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논문 초고를 완성하는 태도에 관하여
아마 이 시기라면 연수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연구를 통해 밝히겠다고 하는 프로포절을 제출하라는 학과 공문이 뜰 거예요. 이런 생각들을 이제 조직화해서 계획서로 내는 것이에요. 제안서지요. 교수님들께 승인받는 거예요. 보통 이걸 승인해주시면, 그 주제로 논문이 쭉 가는 것이고요. 여기서 교수님에 따라 자기 분야에 따라 적절치 않은 주제라서 지도가 어렵거나, 시대적으로 안 맞거나 이상적이다 싶으면 엎어지게 되는 거예요. 보통 프로포절도 교수님께 먼저 보여드리고 형식적인 승인 절차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대학원마다 달라요.
만일 프로포절 승인이 안 나면요, 그걸 또 그동안의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해요. 그동안 읽은 게 많잖아요, 여러 다른 주제도 충분히 고려해봤을 거예요. 그럼, 그동안 제가 이런 걸 읽어봤는데요 하고 교수님에게 어필해볼 수 있어요. 교수님도. ‘이 친구가 놀다가 휙 써서 막 제출한 것은 아니구나. 태도는 좋은데, 주제에서 약간 과녁을 벗어난 것뿐이구나‘라는 것을 아실 수도 있어요. 사실 바빠서 안보실 수도 있지만, 여하튼 자기 자신에게 보약이 됩니다. 이미 연수씨는 읽는 근육이 붙어버렸고, 알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을 맛본 거예요. 메타인지가 폭발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하.
여기부터는 이제, 한 일주일 정도 스스로, 나름의 기간을 촘촘하게 잡고요, 그때부터 목차부터, 서론, 본론, 결론까지 스물다섯 장이라고 하면, 그걸 기준으로 무조건 써낸다는 다짐으로 달립니다. 이때는요, 음, 막 쓰는 거예요. 정말 우리 연수씨 쓰고 싶은 말 일단 다 넣는다고 생각하고 쓰세요. 다만, 처음에, 나중에 바뀌겠지만 목차를 잡고 그 목차에 따라서 해당 내용을 다 넣는다고 생각하고 쓰는 겁니다. 이 과정을 조금 늘어지게 잡으면, 지쳐버릴 수가 있어서 일단 장수만 생각하시고 최대한 다 넣어보세요. 그렇게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서론, 본론, 결론의 논리로 틀 안에 집어넣어 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문장이 어떻거나, 논리가 안 맞거나 전혀 상관없어요. 대략적인 목차에 따라 내용만 넣는 겁니다. 이렇게 한번 쭉 써서 스물다섯 장을 채우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 나중에 보면,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뒤죽박죽인데요. 그때부터는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셔도 돼요. 쓰레기 같다고 절망하지 않아도 돼요. 그걸 베이스로 원석이 보석이 되거든요. 제 말을 믿고 한번 써보세요. 저도 교수님께 배운 방법이에요. 교수님께서 저에게 일주일도 아닌 나흘 정도를 주셨던 것 같아요. 그 안에 어떻게든 장수를 채워오라고 하셨어요. 쓰고자 했던 것에 대한 모든 자료를 담아오라고 하셨어요. 성형은 나중 작업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게 한번 처음부터 끝장까지를 써보니까요, 사람 심리가 이상하게, 그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자료인지, 정보가 맞는 것인지, 자료의 가치를 따지면서 수정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사실 그 기간에 제대로 쓴 것이 없음에도, 다시 쓴다는 생각이 아니라 처음 것을 수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쭉 한번 쓰는 동안에 자신도 정리가 됩니다.
지금은 일단 마감 시간에 쫓겨서 마구 쓰고 있지만, ‘퇴고 때는 이런 자료를 더 보충해야겠다, 아니면, 이 문장은 아닌데 다듬어야겠다, 이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자료는 일단 넣지만, 나중에 버려지겠군, 생각보다 이 자료는 내가 생각해도 잘 찾았네!’ 하면서요. 실제로 그 글 같지도 않은 초고를 들고 교수님께 간 날에는, 눈도 마주치지를 못했어요. 교수님은 가차 없이 엑스를 그으시다가도, 제가 찾아 넣은 한 자료는 굉장히 좋다고 별표를 치시기도 했고, 어떤 단락은 실제 옮겨서 다른 곳에 붙이시기도 하면서 퇴고하는 과정을 몸소 보여주셨어요. 그렇게 계속 쓰면서, 고치면서, 첨언하거나, 삭제하면서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바, 논문을 통해 밝히려는 견해를 아주 설득력 있게, 견고한 성으로 쌓아 가는 거예요. 즉, 그것을 서론부터 본론에 이르기까지 쭉 쌓아가야 하는데요.
연수씨, 일단 오늘은 이 부분까지만 대충 이야기하고 마무리해야겠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는 과정에 돌입했으니까 다음 만남 때 자세하게 알려줄게요. 지금은 아주 간단하게만 말할 수 있겠어요. 일단 서론에서는요, 연수씨가 자신의 주제가 왜 매력 있는지, 왜 이것을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어필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아요. 어필하는 방법은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 주제에 대한 사회적 위치가 어떠한지, 얼마나 이슈인지 혹은 사회적으로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시대 풍토를 말해주세요. 여기에 여러 통계자료나, 연도별 기사 같은 것이 들어가면 그것이 학술논문으로서의 옷을 입은 시작이에요. 무엇이든 연수씨의 논리는, 직접적인 증거로 제시되어야 해요. 공신력 있는 정보로 제시되어야만 연수씨의 논문 속 문장이 힘을 갖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게 아니라, 그저 견해만 써놓는다면, 그것은 논문의 언어로 인정되지 못해요.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서 이미 나온 논문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제시하고, 그런데도 연수씨 자신이 이 주제를 연구하는 아주 강한 이유가 나오면 좋아요. 예컨대, 기존의 논문들과 ‘대상’이 다르다거나, 기존 연구가 다루지 못한 미흡한 부분을 잡아서 그것을 보강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면 좋아요. 또는 그 주제가 현재 매우 중요한데, 이것에 대해 기존의 연구가 매우 미흡하니 연구의 필요성이 크다, 등이 연구하게 된 이유,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에요.
이러한 배경을 읽는 독자의 관점에서, ‘정말, 이 연구는 필요하네? 사회적으로도 아주 도움이 되는 연구 같아. 연구의 대상에게도 그렇고 말이야.’ 등등 이런 생각이 든다면 제대로 어필한 것이죠. 이렇게 연구자가 문을 열어주는 거예요. 자기가 말하려는 세계로 친절하게 안내하는 거예요. 학술논문에서의 ‘친절’은 검증된 연구자료를 아주 견고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제공하는 것이죠. 서론은 이쯤으로만 말하고, 본론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방법론을 사용해요. 사회 과학논문이라면 가설을 설정하고 그것을 여러 가지 유의미한 수단을 동원해서 입증하는 과정을 말해요. 연구방법론에는 아주 다양하고 전문적인 방식이 있어요. 설문지를 돌리고, 질적연구를 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고요. 여러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을 이리저리 골라보는 것도 연구자의 안목이며, 실력이에요.
그럼,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들이 있을 텐데요, 결론에서, 막상 나온 결과가 자신이 예상한 가설을 그대로 입증하면 좋겠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이 결과가 무의미할까요? 반가운 소식일지 모르지만, 연구의 세계에서 무의미한 것은 없어요. 작은 점이라도 다른 연구에 그 논문은 선례를 남겨요. 그 결과 자체로, 의미가 있는 또 하나의 선례가 된다는 것이죠. 연구물을 존중하게 되지요. ‘아 이런 가설로는 또 다른 더 정교한 입증과정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 그것을 밝히는 결과물이 될 수도 있고요. 예외적인 결과로써 의미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어요.
결국에 논문을 통해 학자들이 밝히려고 하는 것은, 사회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물들로 자신의 분야에서 유익한 도움을 주겠다는 작은 의지가 아닐까요. 이 과정 또한 지난 수많은 학자의 연구 결과 위에서 쌓이는 것이니 자만할 필요도 없고요.
오늘은 아주 대략적인 과정들을 한번 떠올려보면서 말씀드린 것이라, 연수씨가 어떻게 들었을지 모르겠어요. 조금 정신이 없었죠? 그래도 잘 들어준 연수씨의 배려가 고마워요. 이제 조만간 이 세상에 나올, 연수씨의 논문을 통해서 전 연수씨의 하고 싶은 말을, 꼭 듣고 싶어요.
연수씨의 고민과 주제에 대한 관점이 궁금해요. 그리고 연수씨의 논문이 기여하게 될 세상이 궁금하고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하게, 또 오늘보다 더 친절하고 쉽게 이야기해줄게요. 우리 같이 논문 잘 써봐요. 다음번에 만날 때까지의 열심히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시간도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