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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Jan 11. 2019

아직 기억한다면, 광장에서 만나요

예술 속 애도 읽기 (2) 박화연 작가,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앞의 작품에 이어서 이번에 고찰할 작품은 2018 광주 비엔날레에서 전시된 박화연 작가의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아카이브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분석을 진행했는데, 어쩐지 이 작업 역시 마음에 남아 있다. 나보다 조금 나이 있는(새해가 되어 나이에 집착한다), 내 또래인 작가여서 그랬는지도.. 언젠가 한 번쯤 작가를 만나볼 일이 있으면 좋겠다.




 사회적 죽음의 특징 중 하나는 그를 둘러싼 많은 기억과 관점이 있고, 이 기억들은 훗날 사회적 결정과 나아갈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존과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기억을 단순히 아카이브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은 진정한 의미가 있을까? 기억이 기억될 수 없다면, 죽은 기억에 불과하다. 기억은 기억되어질 때, 환기될 때 의미가 있다.


 박화연 작가는 2018년 ‘광주 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전시에서 5.18 관련 기억에 관한 의미 있는 작업들을 진행했다. 박화연 작가는 전남 담양 출신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1990년생의 젊은 작가다.

 주목할 점은 작가는 1980년에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작가가 만나고 재구성한 5.18의 기억은 후대에 전달된 기억이며, 살아남은 기억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작가가 이 전시에서 선보인 세 가지 작품은 5.18 유가족인 김정복 할머니의 삶을 아카이브를 통해 재구성한 <당신의 할머니 김정복>, 사람들의 발걸음을 촬영하며 방향과 속도, 역사성을 부여하고 5.18의 연계성을 끌어낸 3분가량의 영상작품인 <실마리를 찾아서>, 그리고 혼합 설치 아카이브 작업인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박화연 작가, <당신의 할머니 김정복>. 직접 촬영했다.

  

   그중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억의 환기와 재구성의 주목할 만한 아카이브 작업의 사례다. 옛 전남도청에 있는 분수대를 형상화해 설치했다. 분수대 조형물에 5.18과 관련한 증언들을 모아 관객들이 읽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전시 공간 안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의 사운드가 재생된다.


이 작품이 바로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어쩐지 조금은 낯설고 조악하게 느껴진다.


 분수대인데 동적인 무언가는 없기 때문이다. 분수대에는 증언의 글귀들이 물 대신 세로로 흘러 적혀 있고, 분수대의 구조물 안에는 물이 들어차야 할 자리에 증언이 담긴 종이들이 가득 담겨 있다. 분명 그들의 기억은 고여 있는데, 흐르는 분수로 형상화했다는 역설이 느껴진다. 가득 고여 있는 종이들은, 둥근 분수의 형태를 따라 빙 둘러싸여 마치 흐르는 물결 같아 보인다. 관람객들은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하나의 물결이 된, 토막이 된 기억을 집어 들게 된다. 파편화된 기억들의 조각은 그곳에 모여 있음으로 인해서 동력을 얻는다. 무조건적인 저장은 다른 의미로 매장과 다를 바 없다. 그 기억은 살아 있는 자들, 남겨진 자들에게 가 닿을 때 기억으로서 의미가 있다. 특히나 개인적 기억의 조각은 혼자 있을 때에는 조각에 불과하지만, 분수가 된 기억처럼 모여서 집단 기억을 이루기도 한다.



 이 분수대가 옛 전남 도청의 분수대임을 상기해볼 때, 관객은 증언을 따라 그곳 5.18 당시의 광장에 서 있게 되고, 그 옛 광장이 지닌 경험으로 초대된다. 건져 올리는 기억마다 관람객에게 역사적 장소가 된 그곳으로 이끈다. ‘광장에서 만나는 일은 역사적이며 동시대적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이 만남이 미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다.


 이미 시간이 지난 타자의 기억은 그렇게 관람객의 기억이 된다. 그 시절을 겪지 못하고, 그 사람을 알지 못하지만 기억의 조각들은 공유된다. 많은 관람객들의 손이 당시의 증언을 건져 올리느라 그 분수대에 담가졌다가 빠진다.

그리하여 그 분수는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현재로부터 과거로 분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증언의 종이가 읽혔다 내려지고, 뒤섞이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은 기억의 분수에 손을 담그고 물결을 만든 이들이 된다. 이를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에 대한 희망을 이 작품의 감상 과정에서 본다. 주디스 허먼은 저서 <트라우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 가능성을 주장했다. 기억과 증언하는 일을 시작으로 역사적 상처를 드러내, 다른 타인과 교류하며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치유는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제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아는 자들이 되는 것이고, 그 광장은 당신의 것에서 우리의 광장이 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미래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기억은 그곳에 멈춰져 있고, 이것이 데리다가 주장한 애도에 반하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데리다는 타자의 기억을 내면화하는 일에 대해 경계를 품었지만, 이는 미처 내면화되지 못한 기억들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하여 그 광장의 분수는 과거에도 오늘에도, 그리고 미래에서도 흐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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