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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Jan 04. 2019

무명천 할머니를 찾아서

제주 다크 투어리즘 기록 (2)  무명천 할머니 삶터



 내가 무명천 할머니 삶터를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18년 4월에 있었던 한 전시에서부터다.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기억하기 위한 공동 네트워크 전시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였다. 그중에서 양미경 작가의 <무명천 할머니>라는 작품이 마음을 흔들었다.     


 무명천 할머니의 본명은 진아영 할머니로, 제주 4.3 사건 당시 아래턱에 총상을 입었다. 때문에 한평생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통 속에서 살았다. 말을 할 수도,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기에 늘 영양실조 등에 시달려야 했다.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의 근처까지 갔던 그녀가 인내해야 했던 고되고 긴 삶의 시간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상실은 인간 존엄에 관한 것이다.      



 양미경 작가는 제주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무명천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에서 전시 기획을 담당했다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는 한평생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던 할머니의 삶을 바느질이라는 고행을 통해서 전한다. 우리는 고행하는 작가의 손끝을 통해, 한 땀 한 땀 놓인 실의 흔적을 통해 무명천 할머니의 삶에 다가간다. 


한 마디로 바느질은 할머니의 삶에 관한 은유다.      

 

알고 보니 이는 제주도 무명천 할머니 삶터에 걸개그림으로도 있는 작품이었고, 

제주도까지 찾아가게 된 것이다.      


 직접 찾은 제주도 한림읍 월령리의 무명천 할머니 삶터는 무척 조용한 길가에 있었다.

골목으로는 벽화가 가득했다. 조용한 바람만이 스쳐 지나가고, 선인장이 유명하다는 말대로 마을 돌담마다 선인장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무명천 할머니의 삶을 기록한 기사의 일부분이나마 여기에 적어본다.      

홍의석 기자, 기획 <4.3의 기억, 현장을 가다 - (16) 총에 턱을 맞은 할머니... 악몽이 그녀를 지배했다.>, 제주신보, 2018.8.12.

“… 진아영 할머니는 평생 정체 모를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에 시달렸던 할머니는 모든 문마다 자물쇠를 달았고 문을 잠가야만 집 밖에 나설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남 앞에서 음식 먹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는 음식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진아영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톳을 캐다 팔고 이웃들의 농사를 도우며 약값을 벌고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제대로 씹을 수 없던 진아영 할머니의 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위장병과 영양실조로 평생 고통받았다. 결혼도 못 하고, 자식도 갖지 못한 진아영 할머니는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2004년 9월,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삶터는 몇 년간 방치됐다. 할머니의 삶을 잊지 않고 기리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모여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만들어 한림읍 월령리 380번지에 위치한 할머니의 삶터를 정비했다.”     



        ‘무명천 할머니 삶터’라는 팻말을 달고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2004년 돌아가신 후, 2008년에 발족되면서부터다. ‘야단스럽지 않게 추모하고 싶다’는 안내글이 눈에 띈다. 전시관 안은 생전 무명천 할머니가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다. 벽면에는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두 칸 짜리의 작은 삶터 내부는 할머니의 물건들이 보존되어 있다.


 나는 이 곳에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애도의 모습을 확인하지 않았나 싶다. 


데리다는 타자와의 거리를 존중하며 함부로 내사하지 않는, ‘불가능한 애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데리다의 애도 태도와 관련해 자세한 설명은 앞서 발행한 글 중 ‘아니요, 애도는 기억의 여정이죠.’ 참고)


 이 곳은 타인의 삶을, 타인의 기억을 함부로 내면화하지 않고 무한한 거리를 존중하는 모습들이 엿보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는 기억하기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불가능한 애도’의 모습들이 충돌하고, 동시에 조화롭게 얽혀있는 것이다.




 삶터 앞의 벽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전한다. 턱을 잃기 전에는 물질을 나갈 정도로 건강했다던 무명천 할머니의 그 언젠가 과거의 나날은 이제는 그녀가 없는 현재 이자 미래의 삶터 전시관 앞에 그림으로 펼쳐져 있다. 






 월령리의 무명천 할머니 길은 그 자체로 책임을 느끼게 하는 무거운 애도다.


 방문객들은 이 길 위에서 참혹한 과거와, 은폐된 오늘과, 결국 그들이 없는 내일에 대한 참배의 기회를 가진다.


 화사한 벽화로 탁 트인 길과 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너무나 소박하고 자그마한 삶터,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자리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녀의 고통을 나누지 못한 채, 그녀의 모든 것을 존중하는 채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감히 재현될 수 없고, 상상될 수 없는 고통은 그곳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전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게 그녀와의 무한한 거리를 존중하면서도 우리는 그녀에 관한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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