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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Sep 11. 2018

언니, 나 제주도 왔는데 뭘 해야 하지?

제주도 미술관 나들이(1)-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는 핫하다.

휴양으로도, 맛집으로도, 때로는 빵지순례를 위해서도 간단다.


"언니, 나 제주도 왔는데 뭘 해야 하지?"

 맛난 음식은 다 먹겠다며 제주도로 놀러 간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비가 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술관에 가보라하니, 그건 언니 취향이란다. 

모르는 소리, 제주도에서는 예술 작품 구경도 끝내준다.


동생이 제주도에서 돌아오던 날, 

바통 터치하듯 나 역시 제주도로 떠나 어제 집으로 돌아왔다.

미술관 투어를 하러 진작부터 정해져 있던 일정이었다.

아침 비행기라 숙박을 하기는 했으나, 당일치기 여행이나 다름없는 나들이였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제주도립미술관. 

탁 트인 하늘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어떤 작품들이 이렇게 멋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앞마당에 펼쳐진 조형들과 외관부터 제주의 느낌이 물씬 났는데, 특히 건물 앞의 드넓은 물가에 놓인 제주 특유의 돌들이 눈에 띄었다. 제주의 자연을 담도록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는데, 사진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감을 준다.


 여담이지만, 제주도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보니 가슴 깊이 파란 하늘을 담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푸른 제주, 청정의 제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닌지... 일조권이니 조망권이니 하는 것들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이 날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한국 근현대미술 걸작전>과 <강광, 나는 고향으로 간다>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우선 한국 근현대미술 걸작전에서는 우리가 자주 접해왔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걸작전인데, 반갑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작품도 있었다니.' 싶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알고 보니 전시의 부제에 붙인 '100년의 여정, 가나아트 컬렉션'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제주 도립미술관이 제공하는 전시 소개를 잠시 살펴보면,                                  

작품 수집이 개인의 호사 취미 행위를 넘어 역사와 예술에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는 위대한 문화 행위로 불릴 때가 있다. 바로 개인의 사적 전유물을 공동체의 공적 자산으로 전환시킬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 걸작전>은 컬렉터 이호재 회장이 가나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소장품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시킨 데서 나온 소중한 문화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트컬렉터로서의 꿈도 키우고 있던 터라 많은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도 훌륭한 안목의 컬렉터가 되어 멋진 컬렉션을 갖추고,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다.



작품의 감동은 실제로 접해야 느껴진다. 

특히 이당 김은호의 <승무>는 그 섬세한 표현에 압도되는 작품이었다. 옷감의 질감이 느껴지는 묘사와 고깔 안에 감추어진 머리까지, 그리고 사진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눈빛도 살아있었다.

 조지훈 시인의 <승무>라는 시가 절로 떠올랐는데, 시의 앞부분에서 묘사하던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시의 앞부분을 잠시 적어본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 <승무> 중 일부




백남준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지키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의 TV들이 수명을 다해 존폐 기로에 섰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 터라, 한동안 이 작품 앞에서 서성였다. 



전시장 곳곳에는 작가들의 말이 붙여있었다.

읽어가며 감상하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다.

김환기의 작품을 보니, 대학원 수업 시간 때 달항아리를 오마주한 작품들에 대해 발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달항아리의 매력에 푹 빠진 어느 강사님은 달항아리를 사보겠다며 인사동을 비롯해 도자기 파는 곳곳을 순회하셨다 들었다. 나도 그 이후 달항아리 관련 작품만 있으면 회화든 어느 공방의 작품이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근현대미술 걸작전에서 작품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문장 하나를 남겨둔다.

권진규 작가의 말이다.


이 외에도 박수근, 이응노 등 많은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다음은 2층에 있는 초대전이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색채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이런 컬러감 때문인지, 확실히 젊은 사람들의 발길을 많이 잡아 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고뇌에 찬 작가였는지를 알게 된다.




어딘가 약간은 몽환적이고,

동물들도 자주 보이면서 천진난만한 듯 밝아 보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느낌.


전시장의 중간쯤에 이르면 문제의식이 가득 담긴 작품들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50여 년 전 제주도를 찾은 젊은 작가 강광은 무려 14년간 제주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1960년대 말의 암울한 유신정권의 현실 속에서 고뇌와 사유의 시간을 보냈고, 강광 작가는 스스로 이 기간을 '화가 인생의 습작기'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행여나 안 좋은 사진 솜씨에 보는 이들의 감흥이 떨어질까 염려된다.

제주도립미술관에 가게 될 분들을 위해 작품은 맛보기로 짧게나마 이것들만 올려두겠다.

제주도에는 정말 멋진 미술관도, 작품들도 많다. 



쉬어가는 제주에서 미술 여행도 한 번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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