피력하고 싶은 의지와 열정이 있으면 더 좋다는거에요. ‘어떤 주제에 대해서 난 이걸 반드시 말하고 싶어, 내가 이걸 말하지 않으면, 내가 이걸 알리지 않으면 한평생 똥을 덜 닦은 것처럼 찝찝할 것 같아! ‘이런 거요. 아, 죄송해요, 예가 적절하진 않네요. 여하튼 그렇게 연수씨를 계속 건드리는 어떤 이슈가 있다면,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한 자발적인 간절함이 생긴다면? 솔직히 50퍼센트는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없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대부분이 그런 순수한 간절함이 없어요. 그건 주로 프로들에게 있죠. 일단 학생들은 졸업해야 하니까 쓰게 되죠. 어떤 간절함이든, 다 좋아요. 논문은 써보면 일단 좋은 거예요. 졸업 요건이라서, 그것 때문에 절박해져서 쓰더라도, 일단 저는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중요한 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라는 물음에 대해서, ‘아, 나는 이것에 관심이 있는데, 관심이 많다 보니 이 분야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게 해결되면 좋을 것 같은데. 대안을 찾고 싶어요. 혹은, 자신이 이미 생각해놓은 대안이 있다면 그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하면서 약 세~네 개 문장으로라도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싶은 내용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거기서부터 일단 할 말이 있는 것이에요. 그럼, 일단 시작된 것이죠.
이때부터는 자기 나름의 아이디어 주머니를 달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주제에 대한 모든 것을 주워서 담는 거예요.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슬렁슬렁 산책하는 발걸음처럼, 그렇게 천천히 담아보세요. 신문이나, 잡지나, 책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그 주제에 관련된 글을 읽고 모아보세요. 그러면, 세상에서는 내가 지금 흥미를 보이는 주제가 타인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지금 그 주제의 트렌드는 뭔지가 대략 보여요. 관심이 가는 모든 글을 일단 읽고 모으세요. 어떻게 보면 넓은 의미에서 자료 수집이 시작된 거예요. 이때는 조급하게 마구 모아놓지만 말고, 때마다 대충 읽더라도 인상 깊은 구절은 형광펜으로 표시해놓는 게 좋아요. 나중에 읽지 못할 만큼, 그래서 자료의 가치를 채 따질 수도 없을 만큼 산더미처럼 쌓여 버리면, 그 양에 압도되어서 당황스러울 수가 있거든요. 제 경험이긴 하지만요. 조금씩이라도, 자료를 가볍게라도 관리한다는 느낌을 흉내 내보세요.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 나중에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다시 보거나 인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놓으면, 산만해지지 않고 좋답니다. 어떤 건지 감이 오시죠?
예를 들어, 해녀가 되려는 사람이, 처음 해녀 수업을 받을 때부터 숨을 가득 참고 들어가서 집중력 있게 전복을 캐올 수 없어요. 아니, 아직 정말 초보의 단계라고 하면요, 지금은 바닷속을 산소공급 장치에, 의지에서 돌아다니면서, 뭐가 있나 천천히 훑어보는 단계에요. 깊은 바다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 얕은 바다에서 말이에요. ‘여기에 좋은 게 많네, 이거는 채집하고 싶다. 그렇지만 지금은 좀 참아야겠어. 일단 위치는 알아두자, 그나저나 너무 아름다운걸. 매력적인 풍경이 곳곳에 있어. 이걸 언제 다 보지? 내일 또 들어와서 봐야겠어! 저기는 좀 별것 없네, 위험할 수도 있겠어.’ 이런 읊조림으로 말이에요. 정말 대략적인 스케치 단계이지만요.
이렇게 전체를 보면서, 조금씩 살펴 가는 거예요. 스타일마다 다를 수는 있어요. 미로처럼, 한 번에 처음부터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들어가다가 또 길이 막힌 것 같을 때는 다른 통로를 모색할 수도 있고, 이렇게 전체를 조망하면서 점차 좁혀갈 수도 있어요. 전자의 경우는, 시간을 보장하지 못해요. 그것은 탐험가에게 어울리죠. 현실적인 대학원생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추천해요. 하하. 왜냐하면, 전에 어떤 교수님은 논문 한 권을 쓰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평균적으로 사과 상자 한 박스에 가득 들어가는 논문의 양은 기본적으로 읽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어차피 나중에 그렇게 많은 양을 읽어야 할 것이라면, 지금 이 단계에서는 좀 크게 멀리 봐야 해요. 그렇게 훑어보면서 이런저런 글을 틈나는 대로 많이 읽다 보면요, 양이 누적된 나머지 어느 순간 질적인 변화가 오는 때가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사고력이 깊어지면서 용어의 사용도 금세 달라져요. 그만큼 한동안 그 세계에서 머무르며 헤엄쳤다는 방증이에요.
제 생각에는 이때부터는 논문 포털을 뒤지기 시작해도 좋아요. 내 생각과 비슷한 연구자가 있는지, 이 주제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런 주제를 쓴 사람이 있긴 할지 등등에 관해서 그저 궁금한 자세로 이것저것 키워드를 넣어서 상위에 뜨는 논문들을 살펴보세요. 하나하나 다 읽지 말고, 개요만 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됩니다.
만일, 그 주제에 대한 마땅한 자료기 없으면 그건 진짜 좋은 소식이거나 나쁜 소식이에요. 논문의 희소성에서 일단 가치가 있으니까 금광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사회적으로 논할 가치가 전혀 없어서 아무도 안 쓴 것일 수도 있어요.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연구가 논문으로서의 가치가 있겠죠? 각 학술 분야에서 좋은 길을 모색하고자, 다들 연구하는 것이니까요. 이 포털에서도 헤엄치다가 자칫 논문 양이 너무나 방대해서 길을 잃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 처음에는 이 분야의 권위자들 논문을 먼저 찾아봐요, 각 분야 전문가의 글말이죠. 교수님들의 글이요. 그렇게 박사학위 순으로 찾아서 유용한 자료를 찾아보세요.
석사학위 논문은 추천하지 않아요. 연수씨도 알잖아요. 졸업하려고 쓰는 급박한 논문이라는 것을요, 대체로 나중에 다른 논문에서 다시 재인용될 신뢰도가 낮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논문 포털사이트에서 한동안 칩거하면서, 어느 정도의 읽는 양과 자료를 기록하는 것이 조금씩 적응된 상황이라면, 대충 감이 잡혀요. ‘내가 말하려고 하는 이 주제에 대한 생태계가 이렇게 형성되어 있구나.’ 하면서요. 이때는 큰 파일 하나를 구비해놓고, 한 다섯 장 정도 여유 종이를 넣어놓고 그때그때, 브레인스토밍을 해보세요. 혼자 가능하냐고요? 대학원 동료들과 식사하면서, 아무렇게나 주제를 던져보세요.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선배들에게는 연구자로서 단련된 경력이 있어서, 술술 나오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답니다. 그런 것을 감사하게 넙죽넙죽 받아두면 돼요. 머릿속에, 메모장에 잘 저장해두고서 언젠가 써먹으면 돼요. 아, 그리고 논문은 몇 번이고 주제가 엎어질 수 있기 때문에요, 자의로든, 타의로든 흔한 일인데, 너무 겁먹지는 말고요. 보험처럼 저장해둔 다른 주제도 있으면 좋아요.
자, 여기서 멈추고 한 번 더 생각해요. ‘내가 처음에 뭘 말하려고 했더라? 내가 뭘 쓰고 싶어 했더라?’ 본인에게 질문해보는 거예요. 제 경우에는요, 전 청소년기에 아토피로 고생했어요. 그 고생이라고 하자면, 가려움으로 인해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학업에도 지장이 오고, 스트레스가 오는 등 정신적인 영역까지 넓게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의학적 처방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가족과 함께 모색해가면서 결국 가족들의 지지로 인해 회복에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아토피 환자에게, 연고와 같은 의학적 처방 외에도 정신 건강과 관련된 지원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을 학술논문으로 말하려면, 과연 어떻게 말하느냐의 고민이죠.
예를 들었지만, 이렇게 생각이 잠시 정리되었다면요. 여기서 그동안 읽은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잠시 덮어두고, 좀 옆으로 제쳐두는 거예요. 기억도 잘 안 나는 것들을 떠올리려고 애쓸 필요없어요. 이미 그즈음 되면 연수씨는, 그 나름의 학술 무드라고 해야 할까, 어떤 분위기에 이미 스며들어있거든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문장으로 표현해서 키워드를 나름 골라보는 거예요.
저의 경우라면, ‘청소년기, 아토피, 고생, 삶의 질, 정신적 영역, 가족, 모색, 회복, 도움 ’ 이런 식으로 뽑아보는 거죠. 그러면 조금씩 영역이 좁혀지면서, 대상이 정해지고, 기존에 연수씨가 한 번이라도 훑은 자료에서 실제로 유의미한 자료가 선별되기 시작해요. 전체 숲을 보고 나서, 조금씩 한 그루의 나무로 옮겨오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사실 따분한 말이지만, 이것이 제가 배운 학자의 자세 같아요. 처음 초보로 들여놓는 가장 기본적이고 평생을 놓고도 가장 좋은 자세 말이에요. 처음에 제대로 배운다는 느낌으로요. 읽고, 생각하고, 적고, 모으고, 또 생각하고, 끝내 쓰는 것. 이 연습을 하는 것이에요.
읽는 근육이 붙어야, 논문을 실제로 쓰기 시작할 때 방대한 자료들을 빠르게, 핵심적인 것들을 추려서 읽고 선별할 수 있을 거예요. 혹시나 주제를 위한 대상이 바뀌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 처음부터 숲을 보는 과정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건 진짜 나중 일이고요, 아주 지엽적인 문제에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