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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Jan 03. 2019

당신은, 타인을 향한 존재

타인과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시선 (2) 레비나스

앞서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사유를 살폈다.

이번에는 서양 주체론적 사상에 정면으로 맞선 철학자, 레비나스다.


 레비나스는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윤리적 책임을 주장한다.

특히나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은 사회적 죽음을 ‘직접 목격’하며 형성된 이론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레비나스는 2차 대전 참전 포로였으며, 아우슈비츠에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었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이론은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레비나스는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도전한다. 전체주의가 벌인 야만스러운 결과들, 서양 철학의 바탕이 그 원인으로 지목하며 지난 세기의 주체론적 물음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몸짓을 보였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레비나스는 인간의 주체성을 본인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닌, 타자를 위한 주체성에서 찾고 있다. 나와 무관해 보이는 타인의 불행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통시성과 타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그는 타자와의 만남이 자유에 의무를 부과한다고 설명한다.


 타자에 대해 갖는 윤리적 책무성을 고려한 것인데, 도덕의 기원은 자유의 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로부터 오는 타자 중심성, 타자로부터 오는 규범이라고 본 것이다.      


 우선 레비나스에게 죽음이란 ‘밖으로부터 오는 폭력과의 만남’이다. 죽음이 인간의 자유를 제거하기에 그렇다. 그에게 죽음은 낯선 존재이며, 하이데거와 달리 죽음을 가능성으로조차 보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죽음을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고려했다면, 레비나스는 ‘모든 가능성의 불가능성’으로 바라본다. 말 그대로 어떤 가능한 일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사건인 셈이다. 하이데거가 미래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의 주도권을 가진 채 불안을 장악하려 했다면, 레비나스는 죽음이라는 사건은 주체의 주도권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문제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죽음의 불안을 극복할 가능성을 찾는다. 타인을 선한 마음으로 보살필 때, 내가 타인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죽음의 불안 역시 사라진다. 타인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자기 세계 안에 머무르는 자기중심적인 모습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보았다. 죽음을 향한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존재가 됨으로써 죽음의 무의미나 비극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타자를 진정으로 환대하는 가운데
내면의 닫힌 세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초월적이고 도덕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다.      


 레비나스에게 타인이란 죽음의 불안마저도 뛰어넘는 열쇠를 가진 존재다. 그에게 타인은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초월성을 경험케 하는 존재다. 그는 도덕성과 자유가 함께 시작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과도한 자유에 대한 죄책감에서 도덕성의 발생을 주장했다.

한 마디로 타인과의 만남은 자유에 의무를 부과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레비나스가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은 어떠한가?


 앞서 사르트르가 ‘시선’을 통해 타인이 자아에게 현현했다면,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설명한다. 얼굴은 밖을 향해 열려있는 몸이다. 타인의 얼굴은 상처 받을 가능성, 무력함을 내비친다. 그것은 외부의 힘에 저항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우리에게 동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것은 정의로워져야 한다는 요청이다.


 죽이지 말라.


 타자의 얼굴로부터 오는 이 요청은 그 어떠한 강자의 힘보다 더 강하게 자아의 자유를 문제시한다. 타인의 얼굴은 나의 자발적인 존재 확립과 무한한 자기 보존의 욕구에 도덕적 한계를 설정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레비나스가 말하는 문제의 해결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받아들이고 환대함으로써 윤리적 주체로서 우리가 당당히 설 수 있음을 주장한다.     



 나는 레비나스의 사유에 동의한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다. 타인에게 벌어진 일에 함께 하며, 도덕적 주체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여담이지만, 글을 시작하며 밝혔듯 레비나스는 나치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 그가 존경하던 하이데거가 나치의 편에 섰을 때 절망을 느낀 레비나스. 그러나 절망에 그치지 않고 서양 사회의 근본적인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해, 지독하게 사유한 이론으로 하이데거와 맞섰다.


 그 절망 속에서 승화시킨 이론이기에,

나는 그의 이론이 더 아프고, 따스하고, 진실함과 절실함이 묻어난다.      


     

참고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길 바라며, 적어둔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시간과 타자(Le temps et l'autre)』, 강영안 옮김, 문예출판사, 1999.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윤리와 무한(필립 네모와의 대화 Ethique et Infini)』, 양명수 옮김, 다산글방, 2000.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 『신, 죽음, 그리고 시간(Dieu, la Mort et le Temps)』, 김도형 외 옮김, 그린비, 2013.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Autrement qu'etre ou au-dela de l'essence)』, 김연숙 외, 인간사랑, 2010.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문학과지성사, 2005.
김연숙, 『레비나스 타자윤리학』, 인간사랑,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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