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먹어요

마음을 달콤하게 감싸는 한 조각의 위로

by 서툰사남매맘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이 문장은 전체주의의 냉혹한 본질을 드러낸다.


과거를 마음대로 바꾸는 자는 사람들의 기억과 인식을 지배하고, 현재의 권력을 쥔 자는 과거마저 재해석하며 ‘진실’을 통제한다.


이 말은 단지 정치 체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이 문장을 육아와 연결 지어 생각해본다. 부모는 아이의 ‘기억’을 해석하는 최초의 해설자다.


같은 사건도 어떤 말로 되새기느냐에 따라 아이의 과거는 전혀 다르게 새겨진다.


넘어졌을 때, “왜 조심하지 않았어?”라는 말은 부끄러움을 남기고, “그래도 다시 일어났네, 대단해”라는 말은 자긍심을 남긴다.


부모의 말은 아이의 경험에 감정을 입힌다.


그 감정은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아이의 정체성과 미래를 만든다.





나 역시 그런 기억 속에 자랐다. 어릴 때 넘어지거나 다치면 늘 “조심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나를 걱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저 “괜찮아? 아프겠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시험지를 가져가도


“잘했네, 다음에는 더 잘 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잘했다’는 말에 ‘그러나’가 붙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 허전함이 남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아이들에게


“조심해야지~”라고 말할 때가 있다. 받은 양육이 문장 하나로 대물림된다. 하지만 ‘더 잘하라’는 말은, 의식적으로 삼키려 애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어떤 이야기로 기억하느냐는 그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나는 늘 혼났어.”라고 기억하는 아이는 스스로를 문제아로 인식하기 쉽다.


반대로 “나는 실수해도 괜찮은 아이였어.”라고 기억하는 아이는 도전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갖는다.


나의 부모님은 살아내기에 바빴다. 나는 방치된 아이였고, 사교육도, 잔소리도 없이 자랐다. 시험 성적이 나빠도 혼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아이를 키우려 했다. 시험을 못 보면 가장 속상한 건 아이 자신이니까. 하지만 요즘 아이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겁다. 한 문제 틀려서 놀러가지 못하고, 성적이 낮아졌다고 혼나고, 아이들이 성적 앞에서 죄인이 되는 현실이 아프다.


시험을 못 본 날, 엄마는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며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육아는 아이의 시간을 설계하는 일이다. 아이의 ‘지금’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일이다. 그 현재는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과거로 남고, 그 과거가 모여 아이의 미래를 짓는다.


물론 아이들의 인생이 꽃길만으로 채워지진 않으리라. 언젠가 넘어지고, 다치고, 길을 잃기도 하리라. 하지만 나는 바란다. 그 아이가 다시 일어설 때, 우리가 함께 만든 따뜻한 기억을 꺼내 쓸 수 있기를.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비극의 한복판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와의 추억이 삶의 의미가 되어주었다고.




고단한 어느 날, 초콜릿 하나 꺼내 혀끝에 얹듯, 삶의 고비마다 그 기억의 조각 하나를 꺼내어 음미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따뜻함으로 다시 걸어갈 힘을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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