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살, 캐나다로 돌아오다.
2024년 12월 2일,
나는 캐나다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캐나다로 "돌아왔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당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만큼 나는 캐나다와 긴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 긴 이야기는 23년 전, 내 나이 스물한 살에 시작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막 되었을 무렵,
한국에서는 "워킹할러데이"라든가 "배낭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을 했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다녀온다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던 시절, 워킹할러데이나 배낭여행을 다녀온 대학생들의 수기를 읽는 것은 참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라온 나는 고등학생 과외를 통해 용돈을 벌어 생활하고 있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나 다녀오는 줄 알았던 해외여행을 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꼈던 그 설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해외여행"이라는 키워드가 가슴속에 꽂힌 순간부터 나는 과외비를 차곡차곡 모았다.
내 계획대로 처음부터 바로 캐나다로 출국하지는 못하였지만, 미국을 거쳐 여러 사연을 통해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911 사건이 터진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입국 심사가 굉장히 까다로웠고, 거의 세 시간을 집중 추궁을 당한 끝에 토론토에 무사히 들어오게 되었다. 이십 대 초반 여학생이 혼자 배낭을 메고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왔다는 사실에 입국 심사관들이 심상치 않게 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첫 캐나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4개월 동안 토론토에 머물면서 일주일에 삼일은 한국인 2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이틀은 지역 교회에서 진행하는 무료 영어 수업에 참여하였다.
부족한 영어 때문에 서빙 중 실수를 연발하였고, 그 때문에 사장님께 핀잔도 참 여러 번 들었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혼자 수개월 지낸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한국이 그리웠고, 눈을 감으면 한국의 거리가 펼쳐지고, 한국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그렇게 향수병에 걸려 한동안 고생하였다.
외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였던 스물한 살의 경험이 캐나다와의 깊고 깊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스물세 살, 대학교 4학년 때 캘거리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에 다시 한번 오게 되었고,
서른여섯 살, 몬트리올에 있는 맥길대학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캐나다에 세 번째 오게 되었다.
그리고 마흔네 살, 두 아들, 남편과 함께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